현대판 사임당, 정정애 여사

2019.07.26 07:10

이윤상 조회 수:15

현대판 사임당, 정정애 여사

       -정정애 화백의 수필집을 읽고-

행촌수필, 안골은빛수필 문학회 이윤상

 

 

 

 

 우거진 녹음이 손짓하고 온 누리가 진한 초록으로 물들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는 연일 폭염주의보를 보낸다. 성하의 계절 7, 초복을 맞으며 고귀한 선물을 받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80평생 갈고 닦은 5번째 油畫유화 개인전 초대장과 丁貞愛 畫伯의 수필집과 시집이 얼굴을 내밀었다.

 

 712() 오후 5시, 전북예술회관 기스락1실에서 5회 개인전 개회식에 참가하기 전에 “정화백”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감동의 늪에 빠져들었다. 수필은 작가의 인간상을 그린다. 그러기에 수필은 관조의 문학이요, 자기성찰의 문학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내게 보내온 수필집을 나는 전부 다 읽는다. 그 많은 수필집 중에 받은 날, 단숨에 쉬지 않고 다 읽기는 처음이었다. 글의 내용도 감동적이지만 작가의 인품, 부단히 갈고 닦는 화가의 생애와 복만 짓고 사는 모습이 진한 감동으로 나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인생을 달관하고 천부적인 심미안審美眼을 가진 수필 한 편 한 편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수필의 정도를 맛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장의 “쇳대”에서 “저마다 가슴속에는 굳게 닫힌 마음의 비밀창고를 간직하고 있다. 부끄러움이나 죄의식,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꼭꼭 숨기고 있는 내밀한 공간이다. 그런 폐쇄된 공간을 열어젖히고 풀 수 있는 마법의 키가 있다면. 우리들 인생은 좀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마음의 쇳대를 손에 쥐고 곰곰이 생각에 잠길 일이다.”라는 첫 작품부터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젊은 시절부터 새벽 3시면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고 재능을 닦아온 필자는 전주남부시장 새벽시장을 자주 찾는다. 싱싱한 김치 거리, 제수용품, 황토묵과 콩나물 등을 사서 신선한 맛으로 가족들의 입맛을 잡아준다. 또한 콩나물 가게 주인이 된 사랑하는 제자 선영이를 보기 위해서 새벽시장을 찾는 다고 한다. 제자와 끈끈한 정을 수십 년  이어 간다는 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얼마나 진한 감동을 주는가.

 

 “반 평짜리 사랑방”에서 만나는 사람들. 새벽기도 나가는 할머니, 신문배달 아저씨, 종이박스 줍는 허리 굽은 김 할머니, 7시면 등교하는 학생들, 홀아비 티가 나지 않는 멋쟁이 할아버지 등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작가는 이 아파트의 반 평짜리 사랑방을 자기가 버틸 수 있는 한, 손님들을 웃는 낯으로 실어 나르겠다고 다짐한다. 자기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반 평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바이러스를 전파하겠다는 다짐은 순수한 인간애가 아닌가?

 

“큰언니 선물, 황태”를 읽으면서 명태가 35가지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저녁에는 황태탕을 끓여서 식구들의 입맛을 살려봐야겠다는 결미에서 학교에서는 모범교사로, 훌륭한 어머니로, 현숙한 아내로, 뛰어난 화가로, 능숙한 요리사로, 一人五役을 잘 해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호두 두 알”에서 신은 호두를 주지만 껍질을 깨주지 않는다는 격언을 떠 올리면서 자식들 이야기가 나온다. 껍질을 깨는 게 나의 몫으로 주어졌지만 나는 선뜻 껍질을 넘어서지 못한다. 장성한 자식들이 내 품을 떠난 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자식들을 껴안고 있는 것 같다. 그들도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으로 마음이 조이는 때가 많다. 이쯤에서 나는 그만 나를 내려놓으려 마음먹는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것 같아서다. 껍질로 살아온 인생에 후회는 없다. 호두알을 따라 추억도 구른다. 그 추억 속에 잠기면 내 소중한 새끼들이 나를 향해 조막손을 뻗어온다.

 그들이 태어날 때 어미로서 느꼈던 경이로움, 자라면서 수시로 엄마에게 안겨 주었던 기쁨, 대학 합격, 교사취업, 신춘문예 당선, 배우자를 맞을 때, 손주들의 탄생, 손주들의 취업까지 가슴 벅찬 소식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노년에 손주들이 취업하는 기쁨까지 만끽하면서 행복의 꽃밭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도를 통한 수도승 같아 보인다.

 

  ”나만의 골든타임“에서 '나는 보통 하루에 5시간 쯤 잠을 잔다. 삼십대 중반에 중등 미술교사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살았던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퇴직을 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늘어지게 잠을 자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새벽 3시면 퇴직 후에도 저절로 잠이 깬다, 두 아이가 고교 3학년 중학교 3학년이던 해에는 아홉 개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퇴직 후 천주교 세례를 받고 구약, 신약, 성서쓰기를 6년에 걸쳐 완필했다.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새벽시간이 나에게는 황금시간인 셈이다. 그 소중한 나만의 골든타임에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끼며 오늘도 그 시간을 틈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1973년에 초등교사로 근무하며 중등 미술교사자격검정고시에 합격, 중등으로 진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그런 속에서도 새벽 3시면 일어나서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 전국 규모의 미술 대전에서 큰 상을 휩쓸었다. 1984년 전북예술회관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평화갤러에서 2008년 제4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금년 712일 제5회 개인전을 성황리에 여는 모습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1999년에 대통령 훈장 중 으뜸인 동백장을 받았다. 한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될 만하다. 뛰어난 화가로, 명문장 수필가로, 시인으로, 오남매의 자녀 교육에 성공한 어머니로 이 시대의 사임당이라는 존경을 받을 만하지 않는가? 수필집 제5부까지 읽은 느낌을 쓰기로 하면 한도 없겠다. 아둔한 독자로서 제1부만 소감을 쓰고 줄여야 할까 보다.  

                                                                   (2019.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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