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참, 기가 막혀서

2019.08.01 06:51

한성덕 조회 수:8

나원참, 기가 막혀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전라북도 군산시 수성동에 있다. 그곳 ‘찬양 힐링 콘서트홀’에서 5분 메시지를 전하고, 아내는 찬양을 한다. 그곳에는 우리뿐 아니라 여러 분이 참석해서 한 시간 가량 노래를 한다.

  찬양홀은, 사명을 받은 한 사람이 자비로 운영한다. 그 일을 8년째 하고 있으니 참 대단하다.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데 누가 말리랴? 사명이 아니라면 도무지 흉내를 낼 수 없는 일이다. 나 같으면 돈을 준다 해도 손사례를 칠 것이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우직하리만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우리도 군산에 다닌 지 벌써 5년째다. 사실, 노래하는 자들에게 열린 무대는 그 자체가 복이다. 시간만 내면 얼마든지 무대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이나 사람이 감동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감사와 함께 큰 기쁨과 보람이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군산의 콘서트홀에 가곤 한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요, 사례는커녕 기름 값도 만만치 않다. 눈비가 마구 쏟아져도,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그곳에 간다. 지진 속에서도 요리조리 피해 갈 것 같다.

  콘서트홀에서 노래하는 사람 중에 귀한 분이 계신다. 목회로 마무리를 하셨는데 80세쯤 되셨다. 노래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1,20분을 자전거로 오신다. 먼저, 성가집에서 부를 곡목을 선정하고, 두 장을 복사하면 그만인데, 악보 두 장을 꼼꼼하게 그려 오신다. 한 장은 목사님이 갖고, 나머지는 반주자의 몫이다. 아내가 반주를 하면서도 그 열정과 성의에 깜짝깜짝 놀란다. 아내의 말에, 악보가 깔끔하고 글씨가 단정하다는 걸 보면, 악보에 목사님의 고상한 성품이 오롯이 묻어나오는가 보다.

  목소리는 아직도 40대를 뺨칠 정도다. 노래에 윤기가 흐르고 탄탄해 중후한 맛이 풍긴다. 바리톤의 저음은 청중을 사로잡고, 만만찮은 노래실력에 관심이 쏠린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앙코르를 외치고 싶다. 다만, 발음상의 문제가 제기되지만 나이 때문인 것을 어찌하랴? 청년 때는 성악가가 되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나이 들고 보니 노래가 몹시 그립고, 콘서트홀에서 찬송하는 게 어찌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며 무척 좋아하신다.

  어느 날이었다. 목사님께서 무대에 오르자마자 “나원참, 기가 막혀서!” 그러시는 게 아닌가? 황당한 일이 있었는지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토록 점잖으신 목사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매우 긴장했다. 굉장히 흥분하셨는지 마음을 진정시키는 모습이 역력했다. 시간이 흐르나 싶었는데, 나지막하면서도 차분한 음성으로 조용조용 말씀을 이어갔다.

 

 오늘도, 정장차림으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콘서트 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저 앞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 중얼거리며 작전 중이었다.(목사님 생각에) 그 중 용기 있는 학생이 뽑혔는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아이가 짐을 졌는지, 한 녀석이 불쑥 나오며 자전거를 세웠다.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아주당당하게, “아저씨, 담배 좀 파세요.” 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정도가 아니라 기절할 뻔했다. 그 짧은 시간에 ‘호통 치면 봉변을 당한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난 목사여서 담배가 없지.” 그랬다. 나이 80이 다 되는데, 별별 꼴을 다 본보았다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생각하건데 교육부나, 학교나, 가정이나, 학생 중 무엇이 문제인가? 교육의 부재인가, 시대적인 흐름인가, 아니면 그토록 외쳐대는 ‘인권’이 기()를 살려준 탓인가? ‘인권’이 절대적으로 대접받아야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초법적일 수는 없다. ‘인권’이 존중받으려면, 먼저 법질서를 확립하는 게 우선이라야 한다. 그런데 ‘인권’ 하면 법도 맥을 못 추는 듯해서 걱정스럽다.

  목사님의 이런 생각 때문에 시름이 더 깊었을 지도 모른다. 손자뻘 되는 녀석들로 인한 격분이 쉬 사라지지 않아 보였다. 다 끝난 뒤에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드실 뿐 말이 없었다. 목사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지만 그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리겠으며, 어떻게 필설로 온전히 담아내겠는가? 또 ‘그들이 내 자식이라면’ 하는 생각에 울적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그야말로 망연자실(茫然自失)이었다.

                                                      (2019.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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