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고추

2019.09.14 16:28

최상섭 조회 수:10

오이고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요즈음 식단에 오르는 풍성한 채소 중 변형된 채소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그중 종을 개량하여 크기가 다르거나 모양새가 다른 품종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아예 모양이 다른 품종으로 개량된 채소류를 보면 참으로 희한하다. 며칠 전 크로아티아에서 시집온 제자가 참외수박을 들고 와서 깜짝 놀랐다. 색깔은 참외의 노란색이고 크기는 둥그런 수박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수박이었다. 연유를 묻는 내게 크로아티아에서 씨를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자주 가는 음식점에서 가지고추를 식단에 내놓아 처음 보는 나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색깔과 크기는 가지 모양이고 맛은 오이고추 맛이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우리네 식단의 채소들도 예전에 보지 못한 신기한 채소들이어서 야채류를 좋아하는 내게는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호평을 받고 있는 케일의 여러 종류를 보면 더욱 그렇고, 참으로 맛깔 나는 채소들이 많아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나는 작년에 학교의 빈 공터에 두럭을 만들고 검정 비닐을 사다가 두르고 오이고추 37포기를 심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이 더러 호스로 물을 주어 가뭄을 타지 않고 고추나무는 잘 자랐다. 3주가 지나자 넝쿨이 우거지고 고추가 열기 시작했다. 흰머리가 반백이시어서 연륜이 돋보이시는 K 선생님께서 고추는 자꾸 따주어야 많이 열린다고 하셨다. 나는 매일 비닐봉지에 길고 맵지 않은 고추를 따 처음에는 물을 주신 직원들, 다음에는 여 교사들, 그리고는 원로 교사 순으로 하루에 한 번씩 고추를 따다 드렸다. 꼭 집에 가져다 드리라는 말을 언제나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직원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찾아간 음식점에서 오이고추가 쌈장과 함께 나와 맛있게 먹는데

 “선생님, 그 오이고추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하고 L교사가 물었다.

 “글쎄요. 우리학교 오이고추와 똑 같네요.

 “말을 해야 혀, 말어야 혀?

 “그야, 하셔야지요.

 “선생님, 정말로 모르세요?

 “모르니까 묻지요.

 “선생님, 어제 고추를 주신 O선생은 싱글이에요.

 “어제 이 집에 가져다주었어요.

 “아아, 그래요? O선생님한테 미안한 일이네요.

 “미안하기는요. 선생님 마음이 비단결이시지요.

 새로 부임하셔서 그 선생님께서 상처하신 줄 몰랐다. 그래도 내가 정성들여 가꾸고 그 채전에서 딴 고추를 음식점에 가져다 준 심사는 너무하지 않았나 하는 일말의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O교사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간편한 식사가 우선이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왜 못하고 내 입장대로만 생각한 것일까, 마음을 고쳐먹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100년을 해로할 수 있음은 하늘이 준 천운이 아닌가? 자주 아프고 그로 인해 짜증을 많이 내는 집사람에게 그래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잘 대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부디치면 참지 못하는 내 성격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음도 알아야겠다. 오이고추 한 봉지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세심(洗心)의 기회가 되었다.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가서 작은 쌈장 하나를 사고 오이고추를 절반만 따서 여학생에게 부탁하여 깨끗하게 씻은 다음 식 비닐로 싸고 함께 비닐봉지에 담아 O교사 앞으로 다가가

 “O선생님, 설립자님께서 날마다 가정방문을 하라고 강조하시는 것 같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선생님 댁으로 가정방문을 갑니다. 꼭 집으로 가지고 가셔요.

 “선생님, 이렇게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다른 선생님들도 다 나누어 드리는 학교에서 농사지은 농약 안친 것이어요. 그냥 편하게 받으셔요.

 “내일 제가 점심 살게요.

 “그러셔요. 비싼 오이고추 값을 받겠습니다.

 

  8월 말쯤 고춧대를 뽑아내야 할 때가 되었다. 싱싱한 고춧잎이 아까워 나는 마구잡이로 훑어서 잎과 여린 고추를 따 큰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리고는 내외간에 사랑쌈을 잘하는 친구인 J교사에게 주면서 J선생이 따 왔다고 하라고 일렀다.

 “응 고마워.

 “내일 받았다는 확인서 가져오고.

 “알았어.” 하며 J교사는 빙그레 웃었다.

 

 세상을 어찌 빵만으로 살 수 있겠는가? 새삼 땅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이고추 반 봉지 혹은 한 봉지와 고춧잎 한 봉지로 세상인심을 다 얻은 것처럼 오늘은 기분이 좋다. 그야말로 기분 짱이다.

 

 금년에는 배추를 조금 심어볼까 생각 중이다.

                                                    (201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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