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가 뭐길래

2019.09.24 05:55

고안상 조회 수:4

사주팔자가 뭐길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나는 지금까지 사촌 누나가 자형과 함께 서울에서 아들을 넷이나 두고 부자로 행복하게 잘 사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오래전에 어머니께서,

 “누나는 젊은 시절 부지런히 노력해서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단다. 그리고 그 돈으로 다시 부동산에 투자해서 지금은 큰 재산을 모아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단다.

라고 하셨다.

 얼마 전, 누나는 나에게 ‘해마다 봄이 되면 동네 사람들과 젓갈을 받으러 다니셨던 큰아버지가 생각난다.’며, 곰소에 다녀오자고 했다. 곰소에서 시장에 들러 구경도 하고, 생선도 산 뒤, 아리랑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드는 누나의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누나의 지난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누나의 삶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누나를 부르시더니

 “얘야, 너는 내장산봉우리 위에 데려다 놓아도 잘 살 것이다. 그러니 시집을 가려면 너보다 열 살 많거나, 아니면 너보다 두 살 적은 남자와 결혼을 하거라. 그러면 평생을 잘 살게 될 것이다. 꼭 잊지 말거라.

 당부를 하시더란다. 그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셨다고 한다.

 누나는 미처 할아버지 말씀을 부모님께 전하지도 못한 채, 서울에서 미원회사에 다니던 지금의 자형과 맞선을 본 다음,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처음에는 이름난 회사에 다니는 귀공자 같은 남편과 만나 달콤한 신혼생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단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자형은 돌변하여 학력이 낮다느니, 말이 많다느니 온갖 이유를 대며 누나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누나는 아이들이 있으니, 그까짓 어려움쯤은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옷가게를 내어 억척같이 일을 했고, 또 강화도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그런데도 자형은 누나를 못마땅히 여기며 구박하고 또 외도까지 서슴지 않더니 마침내 헤어지자고 하더란다. 그런데 마음 같아선 갈라서고 싶지만, 자식들을 생각하니 차마 헤어질 수가 없었단다. 여러해 동안 온갖 어려움을 겪다 보니, 누나는 결국 건강을 잃게 되고, 실명할 위기까지 처하게 되었다.

 

 이때 마침 이웃 분이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을 소개해주어, 그분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오직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모든 어려움도 이겨내며 잘 살고 있단다. 그리고 자식들도 결혼시켜 아파트와 상가 그리고 적지 않은 부동산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누나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쩌다 집안 행사때 누나와 마주치면, ‘사촌 누나니까’라고 생각하며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잘 살고 있으니, ‘참으로 든든하다.’는 생각만 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읍 연지동 영무예다음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면서, 한 번 만나자고 했다. 그런 뒤,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누나가 다시 아파트를 팔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초, 누나의 동생인 사촌 형님을 만났더니, 누나는 그대로 정읍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곧바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한 번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누나와 만나 곰소항에 다녀오게 된 것이다.

 누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누나는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 생각해보니 유언이었어.

하며,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누나는 결혼생활 중에 고향 이웃집에 살던 친구의 남동생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단다.

 “동생, 나보다 두 살이 적었던 내 친구의 남동생을 만났는데, 내가 처녀 시절에 그 동생이 나를 짝사랑했었다고 고백을 했다네. 결혼 전에 그걸 알았더라면, 할아버지 말씀대로 그 사람과 결혼하여, 내가 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웠어. 그 사람도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에 누나는

 “동생, 어디 한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할아버지 말씀과 맞는지 한 번 알아보고 싶으니, 소개해주게.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누나와 함께 내 친구의 사촌 동생 집을 찾았다. 내 친구 동생에게 누나와 자형의 궁합을 보더니,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내용과 똑같단다. 누나는 자형과는 만나서는 안 될 궁합이라고 했다. 그래도 자형이 누나와 만나 이만치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사주를 타고난 누나 덕분이란다. 누나는 이제야 궁금했던 것이 모두 풀렸다며,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했다. 여생을 이곳 정읍에서 지내며, 신앙생활에 열중하고, 또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단다. 그러면서 지금 병석에 누워있는 남편의 마지막 삶을 위해 잘 보살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 누나를 바라보면서 ‘누나는 마음이 참으로 비단결같이 곱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누나가 살았더라면, 누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았을까? 할아버지의 당부대로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서, ‘도대체 사주팔자가 뭐길래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마다 자신의 삶을 거기에 의지하려 드는지 모르겠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201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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