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며느리 길들이기

2019.10.07 18:35

장지나 조회 수:204

철없는 며느리 길들이기

 신아문예 수필창작 수요반 장지나

 

 

 

 

  아들집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사흘만 지내고 가려했지만, 며느리는 언제나 하루만 더라고 한다. 무슨 일이든 제법 의젓하게 대처해 나가는 며느리를 볼 때마다, 그만때의 나를 생각하며 가만히 돌아서서 웃는다.

 

 나는 며느리라는 역할을 할 줄 모르는 철부지였다. 늘 시어머니를 골탕 먹이는 장난 꾸러기였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내가 먼저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시어머니가 먼저, 나한테 장난을 걸어왔다. 걸핏하면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놓고 식구들까지 합세해서 재미있어했다. 나는 언제나 놀림을 받는 억울한 막내며느리였다.

 

 어느 날이었던가?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기가 없었다. 안채로 건너가 보았다. 시아버지와 막내시누가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어머니가 안보여서 막내시누를 바라봤다. “오늘 우리보리밭 매는 날인데 그곳에 간 것 같다.” 고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런데 또, 의미심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시큰둥해져서, ‘어쩐지 오늘도 긴장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시어머니를 바라보고 같이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어머니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얘, 새아가! 너 오늘 보리밭 좀 매볼래?” 하셨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해 하다가 재미 있겠다싶어, "!" 하고 시어머니가 챙겨주는 일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럴듯하게 호미도 들고 따라나섰다. 밭에 간다고 해봤자 바로 대문 앞이다. 밭 매던 동네아줌마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웃으며, “새댁, 오늘은 어쩌다 밭으로 쫓겨왔어?” 했다. 나도 같이 한바탕 웃었다.

 

  시어머니는 나한테, 호미로 밭매는 시범을 보이며, “내가 가서 새참 가져올 때까지 잘 매고 있어!” 하며 한 고랑을 지정해줬다. 나는 알았으니 빨리 가서 맛있는 거나 가져오시라며 등을 밀었다.

 

 남쪽에선 봄소식이 들려오지만, 겨울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날씨는 햇빛이 비추는데도 추웠다. 밭고랑은 살짝 얼어 있었다. 나는 업드려서 호미로 밭을 매기 시작했다. 나도 농부의 딸이라 풀과 보리는 구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잡풀들만 남기고 보리싹은 호미로 콕콕 쪼아 흙으로 덮어버렸다. 보리싹한테는 미안하지만 시어머니가 먼저 걸어온 장난이다.

 

  나는 시어머니가 놀랄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아줌마들이 눈치를 채고 산통을 깰까봐 참느라고 애썼다. 옆 고랑을 매고 있던 복순이가 보고, 화들짝 놀라는데 내가 쉿했다. 그렇게 한고랑을 거의 다 맬 때쯤, 추운 날인데도 땀이 났다.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시어머니가 내가 맨 밭고랑을 보며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얼떨결에 ‘잘 맸지요?’ 했다.

 

  시어머니는 기가 막히는지 내 등을 주먹으로 펑펑 치면서 나를 소 몰듯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아파아~’ 하며 나도 힘들게 일했으니 새 꺼리 좀 먹어야겠다고 생떼를 썼다. 시어머니는 “네가 먹긴 뭘 먹어! 자격이나 있어?” 했다. 나는 ‘그럼 일했는데 왜 자격이 없어요?’ 하며 말대답을 했다.

 

 집에 들어오니, 시아버지가 박장대소를 하며 시어머니한테, “봐라, 내 말이 맞지?” 했다. 시아버지가 미리 예언을 했다고 한다. “일을 시킬 사람을 시켜야지 두고 봐라, 그 장난꾸러기가  보리 싹을 다 쥐어뜯어 버릴 것이다.” 라며, 빨리 밭에 다시 가보라고 했단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날 믿었는지, “에이, 설마!” 하며 고구마를 삶고, 떡을 쪄서 새꺼리를 준비해 온 것이다.

 

  시아버지는 한참 웃다가 나를 바라보며 “얘, 새아가! 걱정하지 말거라. 보리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했다. 설령 살아나지 않아도 그 자리에 감자를 심으면 된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재미있는지 얼굴이 뻘겋게 되고 목에 핏대가 설 때까지 웃었다. 나는 무안해서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 샐쭉한 표정으로 앞에 가서 "왜?" 했. 시아버지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한 가마니짜리 쌀표를 나한테 용돈으로 주면서, “그래도 곡식은 귀히 여겨야 한다.”고 타일렀다.

 

  생각해보면 정말 철없는 며느리였다. 하지만 나로선,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집은 언제나 답답했다. 전주 시내라도 나가려면 일꾼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택시를 불러다 주어야 영화라도 한 편 보고, 병원에도 갈 수 있었다. 어쩌면 은근히 쫓겨나기를 바라면서 말썽을 부렸다.

 

  시부모의 깊은 뜻을 살면서 깨달았다. 같이 살고 싶은 며느리 길들이기인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럭비볼처럼 어디로 튈지 가늠 못할 막내며느리 길들이기는 성공이었다. 그 깡촌에서 우리 아이들 셋을 낳아 키우면서, 시부모의 뜻대로 순종하며 10년을 살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동안 웃을 수밖에 없는 사건과 사고들은 이루 말할 수 없.

 

  시아버지의 교육방법은 내가 잘못할 때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어 하고 같이 놀아 주는 것이었다. 제대로 교육 시키려 했다면 아마도 나는, 같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 시부모의 막내며느리 사랑은 친정집을 잊고 살 정도로 자상했다. 마을사람들과도 정들게 해줬다. 살다보니 또래 친구들도 많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왕래하며 오십년지기 친구가 되었다.

 

 내가 그려놓은 그림을 작정하고 가로막아, 그 너머의 풍경을 보지 못하게 했던 울타리는 견고했었다.  ‘원하는 삶을 살 수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난 돌도 동그란 돌과 섞여 구르면 동그란 돌이 된다고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니 원하던 그림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보리밭 사건 뒤 시아버지 말씀이 교훈이 되어, 나는 지금까지 곡식 낟알 한 개도 귀히 여기며 살았다. 농부의 며느리답게 말이다. 쌀 한가마니가 평생 수업료가 된 셈이다. 시아버지의 말대로 그때 흙으로 덮어 버렸던 보리는 신기하게도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서 생명력을 과시했다.

 

 영원할 것 같이 행복했던 날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시간들, 세상을 덮고도 남을 사랑을 주며 그 속을 살아가게 한 시부모님은, 내가 철들기를 바라지 않았다. 어느 날, 아픈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며 막내시누와 나를 부른 시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새아가, 철들지 말고 그냥그대로, 맑은 영혼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했다. 나는 뭔 소리를 하는지 몰라 ‘내가 뭘?’ 했더니 시아버지는 웃으며 내손을 꼭~ 잡아 주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시아버지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씀이었다.

 

 내가 지금 그 자리에 서있다. 그 시절, 며느리였던 나보다 훨씬, 의젓한 며느리가 내 곁에 있다. 물려받은 좋은 가풍으로, 며느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멋진 시어머니가 되어보고 싶다.

 

                                                  (2019.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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