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잘 빚던 어머니의 솜씨

2019.08.06 05:47

김삼남 조회 수:4

술 잘 빚던 어머니의 솜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삼남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청주를 마셔 본 것이 팔순이 된 오늘까지 이어온 나의 주력이다. 어머니가 툇마루에서 청주를 거르시며 “너 술맛 좀 보아라.” 하시며 조롱박으로 떠주시던 술을 먹고 취하여 정신을 잃었다. 어머니는 우리 집안에 또 술꾼이 생겼다고 기뻐하셨다. 집안의 행사때마다 손수 술을 빚으셨다. 동창계 모임때 부엌에서 술을 거르던 용수속의 청주 맛에 홀려 연거푸 마시고 자전거와 시계를 잃고 갔던 친구는 팔순인 지금도 그때의 그 술맛을 얘기한다. 청주는 은은한 색에 감칠맛이 있어 서서히 취하고 깨고 난 뒤 개운해야 좋은 술이다. 이러한 술은 집에서 만든 가용주로 깨끗하고 순수한 재료와 지극한 정성으로 빚은 술이다.

 

 어머니는 손수 농사 지은 밀을 깨끗하게 씻어 말리고, 정미소에서 껍질째 빻은 밀가루로 누룩을 만들어 알맞게 발효 시킨다. 누룩에 찹쌀 꼬드밥을 반쯤 건조시켜 고루 섞어서 옹기 항아리에 겹겹이 앉치고 계절별로 알맞은 온도를 유지했다. 꽃피는 봄이면 진달래꽃과 함께 송순을 넣으면 두견주나 송순주가 된다. 술이 부글부글 괴어 잘 익으면 용수를 질러 맑게 걸러 나온 술이 청주다. 청주를 다 뜨고 난 뒤 찌꺼기에 적당히 물을 부어 걸른 술이 주조장 막걸리가 아닌 순수 수제 막걸리다. 막걸리는 일꾼들의 새참이나 마을 노인들의 간식거리다. 어머님의 술맛에 반한 사람들은 남겨 감춰둔 술을 어서 가져오라고 성화였다.

 

 어머니의 술 솜씨는 가풍으로 이어져 큰 형수님도 잘 빚으셨다. 항상 나의 술맛 평가를 듣고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매사에 중용지도가 신조셨다. 어머니가 빚은 술로 화전놀이때면 과음치 않고 즐겁게 흥을 돋우셨다. 그러나 두 형님들은 젊을 때 두주불사 주객이셨다. 나는 술복을 타고났는지 직장과 인연이었는지 몰라도 평생 술을 즐긴 편이다. 결혼 후 아내는 항상 술 때문에 불평을 했어도 승진시험때는 술을 뚝 끊고 공부하여 합격한다고 기뻐했었다. 장모님도 어머니 못지않게 술을 잘 빚으셨다. 술 잘 마시는 사위를 걱정하면서도 술이 익으면 술맛을 보라고 먼저 권하셨다.

 

 오늘도 여름 특강에서 저명한 문인들의 수필작법 강의를 들었다. 소재선택, 구성작법, 퇴고평가 등 일련의 과정은 마치 어머니의 좋은 청주를 빚던 솜씨와 흡사하다고 생각되었다. 좋은 밀로 만든 양질의 누룩과 찹쌀, 청정수의 배합, 알맞은 온도로 잘 익어 가는 술의 생성과정과 잔치 후 하객들의 술맛 평가는 어쩌면 수필의 일생과 일치하는 성싶다. 수필은 곧 좋은 솜씨로 빚던 청주가 아닌가!

 

  오늘날 주류시장은 다양하고 광법위하여 화학주, 수입양주, 과일주, 국산청주, 막걸리, 소주도 있지만 서민 대중이 애호하는 술은 막걸리인 듯싶다. 어머니가 청주를 뜨고 남은 찌꺼기로 걸른 막걸리가 진정한 원조인 듯하다. 시판되는 막걸리는 방방곡곡에서 특수한 재료와 공법으로 제조되지만 무엇보다도 순수한 재료와 유명한 청정수에 정성들여 빚은 막걸리가 맛과 건강에도 좋다.

 

 오늘도 막걸리를 마시면서 옛날 어머니가 빚던 술 솜씨를 회상한다. 지금도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와 형수님, 장모님들은 옛날 술 빚던 솜씨를 자랑하고 계실까? 오늘 수필작법 특강을 들으면서 맛있게 술 빚던 어머니의 솜씨를 수필에 비유해 본다.   

                                                    (20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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