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좋다

2019.08.08 07:08

이환권 조회 수:8

더위가 좋다

                                              신아문예대학 수요 수필반 이환권

 

 

 

 

 벌써 오늘이 입추란다. 그런데도 올여름 두 번째 폭염경보 문자가 행정안전부로부터 왔다. 다행히 연일 계속되던 폭염은 제8호 태풍의 영향으로 숨을 좀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올해는 그래도 작년에 비해 적당한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농사가 잘 되어간다. 채소와 과일들도 잘 자라 농민들에게 미소를 짓게 했고, 지금 들녘에 자라고 있는 모든 식물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어머니가 물려주신 논 여섯마지기를 직영하기 시작했다. 이미 10년 전에 증여받은 논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가을에 미리 쌀로 받아왔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직영할 의사를 비쳤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고 미뤄 왔었는데 드디어 올해부터 짓기 시작했다.

 5월에 농지원부를 동사무소에서 발급받고 6월에 경영체등록을 마쳤다. 요즈음 이삼일에 한 번씩 논을 둘러본다. 지난 621일 모내기를 마치고 모 때우기, 중간 제초제 뿌리기, 마르지 않게 물 대기, 논둑 잡초제거하기 등 50일이 지났다. 참 다행인 것은 옆집논들이 우리보다 10일정도 빨라 그 논들의 상태를 봐가며 뒤따라가고 있다. 물론 지도해 주시는 친절한 옆집 아저씨도 계신다. 이제 병충해 약을 살포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은 집단으로 투약해야 하니 약값과 살포비만 내면 된다고 한다.

 벼는 날씨가 더워야 쑥쑥 자라고 풍년이 든다고 하니, 요즈음 더위는 문제될 게 없다. 날씨가 더워도 기분이 좋다. 사실 농사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께 이끌려 모 심고 김 매고 타작하는 일까지 했었다. 어머니는 자식 넷을 데리고 논으로 나갔고, 우리는 불평없이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만 했었다. 아버지는 관직에 계셨기에 열외이셨고, 우리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어머님을 도와 드렸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농사짓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고 또 지금은 기게화가 되어서 훨씬 쉬워졌다..

 그 때는 경지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도랑에는 메기. 참게, 붕어, 미꾸라지 등이 많아 여유시간에는 양쪽 도랑문을 막고 품어 나름대로 개가를 올렸다. 개구리는 잡아서 닭 먹이로 사용했고, 때때로 잡히는 장어는 아버지 보양식으로 충분했었다.

 그러나 지금 수로는 콘크리트로, 농로는 시멘트로 포장되어서 농사일에는 편리하지만 부수입이 없어 재미가 없다. 단지 모내기할 때 보였던 우렁이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지금은 그 마저도 포기한 상태다. 왜냐하면 황새 몇 마리가 항상 보초를 서 있기 때문이다. 간간히 들렸던 뜸북이 소리에 감성이 젖을 때도 있지만 논 가운데 둥지를 틀고 자리잡는 모양을 볼 때는 얄밉기도 했다.

 

 올해도 그 뜸북이가 찾아올까? 엊그제 우아동 산밭에서 들었던 그 뜸북이 소리. 참 올 7월은 복이 철철 굴러 들어왔다. 사위네가 전주로 이사를 와서 손자 둘을 부양하게 됐고, 여름철 농사일로 매일 바쁘니 올여름도 어느새 다 가버렸다. 올여름은 참으로 덥다. 그래도 참 좋다. 더위가 좋다.

                                                                         (2019. 8. 8.)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87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윤상 2019.08.07 13
1386 동창회와 약봉지 박용덕 2019.08.08 29
1385 떡살을 바라보며 최기춘 2019.08.08 5
» 더위가 좋다 이환권 2019.08.08 8
1383 그 옛날의 여름은 구연식 2019.08.08 11
1382 라이벌 친구, 조재호 한성덕 2019.08.08 11
1381 책을 낼 때마다 김학 2019.08.09 8
1380 가슴 철렁한 단어 '헬조선' 이종희 2019.08.10 8
1379 83세 소녀 한성덕 2019.08.11 7
1378 문경근 제2수필집 발문 김학 2019.08.12 10
1377 나라마다 다른 중산층 두루미 2019.08.13 4
1376 빅토리아 연꽃 백승훈 2019.08.13 6
1375 부탁한다, 딸들아 곽창선 2019.08.13 5
1374 수필이 좋아서 수필을 쓴다 하광호 2019.08.14 3
1373 금강산(3) 김학 2019.08.14 4
1372 전북은 한국수필의 메카 김학 2019.08.14 53
1371 무궁화 최연수 2019.08.15 19
1370 공직의 요람, 관사 김삼남 2019.08.15 13
1369 아주 평범한 피서 김현준 2019.08.16 3
1368 소망가운데 사는 이유 한성덕 2019.08.1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