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3 06:45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올해가 더 더운 것 같아!’, 더위 탓에 지난밤을 지새운 아내의 짜증이다. 그래도 올해는 태풍이 감초 역할을 해서 소나기에 바람이 적당히 불어 견딜 만 한데도 말이다. 외출하려고 차 키를 찾으려 수선을 피우니 손에 들고 있었다. 더위 탓인가, 아니면 치매인가? 불길한 생각이 든다. 마음과 행동이 서로 다르니 이율배반이라 할까? 당황할 때가 많다. 그런 나를 비웃는 아내가 미웠다.
부모자식 간의 연을 억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하늘이 점지해주신 뜻에 따라 슬하에 딸 둘과 맺은 억겁의 연이 벌써 불혹의 세월을 지났다. 요즘 부쩍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 늦기 전 그동안 남기고 싶은 생각들을 정리해 전하려니 횡설수설 쉽지가 않다.
수미와 편지를 주고받은 때가 서울 신림동 입시학원시절이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구나. 그 때는, 내가 엄마보다 더 이물없다고 했었지? 나도 같은 생각이었으니 엄마가 시기할 법도 했었다. 너에 대한 꿈도 참 많았단다. 어제 같은데 벌써 20년, 아차하는 순간 아빠는 종착역에 다다른 느낌이다. 뒤돌아보는 순간, 왜 그랬을까, 하는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동안 살아오며 느낀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니 참고해다오. 너희들의 개성이나, 특기를 살려 주지 못한 것이 먼저 후회로 다가온다. 내 뜻대로 결정하고 가부장 적으로 군림했으니 고난의 길이었을 것이다. 너희의 재능이나 취향도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 사고방식에 만족하며, 그 방법이 최선의 길이라고 따르라 했으니, 어찌 보면 아빠의 과오를 되돌려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고, 흘려버린 꿈을 대신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한恨이었던 것 같다. 아빠의 좁은 생각 탓이었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1인 4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게 되었단다. 때가 되면 다 저렇게 잘하고 사는데. 그러나 아빠 눈에는 너희는 지금도 어린 소녀 같으니 부모의 보호 본능이겠지?
인생은 스스로 터득하며 극복해야 하는 길이라서 자칫 나태하거나 흥미를 잃게 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단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느 길이든지 선택은 너희 자신의 몫이다. 충분히 생각하여 행동에 옮기면 그 것이 옳은 길이 될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으니까.
요즘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단다. 너희를 부럽게 바라 볼 때가 많단다. 나는 너희처럼 못해 주었으니 그럴 것이다. 아이들에게 되도록 간섭은 피하고 자율능력을 키워주어라. 마음속에 이웃 사랑을 심어 주면 좋겠고, 아이와 약속을 실천하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서로를 되돌아보며 웃음을 나누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꿈이 현실이 되어 가고 조금씩 익숙해 질 태니 말이다.
이 세상에 제일 큰 행복은 아이들이 잘 자라는 모습이란다. 모두 바르고 건강히 잘 자라니 그런 복이 어디냐?
자신에게도 투자하며 푸른 꿈을 품어라. 살아오며 느낀 점은 인생은 길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일 대단하지 않은 하루를 맞이하고 또 지나면 별 게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망처 버리는 바보짓은 말아야 한다. 실망하지 말자. 현재는 매우 중요하고, 또 큰 꿈이 있어야 미래가 보인다.
어제 엄마와 작은 오해를 풀어 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한 발 물러서며 다가가는 길이 행복의 길이란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사는 것이 화목한 가정과 사회를 이루는 초석의 근원이다.
아빠가 놓치고 만 옛 꿈을 재현하고 싶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니? 과거를 잊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더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현실은 만만하지 않겠지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도 오겠지 하며 긍정의 힘을 기르고 있단다. 이것이 너희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란다.
이제 머지않아 내 삶의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다. 어떠한 경우가 닥치더라도 인위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순리대로 해다오. 타고 남은 잔재는 조촐하고 번거롭지 않게 자연으로 보내주고, 내 몫으로 남아있는 소장품에 내 뜻을 적어 놓았으니 그대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 늦게나마 황혼에 곱게 물들어 떠나고 싶단다.
입추가 지났구나. 세월의 전령사 귀뚜라미가 가을 소식을 알려오는구나. 기온차가 심해질 테니 감기 조심하여라. 저 푸른 숲처럼 늘 푸른 희망이 넘치기를 바란다. 아빠가 띄운다.
(2019. 8. 1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67 | 진안의 테니스 돔구장 | 하광호 | 2019.08.22 | 27 |
866 | 제자들의 선물, 황진단 | 김길남 | 2019.08.21 | 17 |
865 | 보리를 돌보며 | 신팔복 | 2019.08.20 | 6 |
864 | 법도 아닌 법, 김승환법 | 은종삼 | 2019.08.20 | 3 |
863 | 한여름의 파이어 아트 | 김성은 | 2019.08.20 | 3 |
862 | 등꽃 [1] | 백승훈 | 2019.08.20 | 17 |
861 | 내 고향 무주로 가는 길 | 김세명 | 2019.08.19 | 5 |
860 | 소망가운데 사는 이유 | 한성덕 | 2019.08.17 | 2 |
859 | 아주 평범한 피서 | 김현준 | 2019.08.16 | 3 |
858 | 공직의 요람, 관사 | 김삼남 | 2019.08.15 | 13 |
857 | 무궁화 | 최연수 | 2019.08.15 | 19 |
856 | 전북은 한국수필의 메카 | 김학 | 2019.08.14 | 53 |
855 | 금강산(3) | 김학 | 2019.08.14 | 4 |
854 | 수필이 좋아서 수필을 쓴다 | 하광호 | 2019.08.14 | 3 |
» | 부탁한다, 딸들아 | 곽창선 | 2019.08.13 | 5 |
852 | 빅토리아 연꽃 | 백승훈 | 2019.08.13 | 6 |
851 | 나라마다 다른 중산층 | 두루미 | 2019.08.13 | 4 |
850 | 문경근 제2수필집 발문 | 김학 | 2019.08.12 | 10 |
849 | 83세 소녀 | 한성덕 | 2019.08.11 | 7 |
848 | 가슴 철렁한 단어 '헬조선' | 이종희 | 2019.08.10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