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추석명절

2019.09.20 17:47

임두환 조회 수:7

아주 특별한 추석명절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두환

 

 

 

 

 

 

  올해는 풍성하고 넉넉한 추석이었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제13호 태풍 ‘링링’이 중부지역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갔다. 처음 예보에는 전남 목포와 전북 군산을 거치겠다고 해서 모두 긴장했지만 큰 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추석 전만해도 날씨가 끄무레했는데 추석이 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창한했다. 이번 추석에도 여느 때와 같이 차례를 지냈지만, 성묫길에 나선 내 마음은 바빴다. 성묘에 참석할 친족들을 생각하여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먼저 도착해야 했다. 추석 한 달 전부터 4형제 할아버지 자손들에게 이번 추석에는 꼭 참석해야 된다고 카카오톡과 문자메세시를 보냈기 때문이다.  

 

  2019622일부터 23일까지였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진안지역 조양임씨(兆陽) 묘소를 한 곳으로 모으자는 종중(宗中)결의에 따라 묘지이장작업을 시작했다. 당숙 임병선(秉善) 님께서 종중회장을, 내가 총무를 맡은 게 2001년이니 올해로 19년째가 된다. 종중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임기가 없는 만년 직책이다. 종중 일을 언제까지 맡아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눈을 감아야 끝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어 완주, 임실, 진안군에 있던 조상묘소 28기를 파묘(破墓)하여 화장(火葬)한 뒤,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471번지 조양임씨 종산(宗山)에 모시게 됐다.

 

  조양임씨 종중의 숙원사업이던 묘지이장작업은 시작되었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고르고는 15대 조상에서 24대 아버지 항렬인 병()자까지 유골함에 넣어 평장했다. 그 다음으로 사각대리석 위에 검정묘비를 세우고는 묘비사이마다 잔디를 깔았다. 묘소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나니 흐뭇했다. 묘지 주변엔 100여 년은 넘을 듯한 소나무가 숲을 이뤘고, 도로에서 30m쯤 떨어진 곳이어서 성묘하기에 좋은 자리라 생각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였다. 집안 어른들께서는 묘지 걱정을 많이 하셨다. 명절 때마다 이곳저곳을 찾으며 벌초를 해야 했고, 시제(時祭)를 모시는 날이면 자손들이 모이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지금, 25대 환()자 돌림에서 조상들을 한 자리에 모실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큰일을 하면서 임병선 회장이 앞장을 섰다. 과감한 용단과 사명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이런 대종중 일을 집행하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다행히 종중에는 넉넉한 돈이 있었다. 그렇지만 자손들의 뜻을 함께 하기위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이상은 종중에서, 아버지 항렬인 병자 아래로는 각 집안 자손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 보니 종중에서 1천4백만 원, 각 집안에서 98십만 원등 도합 238십만 원이 들었다.

 

 

  추석날 오전이었다. 아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서둘러 조상님 묘소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시각은 10시가 조금 넘었다. 교통이 막혀서 그렇겠지 하고는 챙겨간 술과 돼지수육을 비롯하여 갖가지 음식물을 내려놓았다. 묘소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숨을 돌리려는 참이었다. 승용차가 줄을 이어 들어서는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었는데 서울, 부산, 인천, 광주, 전주, 진안 등지에 흩어져 살던 4형제 할아버지 자손 60여 명이 차례로 나타났다. 참으로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보람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성묘를 마치고 소나무 숲 그늘 밑에 자리를 잡았다. 언제 보았던 얼굴들인가? 내 위로는 어른들 대여섯 뿐이고 거의가 집안 동생, 조카들이었다. 조카들은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어린 시절에 보아왔던 동생들은 이름을 대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앞으로 추석날 성묘 때면 가슴에 000의 아들, 000의 손자라고 이름표를 달았으면 좋겠다.

고 하여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참으로 기분 좋은 날이었다. 한자리에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다보니 옛 시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내 아들 진영(珍榮)이의 이야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잠시 쉴 때였단다. 주변에 나이 몇 살 더 먹은 형이 있었는데 그가 임()가여서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어느 날, 나로서는 딸이지만 아들 진영으로는 누나이던 순옥(順玉)의 결혼식이 있었다. 예식장에서 그 형을 만났다고 했다. 내 아들이 먼저

  “형, 이곳에 어쩐 일이야?” 그가 하는 말, “어, 우리 집안에 결혼식이 있어서.” 그가 묻는 말, “너는 어쩐 일이냐?” “응, 우리 누나 결혼식이 있어서.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헤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또다시 식당에서 마주쳐 음식을 나누다 보니 그와 아들과는 집안 8촌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촌극(寸劇)이 있을까 싶었다. 말이 8촌이지, 나와 그의 아버지와는 재종(6)간으로 너무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옛날 같았으면 집을 서로 오가며 가깝게 지냈을 터인데…

 

  모두가 헤어질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4형제할아버지 자손들이 제각기 직계 선영(先塋)들만 챙기느라 만나볼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하고 보니 끈끈한 혈육의 정은 너무도 뜨거웠다. 올해 추석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우리 자손들 마음도 흐뭇했지만, 조상들께서도 밤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시겠지 싶었다.    

 

                                    (201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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