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를 돌보며

2019.08.20 15:22

신팔복 조회 수:6

보리를 돌보며

전주 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신팔복

 

 

 

 

 

 나는 요즘 ‘보리’를 돌보고 있다. 보리는 둘째아들이 키우는 개의 이름이다. 올봄에 중앙대학교로 옮겨 근무하는 둘째아들이 미국 보스턴의 학회에 참석하면서 전주에 내려와 맡기고 갔다. 둘째아들은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부지역인 알버타주 레스브리지대학에서 근무했다. 2년 전에 기다리던 손자가 그곳에서 태어나 아내와 함께 찾아가 귀여운 손자를 보듬었다. 그 때 보리를 처음 만났다.

 

 캐나다에서 이사 오면서 보리도 함께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로 왔다. 손주들이 모이는 날이면, 제가 먼저 데리고 다니겠다고 성화다. 아이들의 인기가 제일인데 “보리! 컴”, “보리! 고”, “보리! -잌” 등으로 소통한다. 우리말로는 교감이 잘 안 된다. 이제 조금씩 눈치를 채고 있는 것 같아 귀엽다. 우리 집에 오자마자 나를 알아보고 반갑다고 소리 지르며 달려들더니 주방에 있는 아내에게 달려가 폴짝폴짝 뛰며 인사를 했다. 당장에 “보리! 하우스”하니, 제 집으로 들어갔다.

 

 보리는 영국이 고향인 웰시코기 종이다. 여우같은 머리에 쫑긋한 귀와 짧은 다리의 중간형 개다. 온순하고 영리하여 가축 몰이 개로 길러졌다고 한다. 보통은 누런색을 띠는 것들이 많으나 우리 집 보리는 얼굴이 누런색 바탕에 중앙으로 흰색을 띠고, 눈은 까맣고 둥글고 크며 유리구슬을 박은 듯 튀어나와 보인다. 등은 검은색을, 어깨와 엉덩이는 누런색을, 턱과 목, 배 부분과 네 다리는 흰색을 가진 바둑이다. 꼬리는 잘라서 없다. 어디를 나가더라도 애견가라면 꼭 인사하고 싶을 정도로 통통하고 귀엽다. 그래서 사진도 많이 찍혔다. 캐나다 애견품평회에서 챔피언이었던 아빠의 혈통을 이었다니 인터넷을 찾아보면 그 귀여운 모양새를 금방 알 수 있다.

 

 캐나다의 맑은 하늘 밑, 올드맨 강가의 도그-파크(Dog Park)에 갔을 때 크고 작은 서양의 개들과 마주쳤는데, 매주 훈련소에 나가 보살핌을 받아서인지 코를 맞추고 인사를 나누고 나면, 약속이나 한 듯 당장에 어울려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친화력도 대단했다. 거센 바람과 흰 눈 속에서도 산책을 나가면 내 곁을 멀리 떠나지 않았다. 더욱 간식거리를 던져주면 재빠르게 받아 삼키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또 달라는 눈치를 보였다. 융단처럼 폭신하고 푸른 정원에서 사슴이나 하얀 눈토끼를 만나게 되면 곧잘 달려가 쫓아내기도 했다. 청정한 맑은 물에서는 목욕도 즐기는데 거위가 노는 호수 같은 비릿하다거나 냄새가 나는 물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깔끔한 성격도 가졌다. 모든 개가 그렇듯 냄새 맡기를 좋아하고 한 번 맡은 냄새는 꽤 오래 기억하는 것 같다. 간삭으로 주려고 오이를 주방에서 깎으면 자다가도 금방 쫓아온다. 수박을 먹으면 식탁 밑을 떠나지 않는다.

 

 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과 살아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처럼 인류의 왕래가 없었던 시절, 그 지역적 특성을 갖고 집단 내에서 이어져 내려와 토종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영국, 프랑스와 독일 등에 여러 종이 있으며, 아프리카의 들개무리도 집단을 이루고 사는 유명한 종이다. 북한의 풍산개, 우리의 진돗개는 지역 내 교배로 이뤄진 순종이다. 산책길에 누런색 웰시코기를 만났다. ‘알콩’이라 했는데 보리와 비슷한 나이였다. 지난해에 두 마리 새끼를 낳아서 시골에 보냈다고 했다. 우리 보리는 종() 보존을 위해 난소를 제거하여 새끼를 낳을 수는 없다. 유전자 보존을 위한 사람들의 욕심이 묻어있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도 종을 지키려는 노력이 이미 선진국에선 이뤄지고 있다.

 

  개가 농촌 살림에 보탬을 주기도 했었다. 고향에서 살 때였다. 학교를 다녀와서 보니 꼬리치고 반겨야 할 ‘누렁이’가 없었다. 개 장수가 와서 팔았다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밥도 안 먹고 엉엉 울었다. 소몰이 때 따라다니고, 토끼몰이에도 나섰던 정든 개였다. 아버지도 서운하셨던지 그 뒤론 개를 사다가 키우지 않았다. 이웃집에서 대문 틈에 목줄을 걸어 개를 잡아간 것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릴 때 처음 봐서 인상이 깊었다. 지금은 보신탕도 시들해졌지만, 그 땐 여름철이면 보양식으로 많이 먹었다.

 

 핵가족시대로, 장수시대로 들어서면서 반려동물 1,000만 시대라 한다. 다양한 동물들이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재롱과 웃음으로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천변을 걸을 때 털도 깔끔이 손질하고 앙증맞은 옷에 빨강 리본 핀을 꽂은 애완견을 보면 무척 사랑 받고 있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귀여워 보이고 웃음도 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애완동물도 동물이다. 정이 들면 무척 예쁘고 귀여운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사람이 먼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가족처럼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산책 시킨다며 배변 주머니도 없이 개를 끌고 나와 아무 곳에나 똥을 싸게 하고 나 몰라라 그냥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캐나다에서는 곳곳에 배변처리 휴지통이 있었고, 주인은 꼭 비닐봉지(doggy-bag)를 가지고 다니며 오물을 주어서 처리했다. 어린애가 지나가도 목줄을 짧게 잡고 혐오감을 주지 않았다. 주인한테는 순할지라도 남에겐 돌발 행동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보리가 떠난지 며칠이 되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꼬리치고 반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리가 쉬던 곳을 바라보면서 다시 만날 그 날이 기다려진다.

                                                                             (201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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