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나타나셔서 내 목숨을 구해주신 할머니

2019.10.02 14:53

구연식 조회 수:38

꿈에 나타나셔서 내 목숨을 구해주신 할머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할머니와 손자는 한 다리 건너서 형성된 혈연이다할머니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끝자락에서 자기를 이어줄 유일한 혈육이 바로 손자다. 태어나 자라는 손자는 자식들에게서는 얻지 못한 희망과 사랑을 듬뿍 주어도 모자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피붙이다.

 

 손자는 제 부모한테는 꾸지람과 칭찬을 같이 받고 자라나, 할머니한테는 무한한 칭찬과 사랑만을 받는다. 그래서 손자의 투정의 해결사는 할머니다. 부모님께서 꾸지람을 듣고 울면서 달려가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곳은 할머니 치마폭이다. 손자의 억울함을 해소할 방법이 없을 때는 할머니의 허리춤 요술 주머니에 꼬불쳐 놓은 돈을 손자 손에 쥐어주면 만사 오케이다.

 

 우리네 농촌에서 할머니들은 가사노동 분담은 큰 몫을 차지했다. 할머니는 칭얼대는 손자를 업고 동네 마실을 다니며 달래기도 하고, 때가 되면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일하는 며느리한테 젖을 먹이는 일과 집에 돌아와 다독거려 재우거나 치맛자락으로 눈물 콧물 닦아주며 키우는 손자의 육아 분담이 있어, 믿고 며느리들이 논·밭에서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아들 일곱에 딸 셋 등 10남매를 두셨다. 아버지는 그중 셋째아들이어서 할머니는 큰아버지댁에서 사셨다. 한동네에 아버지 형제분이 5분이 살고 계셔서 할머니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지 못했다. 할머니의 친손자들도 집집마다 득실거려 다복하게 사셨다. 나의 아버지는 셋째아들이지만 사촌형은 없어서 나는 할머니한테는 제일 큰손자였다. 같은 집에 살지 않고 손자들이 많아서인지 나에게만 유별난 사랑을 주시지 않고 모든 손자를 골고루 예뻐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교복을 입은 나의 모습을 보시고 흐뭇하게 웃으시며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할머니의 손길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사촌동생들이 모두 다 어려서 내가 할머니 영정을 들고 상여 앞에서 걸어갔다. 상여 소리꾼 아저씨가 방울종을 치면서 애절한 상엿소리 선창을 하면 상여를 메고 따라오시는 아저씨들이 후렴으로 따라 하셨다. 지인들이 보낸 만사(輓詞)의 깃발은 상여 뒤에서 힘없고 슬프게도 펄럭이면서 할머니가 평소 다니셨던 고샅길과 동네 어귀를 지나 할아버지 산소 옆까지 갔다큰집에서 차례를 지낼 때 벽에 걸려 있는 그때의 할머니 사진이 지금도 그대로 있어 추운 겨울날 마당에서 화톳불로 밤을 새워가며 아버지 형제들이 할머니의 상을 치렀던 기억이 새롭다.

 

 내가 대학 다닐 때였으니 1960년대 말이었다. 나는 광주에서 하숙생활을 했다. 어느 일요일 날 하숙집 방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데 꿈속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셔서 하숙집 대문을 마구 두드리시며 큰소리로 "연식아! 연식아!" 애타게 부르셨다. 꿈에서 나는 너무 생생하고 부르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하숙집 방은 연기로 가득 차 있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고, 앞은 연기 때문에 분간이 안 되었는데, 방 천장을 보니 천장의 전기선이 합선되어서 천장 전체가 동시에 타버려 네모진 천장 불덩어리가 그대로 방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잽싸게 피했다. 만약 피하지 않았으면 인화성이 높은 나일론 섬유인 다우다 이불을 덮고 있어서 천장 불이 그대로 인화성이 강한 이불을 덮쳐 나는 큰 화상을 입었을 텐데 할머니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손자의 목숨을 구해주셨다. 너무나 영험스런 경우여서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개인의 운명을 자기 종교에 따라 기도와 실천으로 자기에게는 바람직한 운명을 인도해 줄 거라 믿는다. 그러나 혹자는 사주팔자나 관상 등을 통한 점괘로 자기 운명을 점치며 살아가기도 한다.

 

 생전에는 손자들이 많아서 표현력이 없으셨던 할머니지만 하늘나라에서도 굽어살피셔서 나의 명줄을 이어준 할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20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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