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피서

2019.08.16 06:27

김현준 조회 수:3

아주 평범한 피서

안골은빛수필문학회 김현준

 

 

 

 

  올여름 장마는 괜찮은 편이었다. 몇 차례 적당한 비를 뿌려주고 무더위도 식혀주었다. 8월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더위가 수은주를 섭씨 35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거실 에어컨을 작동시키지 않고 배겨날 수 없다. 나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켜두는 것은 너무 호사인 것 같아 부부가 함께 있는 동안만 하루 두 시간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82일 일본 각료회의에서는 기어이 한국을 백색국가로부터 제외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설마했지만, 그들의 간교한 경제제재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뒷북만 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고 통치자가 이순신 장군의 12척 배를 들먹이는 게 위태로워 보였다. 반일 감정을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집권 여당의 속셈이 드러난 마당에 기업과 국민은 얼마나 가슴앓이를 해야 할지. 나오는 게 한숨뿐이다.

  북한 김정은은 이틀이 멀다고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대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별 것’ 아니라며, ‘김정은과의 관계는 좋다.’ 고 실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 우리의 안보와 경제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아닌지 몹시 염려스럽다. 심신이 지쳐가는 것 같다.

  올해의 여름 피서는 단순하면서도 실익이 있는 것으로 정했다. 오전에는 노인복지관 묵향실에서 서예연습을 한다. 냉방시설이 잘 된 쾌적한 환경이다. 짬짬이 타 마시는 믹서커피도 즐길 수 있다. 함께 글씨를 쓰는 사람 중에 이야기를 잘 하는 이가 있고, 간식거리를 챙겨다 주는 사람도 있어 심심치 않다. 화제도 다양하다. 모두가 노년이기에 스스럼없이 죽음과 질병의 정보를 주고받고, 그날그날의 세상 이야기도 흥미롭다. 경로식당에서는 한 끼를 2천원에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가끔은 정오에 귀가하여 아내와 겸상을 한다. 된장찌개나 김치, 그리고 별식이라도 함께 먹으니 즐겁고 맛도 좋다. 에어컨 가동 시간에 TV 스포츠 화면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오수에 빠진다. 2시 반에는 아내를 태우고 종합경기장의 D수영장으로 간다. 입장료가 2,200원이고 주차비는 면제다. 어릴 때 동네 앞 시내에서 배운 개헤엄으로 50미터 레인에서 수영하기는 좀 쑥스럽다. 그러나 7순 노인이 자유형을 그 정도로 하는 것은 괜찮은 편이라고 아내가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아내는 십여 년 이상 수영을 해왔다.        

 

  세상은 찜통더위로 달아올라도 수영장은 역시 시원하다. 수영강습을 받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절반의 레인을 차지하고 일반인들은 연못에 가득한 올챙이처럼 붐벼도 잘 견딘다수영을 하는 동안 종아리 근육과 발 건강이 좋아졌다. 스트레스까지 날려버리니 아내와 다툴 일이 없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상태, 모친의 양수 속을 헤엄치던 자유와 평온을 떠올려본다.  

  어린 시절 고향의 여름은 더웠는지 어땠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시원한 냇물을 즐겼고, 매미가 노래하는 정지나무 아래 모정을 찾았다. 천렵은 신났고, 수박서리를 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호주머니에 동전이 없어도 군것질 거리는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샘에서 길어 올린 찬물에 사카린을 타서 마시면 무엇보다 달고 시원했다. 그때도 아주 평범한 피서를 한 것 같은데, 올 여름 피서법은 내실 있고 괜찮은 편이다. 더위를 먹지 않고 여름감기에 걸리지 않으며, 입맛을 잃지 않는 여름이다. 게다가 숙면하는 여름은 서예와 수영, 두 가지 피서 덕분이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더위가 한풀 꺾이면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전주 삼천 산책길에는 성인 남녀가 넘쳐난다. 왕복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리면 하루 운동량으로는 딱 좋다. 체중 조절과 근육활동으로도 적합하다.

  연일 폭염경보가 나오고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가 험악해도 이런 평범한 피서법으로 거뜬하게 하루를 견딘다. 아울러 심신수련까지 곁들이니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다. 녹음이 우거진 계곡을 찾지 않고, 푸른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지는 못했어도 유유자적한 올여름의 피서가 옹골지다. 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더위도 광복절이 지나면 시들해질 것이며, 국제정세도 슬금슬금 풀려갈 것이라고 말이다.      

                                                                      (2019.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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