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닮고 싶다

2019.09.09 06:48

정남숙 조회 수:18

노을을 닮고 싶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날이 어두워지기 전 서둘러 일을 끝내고 뒤 갈무리를 마쳤다. 냇가에 내려가 대충 씻고 귀가를 서둘렀다. 해가 서산으로 숨바꼭질을 하려나 보다. 일주일 동안 세상 시름 다 내려놓고 농장에 엎드려 서툰 일을 하노라니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편안했다.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귀가 길에 저녁까지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돌아오는 길목에 자주 들르는 몇 곳의 단골집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주일동안 비워두었던 우리 집 냉장고에 당장 끓여먹을 것이 없을 것 같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찬거리를 사가지고 간들 하루 종일 농사일에 녹초가 되었으니, 저녁까지 지어먹기란 무리라는 남편의 배려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부부의 주말풍경이다.

 

 우리의 저녁식사를 해결해 주는 곳은 낯익은 고향사람들이 경영하는 식당들이다.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사람도 있고, 그의 자녀들이 운영하는 곳들이다. 우리 농장 바로 옆에는 면을 좋아하는 남편덕분에, 자주 배달시켜 먹는 중화요리집이 있다. 농장에 들어오는 길이 복잡하고 장마에는 길이 없어져 들어오기 힘들어도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언제나 생수까지 덤으로 배달해 준다. 조금만 나오면 내 외갓집 친척이 하는 순두부집은 항상 모두부를 챙겨준다. 친정집 근처에는 남원추어탕집이 있어 친정에 가듯 부담 없이 찾는 곳이다. 우리 부부는 채식을 선호하지만 고된 일을 하고 나면 가끔 감자탕 집을 찾기도 한다. 감자탕 집은 시내 가까운 곳에 있는데 한 동네에서 자란 동생 같은 친구가 아들과 같이 하는 식당이다. 우리는 농장에서 수확한 것들을 가끔 이런 식당들에 가져다주기도 한다.

 

 주말을 맞아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오늘의 식단은 감자탕으로 정했다. 서산에 기우는 해를 보고 식당에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밖이 붉은빛으로 꽉 차있다. 저녁 해가 떨어질 무렵 식당에 들어갔으니 지금쯤 대지에는 어둠이 깔려 있어야 했다. 예기치 않은 밖의 풍광에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전에 없던 식당 외등을 여러 군데 설치해 놓았나보다 생각했지만, 그러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빛은 아닌 것 같다. 내 눈에 보이는 한 우주 전체가 붉은 빛으로 환하게 밝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황홀한 느낌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녁노을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장관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보통 봐온 그런 노을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은 특별한 날 일출과 일몰을 보려고 높은 곳이나 명소들을 찾아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떠난다. 우리도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 때 새벽 2시에 일어나 시내산을 올랐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국내에서도 강릉 정동진이나 관악산 꼭대기를 수 없이 올라가 해가 떠오를 때 소원을 빌어보지만 떠오르는 해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는 어김없이 서산에 기울고 있다. 그러나 노을의 모양은 다양하다. 노을의 모습을 ‘노을이 지다’로 표현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노을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노을을 그리고 있었다. 과거가 회상되며 조금 전 황홀한 노을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루의 시작과 끝도 종요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후 예기치 않은 보너스를 받은 것 같다. 저녁 잠자리에 누워 있어도 내 눈에는 조금 전 보았던 저녁노을이 사라지지 않고 밝은 빛 그대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녁노을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오늘 같은 노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주는 하늘의 선물 같다.

 

 내가 노을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아득히 먼 옛날 꿈속에서다. 그러나 꿈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저 건너 큰밭에 놉을 얻어 김을 매러 가셨다. 해가 설풋해 졌는데도 오시지 않는 할머니를 마루 끝에 앉아 기다렸다. 사립문 밖에서 서성거려 봐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츰차츰 찾아 나서 신작로를 지나 냇가에 다달았다. 냇가에는 듬성듬성 커다란 돌이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다. 뜀뛰기 하듯 하나하나 넘다보니 건너편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갈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어느 쪽에서 오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우리 큰밭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모른다. 신작로 옆 텃밭은 알지만 저 건너 큰밭은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으니 방향도 모르고 있었다. 냇가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기로 했다. 마지막 징검다리 돌 위에 앉아 까만 고무신을 벗어놓고 물속에 발을 담갔다.

 

  돌 사이로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냇물은 내 발바닥을 간질이며 발목까지 적시고 있었다. 물속에서 노니는 작은 물고기들과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보니 멀리 보이는 산에 불이 난 것 같았다. 큰일이 났다. 저 산이 다 타버리면 어쩌지, 안타깝기도 하고 무서워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놀라 넋을 잃고 망연자실 앉아있는 나를 누가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할머니가 오셨다. 머리에 쓰셨던 수건을 벗어 옷을 툴툴 털어내시며 손발을 씻고 세수까지 하셨다. 할머니가 부르시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저 산에 일어난 산불이 점점 꺼져가고 있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괜히 아쉬움이 남기도 하여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할머니는 내 맘을 아셨나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같이 바라보시며 “저건 산이 불타는 것이 아니고 저녁노을이란다” 말씀해 주셨다. 저녁노을? 노을이 뭘까 저녁에 할아버지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노을의 그림을 내 맘 속에 저장하고 있었다.

 

 노을이 생기는 이유는, 빛의 산란(散亂)이 파동(波動)이나 입자가 물체와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지는 현상이다. 빛이 지구의 대기를 통과할 때 일어나는 산란은 레일리산란인데 이 산란은 파장이 짧을수록 산란의 세기가 강해지고 태양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낮에는 파장이 짧은 푸른색 계열이 많아 하늘이 파랗게 보인다. 반대로 해질녘에는 태양과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어 푸른색 계열은 모두 산란되어 없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색 계열의 빛만 남아 저녁노을이 붉어지는 것이라 한다. 저녁노을은 해가 서산에 넘어가고 있으므로 낮게 떠있는 상태라 파란색이 흩어져 나간 후라서 남아있는 붉은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더욱이 공기 중에 작은 먼지 알갱이가 많을수록 파란빛이 더 많이 흩어져 빛이 더욱 붉게 보인다고 한다. 1991년 필리핀의 피나투보화산 폭발로 엄청나게 많은 화산재가 공기 중에 올라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유난히 붉은 저녁노을을 볼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옛날 선비들은 태어날 때 부모님들이 지어주신 이름 외에 자()를 쓰거나 호()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았다. 내 주위에 글을 쓰는 친구들 중에 아호(雅號)를 사용하는 문우들이 있다. 나름대로 자기의 이미지를 따라 아호를 지었다. 옛 문인들이 그림이나 글씨를 써놓고 본인들의 낙관과 자()나 호()를 쓰는 것이 좋아 보여 나도 나중에 커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자나 호를 사용한다면 나는 ‘노을’이라 하고 싶었다. 당치도 않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돌아보면 내 이름을 날린 일도 없었고, 앞으로 날릴 일도 없을 것 같다. 겨우 어설픈 글 솜씨로 문인이라 소개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아호를 사용할 입장도 아니고 호를 써볼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어렸을 때 내 맘 속에 저장해 놓은 것을 꺼내놓고 싶었다.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아호를 지어 본다면 나는 단연코 ‘노을()’ 아니면 ‘하여(霞如)’라 할 것이다.

 

  한자로 ‘노을()’이라 써본다. 늙을 노() 새을()이다. 늙음은 당연히 오는 것이니 가까이 두어도 괜찮을 것 같고, 으뜸보다 버금이 좋아 갑()보다 을()이 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늙으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또 ‘하여(霞如)’는 노을 하()에 같을 여(). 노을 같이 ‘노을을 닮고 싶다’는 의미다. 할아버지가 일러주신 말씀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린 손녀에게 알기 쉽게 일러주신 말씀이다. 햇님은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는 동안 세상을 비춰주고, 하루 일을 마치면 잠자러 들어갔다가 내일 아침 다시 뜬다고 한다. 그러나 노을은 지는 해가 아쉬워 잠시나마 해님 대신 이 세상을 비춰주고 싶어, 저만치 넘어간 햇빛을 받아 노을이 되었다고 한다. 너도 커서 노을 같은 예쁜 사람이 되어라 하셨다.    

 

  해는 뜨고 지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시간이 되면 넘어가게 된다. 우리네 인생도 시간이 되면 사라지게 된다. 우리의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마지막 짧은 순간이지만 나도 여운을 남겨보고 싶다. 마지막 촛불이 꺼지면 갑자기 어둠이 몰려온다. 해가 지면 어둠의 세계다. 인생도 생이 다하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소멸과 탄생이 반복되는 윤회()와는 거리가 멀다. 오늘의 태양은 오늘 지고 만다. 내일 뜨는 태양은 오늘의 태양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촛불은 더 밝은 빛을 발하고 서산에 지는 해는 저녁노을을 남겨준다. 내 삶에도 여운을 남기고 싶다. 내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모든 것을 승화(昇華)시켜 짧은 시간이라도 여운을 남기는 ‘노을을 닮고 싶다’는 멋있는 생각을 해 본다.  

                                                                                                            (201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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