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줄

2019.09.17 06:41

김세명 조회 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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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연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줄이 끊어져 가물가물 산 너머로 사라져 간 연()을 보는 어린 내 마음은 아쉬웠다. 방패연과 실에 유리가루와 아교를 먹여 얼레에 감아 공을 들였건만 실이 끊어져 버렸다. 해는 저서 어두운데 연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날, 나는 심한 열로 꼬박 하루를 앓았다.

  남은 실을 얼레에 되감듯이 꿈을 먼 하늘에 날려 보낸 뒤, 허전한 마음으로 아쉬워하며 살아온 것이다. 줄이 끊어져 아득히 사라진 연 모습은 언제나 꿈으로 빈 하늘에 남아 있다.

  나는 그 뒤로 손수 연을 띄우지 못했다. 아니 띄우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남이 띄우는 연을 쳐다보고 아쉬워하며 보냈다. 언젠가 의젓한 나의 연을 소망의 실에 달아 멀리 실어 보내리라 꿈꾸다 보니 어느새 한 세월이 지났다.

 

   이성을 알 나이인 사춘기에 이웃 소녀에게 처음으로 느꼈던 연정도 연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 간혹 길에서 마주치는 소녀에게 짐짓 내 마음을 외면하면서 의젓한 걸음걸이로 지나치기 일쑤였지만 연신 후들거리는 가슴과 달아오르는 얼굴을 느꼈지만 아무런 말도 못했다. 가장 궁금한 것이 소녀의 마음이고 두려운 것은 나의 마음을  들키는 일이다. 내 마음을 숨긴 채 은근히 내 몸매를 과시하기도 했다. 꿈과 현실이 사람 사이가 왜 이다지도 먼가 생각했었다. 남이 띄우는 연처럼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동안 소녀는 내 앞에서 영영 떠나고 말았다. 너무나 순진하고 용기 없는 나를 한 없이 미워하며 남대천 모래톱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미련을 두고 군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 끊어진 연은 되찾지 못하고 이내 거친 숨만 몰아쉬며 청춘을 보냈다. 사는 것이 끊어진 연줄처럼 허망하여 좌절했다. 직장에서도 줄 없이 사고무친으로 살아왔다. 사는 것도 줄이 있어야 했다. 학연과 지연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연을 날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줄이 끊어진 채 산 너머로 사라지는 연의 모습을 본다. 꿈을 깨면 언제나 마음이 허전하다. 끊어진 연줄은 많은 인연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내 마음도 무디어졌다. 나에게서 아주 떠나버린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그래서 추억은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내가 처음 띄운 연줄이 끊어지지 않았던들 그것은 나의 기억속의 물체에 불과했다. 연줄의 끊어지는 아픔을 알았기에 나는 성숙해 질 수 있었고, 만남의 즐거움과 헤어짐의 아픔도 배웠기에 끊어진 연줄은 추억이고 아름다움이다.

 

                                                   (201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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