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의 여름은

2019.08.08 09:55

구연식 조회 수:11

그 옛날의 여름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60여 년 전 우리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은 6·25 한국전쟁이 10여 년쯤 지난 시기여서 도시나 농촌 모두 다 어렵게 살았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활과 다른 삶을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현재의 삶이 불편한지 가난한지 모르고 그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시절이어서 교과서 삽화에 나오는 문화시설과 생활도구를 처음 보고, '이런 것도 있구나!' 할 정도였다.

 

 가난한 가정은 겨울보다 여름 나기가 편하다. 아마도 겨울의 난방보다는 여름의 피서가 돈 안 들고 쉽게 보낼 수 있다는 말인 듯싶다. 현대인의 생활은 금전을 최대한 투자하여 생활도 피서도 자기 위주로 즐기고 있으나, 그 시절의 모든 생활은 금전 투자보다는 자연환경을 유효 적절히 활용하며 살았기에 의존성도 불편도 모르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았다.

 

 여름에 주식은 어머니가 밤새도록 돌확에 간 보리쌀로 지은 보리밥이었다.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까지 먹을 밥을 미리 몽땅 지어 대나무 바구니에 가득 담아 부엌 시렁에 올려놓아서 바쁜 조리시간을 줄이고 간편하게 식사하는  게 농번기 끼니해결 방법이었다.  여름나기 의복은 어머니가 직접 짠 삼베잠방이와 모시 등거리가 대부분이며, 까슬까슬해서 거북스러운 촉감이 있지만 시원함은 그만이었다. 신발은 검정 고무신으로 발바닥에서 땀이 나서 질퍽거리면 황토 한 줌을 집어넣고 걸으면 되었다.

 

 농촌의 노동일과 뙤약볕에 시달려 밥맛이 없고 소화가 안 될 때 어머니는 쓴 익모초 생즙을 한 종발 마시게 하고 입가심으로 생마늘 한 쪽을 씹게 하셨다. 허한 심신의 보양 방법으로는 삼복(三伏) 때 복달임으로 고기로 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여름 과일을 사다 먹기도 했었다. 웬만한 면 소재지에도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시골 마을에서는 냉장고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복날 시원한 과일을 보관하여 먹을 방법은 옛날 군용 전화선으로 만든 장바구니에 과일을 담아서 깊은 샘물에 담갔다가 하룻밤 지난 뒤 꺼내서 먹었다.

 

 논밭에서 일하고 들어온 일꾼들이 대청마루에서 시원하게 점심을 드시도록 아버지와 나는 큰 부채를 양손에 들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일꾼들에게 부채질을 해드렸다. 식사가 끝난 일꾼들은 대청마루나 마을 모정에서 목침을 베고 대들보가 무너지도록 코를 골며 낮잠으로 노동의 피로를 풀었다. 어린이들은 마을 뒤 작은 저수지에서 흙탕물을 튕기면서 미역을 감았다.

 

 내가 제일 싫은 계절은 여름방학 때였다. 방학 때는 뙤약볕 논밭에 나가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논밭에서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는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차가운 물로 등목을 해주시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시원하고 턱끝에서는 짭조름한 땟국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등목이 끝났다는 신호인지 귀여운 아들에게 정감의 표시인지 어머니 손으로 등을 딱 치시면 벌떡 일어섰다.

 

 가마솥에 찌는 듯한 더위는 여름 농사철이 끝나가는 처서(處暑)쯤에는 불볕더위가 수그러들었다. 이때는 세 벌 김매기를 마치는 만두레 행사가 열렸다. 십시일반의 걸립(乞粒)으로 술과 고기를 마련하여 여름 농사에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며 화합을 다짐하는 행사였다. 마을의 우물들을 모두 다 푸고 청소도 하는 한 바탕 풍물과 어우러지는 마을 잔치였다. 상모를 돌리는 아저씨는 술에 취해서인지 상모도 사람도 빙글빙글 휘청거리며 오뚝이처럼 넘어질 듯하다가 다시 일어나니, 눈을 떼지 못하는 구경거리였다.

 

 저녁때가 되면 나는 헌옷가지나 큰 부채로 방마다 모기를 쫓아내고 파란색 모기장을 창호지 대신 바른 문을 닫고 식구들 취침 준비를 미리 해 놓는 것이 일과였다. 아버지는 생쑥을 베어다가 돼지우리와 외양간 그리고 토방에도 모깃불을 놓으시면 식구들은 밀짚 방석에 앉아서 별똥이 떨어지는 하늘을 보았다. 뜰 안에는 온갖 풀벌레들이 합창대회라도 벌였는지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할머니가 도깨비불이라던 개똥벌레는 꽁무니를 연신 번쩍거리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텔레비전이나 놀이기구가 없고, 주전부리가 없어도 가족이 오붓하게 모여 있어서 좋았다. 이따금 밤바람이 불어 부채질을 멈추게 했다.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로 막내는 어머니 무릎에서 잠이 들었고, 샛별도 졸리는지 구름 속에서 새근거렸다. 밤이슬을 맞으며 여름밤은 촉촉이 깊어갔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식물은 지구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추위도 더위도 순응하며 생태계를 보전하는데유독 유별난 인간들은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더 시원한 피서를 부추겨 지구는 불덩어리가 되어간다. 그 옛날의 여름은 지금이나 더위가 비슷했을 텐데 돈과 물질을 활용한 피서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참고 견디면서 오붓한 식구끼리 오순도순 생활의 어려움과 무더위도 이기며 살았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오히려 인간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하고, 가족의 손목을 꼭 쥐게 하는 힘이다. 가난과 피서는 피하거나 선택할 수도 없어서, 그 시절에는 가난과 피서를 그냥 안고서 삭히며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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