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울림을 준 배려심

2019.10.04 09:36

곽창선 조회 수: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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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울림을 준 배려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 창 선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옆에서 위로 하시던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눈앞에 서성인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마음고생을 할 때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보내준 미소다. 지난 일요일 평소 즐기던 파크골프 경기 중 내가 때린 골프공이 튕겨 앞에서 운동하시던 할아버지가 다치셨다. 돌발 상황이라 몹시 당혹스러웠다.



벨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8시가 조금 넘었다. 늦도록 TV 명화에 끌려 늦게 잠이 들었다가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평소 카톡도 주시며 파크골프 입문에 도움도 주신 전주PG J회장님께서 새로 조성된 동산동 필드로 초청하셨다. 거꾸로 인사를 받게 되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지난5월 개장행사 때 개인 사정으로 참석을 못해서 기회를 엿보던 중인데 초청을 해주시니 반가웠다. 서둘러 친구내외와 한내 다리 밑 PG경기장으로 달렸다. 사무국장 및 관계자의 환영을 받으며 필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받았다.



아담한 경기장은 전주와 삼례 간 한내천(백사장)을 가로 질러 놓인 다리와 철교가 동서로 어우러져 멋진 정취를 자아냈다. 건너편 언덕에는 완주의 8경인 비비낙안의 절경과, 누각에는 충절을 추모하며 피어오르는 향 연기가 가물거리고, 지천을 울려주는 기적소리가 묘한 여운을 남기는 멋진 정경이었다. 동서로 툭 터진 백사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에 품고 운동할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4명 일조로 두 팀으로 나누어 18홀을 돌았다. 생소한 구장이라서 까다로웠다. 평소 즐기던 구장보다 잔디가 무성하고 난이도가 높아 실수를 연발했다. 운동 후 간소한 오찬으로 정을 달래며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평소 잉꼬부부로 소문난 친구 내외가 조금 소원해진 듯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눈치 빠른 아내의 제안으로 진안 모래재 드라이브에 나섰다. 입구에 늘어선 단풍잎은 늦은 여름을 보내기가 못내 아쉬운 듯 더디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정상휴게소에서 약수를 마시며 주위를 살펴보니 곳곳이 검붉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 느낌이었다.



꼬불꼬불 비탈길을 돌고 돌아서 내려와 자동차를 OK골프장 방향으로 돌렸다. 친구내외와 각별한 문 사장이 반가워했다. 문 사장의 구수한 입담에 젖어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산 능선 따라 조성된 필드엔 골퍼들의 모습이 드물었다. 무슨 연유인지 요즘 이용객이 현저히 줄었다며 한숨이다. 국내 경기가 하향곡선에 접어들었다더니 그 여파가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신문지상에 디플레이션 곡선에 다다랐다고 한다. 인플레이션보다 더 살기 어렵다는데 걱정이다.



OK골프장을 떠나 상관 수원지 길로 방향을 돌렸다. 앞에는 친구내외가 타고 우리는 뒤에서 황혼의 데이트를 즐겼다. 만개한 코스모스가 아름다웠다. 주위에 늘어선 감과 대추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노랗게 물든 벼이삭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부부간의 다툼은 칼로 물베기라더니 순간 마음에 머물던 섭섭함이 자취를 감췄다. 여심은 분위기에 약한 것 같다.


수원지 바로 건너에서 20여 명의 남녀들이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시간도 남았으니 한 바퀴 돌고 가자며 아내가 앞장섰다. 간단한 채 하나와 공이 전부라서 마음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라도 즐길 수 있다. 필드에 입장하고 보니 마전동호인들이 어서 오라며 반겼다. 약간 무더운 날씨와 싸우며 필드에 조성된 장애물을 피해 가며 즐기는 묘미가 있었다. 16홀을 돌고 2홀이면 끝이다. 파 5홀 130m 거리라 마음을 다잡고 공을 날렸다. 순간 공이 날아가 펜스를 튕기며 다른 홀에서 즐기시는 노인의 가슴에 스치고 지났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 졌다. 당황한 나머지 달려가 환자를 살피고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급히 병원에 도착하니 휴진이라서 수소문 끝에 곰솔나무 인근 D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원장이 X레이 검사 결과 골절은 없고 타박상이란다. 순간 후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더 큰 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일주일간 상태를 기다려 보다가 결과에 따라 상의하자는 원장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진료실에는 환자분과 나를 위로해 주시던 여성분이 함께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환자분의 아내였다. 80이 넘었다고 믿어지지 않는 동안이셨다. 당황하던 나를 잔잔한 미소로 위로해 주셨던 분이다. 잠시 환자분과 상호 인적사항을 교환하고 진료비를 정산하려 하니 이미 완납되었단다. 알고 보니 할머니께서 지불하시고 약국에 다녀오시는 길이었다.



고통을 감내하고 계시는 남편 앞에서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여유에, 그만 흠뻑 빠지고 말았다. 당연히 내가 담당해야 할 몫을 스스럼없이 부담까지 하셨으니 말이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큰 울림을 주는 배려였다.

(2019.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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