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명여류인사'에 오른 송씨

2019.09.04 06:20

윤근택 조회 수:161

 ‘세계유명여류인사에 오른 송씨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그녀는 한국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간행한 세계유명 여류인사명단에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은 동서고금 평생 행복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뽑아 묶은 책이다. 그는 당시 평균 수명으로 따져 87세 장수를 누렸다. 그녀가 바로 여산송씨 부인(礪山宋氏 夫人)이다. 그녀는 중종시대에 영의정을 지낸 송질(宋軼)의 딸이며, 조선 왕조 최초로 두 번이나 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지낸 홍언필(洪彦弼)의 부인이고, 세 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홍섬(洪暹)의 어머니다. 이처럼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영의정을   ‘삼종(三從)’으로 둔 여인은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이기도 하다.

  아들 홍섬은 대제학 이조판서 우, 좌의정을 지내고 영의정을 3회나 역임했다. 이런 까닭에 당시 왕비는 송부인이 나타나면, 꼭 일어서서 마중하며 깍듯이 존경을 표했다고 한다. 그 까닭을 묻자, 왕비는 자신은 남편이 임금일 뿐이지만, 송부인은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모두 영상이니 어찌 내가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송부인은 예의범절이 밝고 부덕(婦德)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여장부였다고 한다. 송부인의 친정어머니는 성격이 거칠고 사나우며 행동이 과격하고 질투가 심하여 소크라테스 부인보다 더 악처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친정아버지 송질은 세 딸이 혹시 모전여전으로 어머니의 성격을 닮을까 걱정되어, 세 딸을 불러놓고 한바탕 연극을 하였다 한다. 딸들 앞에 약을 한 사발씩 내놓고 다그쳤다.

  “얘들아, 너희들이 어머니를 본받아 극성을 부리면, 다음에 시집을 가더라도 송씨 가문에 누가 미칠 터이고, 또 그 때문에 집안이 화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 얼굴까지도 먹칠을 하게 될 터인즉, 그럴 양이면 여기 이 독약을 모두 한 사발씩 들이마시고 죽으라.”

   그러자 두 언니는 절대로 어머니를 본받지 아니하겠다고 굳게 맹세하였다. 그러나 막내딸인 송씨부인은 선뜻 약사발을 들이키며 말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사람이 세상에 나서 자기 본 마음대로 살지 못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물론 그 약은 독약이 아니라 먹물이었다. 부친은 그녀의 기개에 껄껄웃어젖혔다고 한다.

   사실 그러했던 송씨는 처녀가 되었을 때에는 어떤 엽기적(獵奇的)인 행각으로 말미암아 데려갈 총각이 없어 혼기(婚期)까지 놓치고 만다. 그 엽기적인 행각이란, 사실 조선 최초 여성 운동 내지 여권 신장 운동과 맞물린 사건이기도 하다.

 《錦溪筆談(금계필담)에 따르면, 송씨는 처녀 때부터 엽기적인 행각으로 유명했다. 처녀 시절, 송씨의 마을에 그녀 모친처럼 질투가 심한 부인이 살고 있었다. 질투에 질린 남편은, 아내의 손가락을 잘라 온 동네에 보여주었다. 투기가 심한 여인은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손가락 얘기를 들은 송씨는 여종에게 그 손가락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여종이 손가락을 가져오자 상 위에 올려놓은 뒤 술을 붓고는 조문(弔文)을 지어 바쳤다.

  “그대는 여자로서 죽어도 마땅하니, 내 어찌 조문하지 않으리오?”

   사실 이 조문의 함의(含意)야말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이 소문이 퍼지자, 사대부들 사이에서 송씨는 그만 결혼 기피대상이 되고만다.

   어느 날 그런 소문을 듣고도 어느 사대부 집안의 자제가 송재상의 집을 찾아들어, “말괄량이 막내따님과 결혼하겠습니다.”하며 크게 용기를 내게 된다. 그가 후일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지낸 홍언필이다. 그러고 보면, 홍언필이란 인물도 비범한 인물이다. 그가 그 말괄량이 송씨와 결혼을 결심한 것은,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정도 여자는 충분히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송대감 집에서는 그처럼 경사가 났으나, 대감의 부인은 딸이 소박맞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꽃피는 5, 신랑·신부는 혼례식을 치룬 뒤 신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갑자기 신랑 홍언필이 벌떡 일어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소리쳤다. 신부가 놀라 깨어 보니, 자기 이부자리 밑에 인분이 있는 게 아닌가? 분명히 자기 소행이었다. 너무나 급한 나머지 신랑에게 싹싹 빌었다. 한번만 봐주면 말 잘 듣고 하자는 대로 하겠다고. 신랑은 재삼 강조한다.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첫날밤 일을 동네방네 나발 불겠다고. 새색시 송씨는 결혼과 동시에 성격이 갑자기 변하여 모두들 놀랐는데, 홍언필 부부는 아들 홍섬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부인이 회갑을 맞던 날, 홍언필은 부인에게 술잔을 건네면서 회포에 쌓인 첫날밤 이야기를 꺼낸다. 그날 밤 인분은 자기가 신부 버릇을 고치러 일부러 한 일이었다고. 이 말을 들은 부인이 갑자기 처녀 때 강짜가 되살아나 맹수처럼 남편에게 달려들어 그 탐스럽던 턱수염을 뽑았다고 전해진다.

   또, 일설(一說)에 의하면, 아니 역사 드라마 각색에 의하면, 첫날밤 스토리는 더 드라마틱하다. 새신랑이 새색시의 옷고름을 막 풀려고 하는데, 분위기 없이 마냥 뻣뻣한 새색시. 그때 마침 야참을 상에 받쳐 들고 여종이 마님!”하며 신방에 들어선다. 새신랑은 부러 여종의 손목을 슬며시 잡게 된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날 아침, 새색시는 첫 조반을 지어 상을 들고 신랑 앞에 나타난다. 상보자기를 걷던 새신랑은 기절초풍하게 된다. 상에는 돼지 생족발 두 개가 얹혀 있었다.

  “이번에는 이 정도에서 그칩니다. 앞으로는 더한 일도 있을 수 있을 터이니, 서방님께서 잘 알아서 처신하시오.”

   즉, 한눈팔지 말라는 경고였다.

   다시 위 단락에 적힌 이 말을 들은 부인이 갑자기 처녀 때 강짜가 되살아나 맹수처럼 남편에게 달려들어 수염을 뽑았다고 전해진다.’에 관한 사항 보충이다.

   어쨌든, 송씨부인은 결혼 후 조신(操身)하게, 숨죽이며 30여 년 살았다. 송씨부인의 내조(內助)로 과거에 장원급제한 홍언필은 영의정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겹경사로 아들 홍섬도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세월 동안 송씨부인은, 자기한테 말도 제대로 걸지 않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의 날마다 뒷동산에 올라 울화통을 달래려허공에다 대고 고래고래 고함치곤 하였다. 그녀를 따르던 여종은 그 속을 몰라 했다.

  “ ‘!!! ’나도 요 다음에 남자로 태어나면 ... .”

   영의정 홍언필은 첫 등청(登廳)하는 아들과 함께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집을 막 나서려 한다. 그때 홍언필은 자기 아들한테 귓속말을 건넨다.

  “아들아, 내가 왜 30여 년 동안 너희 어머니한테 말을 아니 하고 냉정하게 굴었는지 아니? 너희 어머니 기죽이려고 그리하였던 게야!”

   배웅차 뒤따르던 송씨부인은 그 말을 엿듣자 즉시 맹수처럼 남편한테 달려들어 수염을 확 뽑았다는 거 아닌가.

   아들과 함께 등청한 홍언필 정승. 임금과 신하들은 괴이한 홍언필 정승의 턱수염을 보고 다들 키득키득 웃어댔다. 본디 홍언필 정승의 턱수염은 멋있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자초지종을 묻던 임금은 그 표독한(?) 홍정승 부인한테 사약을 내리라고 즉시 명한다. 끌려와 임금님 면전에 굻어 앉은 송씨부인. 그녀는 어명대로 주저없이 사약을 들이키고 만다. 이때 홍정승은 아내를 쓸어안고, “여보,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소.” 통한(痛恨)의 울음을 터트린다. 그런데 어찌 된 일? 송씨부인은 기적같이 되살아난다.

   임금이 호탕하게 웃어젖힌다.

  “과인이 둘 내외가 어찌 하는가 장난으로 한번 해본 일이오. 그것은 사약이 아니라 꿀물이었소.”

   크게 속았다고 생각한 송씨부인. 남편을 쳐다보며 내뱉는 말이 걸작이었다.

  “ ? 영감, 이승인지 저승인지 분간은 못하였으나, 조금 전 나한테 잘못했소! 잘못했소!’울며 빌던 거 같더이다.”

   이렇듯 강한 의지와 기개를 겸비하였던 여장부 송씨부인. 그녀의 곁에는 그녀와 마찬가지로의지가 강한 남편 홍언필이 있었다. 과거시험에 두 번 급제한 조선조 유일한 인물 홍언필. 그는 1504(연산군10) 문과에 급제했으나 갑자기 사화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어 합격이 취소되었다. 중종반정 이후 사면되어 1507(중종2)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다시 벼슬이 올랐다. 한편, 송씨부인의 아들 홍섬은 대제학· 이조판서(吏曹判書) · 좌의정을 지내고 영의정(領議政)3회나 역임(歷任)했다.

   송씨부인의 삼종(三從)은 모두 평안도관찰사를 지냈다. 처녀 때 평안감사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가 감영 뜰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세월이 흘러 남편의 임지로 가니, 그 복숭아나무에 꽃이 만발하였으므로 감회가 남달랐다. 아들이 평안감사에 부임하여 같이 갔을 때에는 무더위가 한창이라 늙은 몸으로 힘이 들었다. 문득 그 복숭아나무를 올려다보니, 쇠잔하고 더위에 지쳐 잎사귀 등이 축 쳐졌으므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한숨 쉬며 말하였다.

   “나무가 이렇게 늙었는데 사람이 어찌 늙지 않고 배기겠는가.”

   송씨부인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과연 그녀는 미국 어느 매체가 묶은 책, ‘평생 유복하였던 여인들의 이야기에 오를 만하였다. 사실 이밖에도 송씨부인과 그녀의 남편 홍언필 정승과 그녀의 아들 홍섬에 관한 재미나는 일화는 꽤나 많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 줄인다.

   문득,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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