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전주 초대석 '공감토크 결'

2019.10.22 01:56

정아람 조회 수:15

KBS전주 초대석 ‘공감토크 결’

김학 수필가 님 질문지



녹화일정: 10월 30일 (수) 오후 3시 20분 (3시 도착, 분장 후 녹화시작)

방송일정: 11월 6일 (수) 저녁 7시 40분~8시 30분, KBS1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간단히 작성해서 메일로 회신해주시면, (아주 간단히 2-3줄 정도)

답변지를 토대로 원고 작성해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잘못된 내용이나 수정 및 추가할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1-Q14. 인사 및 ‘지구촌 여행기’ 책 이야기


*이 수필집을 엮으면서 보니까 의외로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더군요. 그런데도 남아메리카나 인도는 아직도 밟아보지 못한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Q1. 방송제작자에서 수필가로, 퇴직 후에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데요.

오랜만에 방송제작현장에 오시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금암동시대에 정년퇴직을 했으니까 효자동 이 사옥에 오니 위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집에서 TV를 시청하면 프로그램 수준이 높아졌더군요. 후배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1999년에 홍현진 피디는 카메라맨 김은재 씨와 함께 다큐멘터리 <그 오두막엔 여든네 살 청년이 산다>를 제작했지요. 무주 어느 산꼴짝에서 취재를 한 내용인데 그 작품이 그해 한국방송대상에 출품하여 상을 받았고, 2001년에는 세계적인 방송상인 미국 뉴욕에서 피버디상을 수상했지요. 그런데 그 상을 우리나라에서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 방송이나 신문에 한 줄도 소개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전북대학교 신방과 김승수 교수에게 그 상이 어떤 상인지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그 원고를 받아보니 대단한 상이었어요. 그래서 그 원고를 KBS본사로 보냈더니 회사가 뒤집어졌지 뭡니까? 나중에 축하잔치를 하라고 예산이 내려와서 방송국 정원에서 큰 파티를 열기도 했었지요. 그때가 바로 윤대작 총국장시절이었습니다.

Q1-1. 저희 ‘공감토크 결’ 보신 적 있으신지, 보시고 어떤 느낌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이템을 잘 선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보충취재를 해서 영상화면을 더 삽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2. PD가 되시기 전부터 집필활동을 해오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필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신건가요?

*대학시절부터 썼지요. 대학교 1학년 때 전북대학신문에 <아웃사이더의 사랑 이야기>란 수필을 발표한 이래 꾸준히 수필을 섰습니다. 지금까지 수필집 16권과, 수필평론집 2권을 출간했습니다. 꽤 많이 썼지요?

Q3. 여러 권의 수필집을 내셨지만, 최근에 특별한 여행기를 내셨습니다.

‘지구촌 여행기’ 어떤 책인가요?

(답: ‘지구촌 여행기’ 책 소개)

*이 수필집은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기행문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수필집이지요. 13개국을 돌아다니며 쓴 수필 62편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중국 동북3성의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고 쓴 수필과 서유럽 4개국 여행기 그리고 미국 동부와 하와이 여행기가 빠져서 아쉽습니다. 그 여행기는 마로니에샘가에 원고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 마로니에샘가 관리자가 갑자기 세상을 뜬 뒤 그 사이트가 예고도 없이 문을 닫아 버려서 원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Q5. 여행을 글로 쓰고, 책으로 엮어야겠다고 생각하신 특별 이유가 있을까요?

*여행을 하고나면 무언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꼭 기행수필을 썼던 것입니다. 저는 수필 강의를 하면서도 제자들에게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귀한 달러를 소비했으니 꼭 기행수필을 쓰라고 권유합니다. 이를테면 여행비가 100만원이면 2편 이상 쓰라고 권합니다. 50만 원당 한 편씩 쓰리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내가 제자들에게 솔선수범하느라 더 열심히 기행수필을 썼는지도 모릅니다.

Q6. ‘지구촌 여행기’ 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는 건 작가님이 그만큼 많은 곳을 여행하셨다는 걸 텐데요. 원래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시나요?

*물론이지요. 대학시절엔 사학과에 다녔으니까 봄가을에 고적답사를 다녔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지요. 한국문인협회나 펜클럽이 주관하는 해외문학행사에 참가하곤 했어요. 지금은 문학단체마다 해외여행을 자주 가니 기회가 많아요.

Q7. 작가님이 맨 처음 비행기를 타고 나갔던 해외여행지, 어떤 곳이었나요?

(답: 미국)

*1989년 1월이었습니다. 미국 동부와 하와이에 갔었지요. 그런데 그때 썼던 기행수필은 이 수필집에 싣지 못해 아쉽습니다.

Q8. 세계 곳곳을 다니다보면 가장 힘든 점이 바로 의사소통이잖아요.

작가님도 이 이유 때문에 조물주를 미워하신 적이 있으시다고요?

(답: 너무 많은 언어 때문에 여행에서 소통이 어려웠다는 이야기)

*해외여행을 하면 언어문제가 골치지요. 음식이나 잠자리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 세상에는 6,500가 언어가 있는데 그 언어를 가록할 문자는 400개밖에 없다더군요. 유네스코가 이들 문자가 없는 언어를 어떤 문자로 표현하면 좋을지 연구했더니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이 뽑혔다더군요. 해외여행을 하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 때는 조물주가 이 세상의 언어를 하나로 통일했으면 이런 불편이 없지 않을까 싶지요. 우리나라의 국력이 신장되어서 우리 한글이 세계의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Q9. 여행 다니시면서 잊지 못할 추억,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몇 가지 들려주세요.

(답: 잊지 못할 여행 에피소드)

*언젠가 일본여행을 갔을 때 틀니를 빼놓고 가서 식사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있었지요. 또 미국 샌디에이고에 작은아들이 사는데 2013년 12월 하순에 3주일 일정으로 미국에 갔었는데 필라델피아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김형주라는 친구가 보고 싶어서 119만원을 들여 찾아갔어요. 그 친구는 내가 술을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소주와 맥주, 양주를 사놓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작은아들과 며느리가 술을 끊으라고 권하기에 그러마하고 약속을 한 뒤 그 친구를 찾아갔으니 술을 마실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우리는 엽차를 마시며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동유럽에 갔을 때는 프로이트, 카프카, 헷세, 과테 등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유적을 살펴보고 놀랐어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명한 작가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문학관이 없고 그가 살던 조그만 아파트나 병원에 자료를 전시해 놓고 박물관이라 이름을 붙여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어요. 계단이 좁다보니 한 팀이 가고나면 다른 팀이 올라가는 식이었어요. 얼마나 검소합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을고을마다 문학관을 크게 지어 돈 먹는 하마로 만들고 있으니 생각해 볼 일이려니 싶었습니다.

1989년 내가 전북문인협회 회장일 때 금강산문학기행을 다녀왔었지요. 그때 금강산 관광객 중 민영미라는 여성이 무언가 말을 잘못하여 억류가 되고 금강산여행이 일시 중단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여행이 시작되었는데 45명이 신청했다가 38명이 금강산에 갔었지요. 강원도 주문진에서 봉래호를 타고 갔었는데. 잠은 배에서 자고 낮에는 금강산 구경을 하곤 했었지요. 금강산에 갈 때 현수막을 가져갈 수 없었는데 금강산 호텔 앞에서 그 현수막을 펼쳐놓고 우리 문협회원 38명이 기념사진을 찍는데 북한 사람이 그 현수막을 빼앗아 가면서 사무국장을 데리고 가서 쉽게 풀어주지 않아 애를 태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몰래 찍었던 사진이 지금은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또 맛의 도시 개성에 갔을 때는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통일관에서 13첩 놋그릇 반상기에 담은 개성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었죠. 둥근상에 10명씩 앉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놋그릇에 음식을 담아 삼각형으로 늘어놓고 먹으라 했습니다. 언제쯤 그 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답: 북한여행 계기)

Q11. 특히 평양 말고 개성은 남한사람들이 자주 갈 수 없는 곳인데..

개성의 음식도 직접 맛보시고, 명소들도 다 돌아보신 소감이 어떤지요?

*박연폭포를 구경했는데 직접 보니 초라했어요. 고려박물관을 둘러보고 쇼핑센터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셨죠. 그리고 선죽교에 들러 기념사진을 찍었던 게 생각납니다.

Q12. 지금 남북관계가 전보다 많이 좋아졌잖아요. 북한에 다시 한 번 꼭 가서, 북한여행기를 꼭 쓰고 싶으시다고요?

(답: 통일을 염원하며 북한에 다시 다녀와 북한기행수필집 엮고 싶다는 이야기)

*남북관계가 좋아져서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면 나는 내 승용차를 몰고 가서 북녘 명승고적을 순례하며 기행수필을 써서 한 권의 기행수필집을 엮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언제쯤 오려는지 기대가 됩니다.

Q13. 한 나라를 가면 한 번에 다 볼 수가 없잖아요. 다시 찾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어떤 곳인가요?

(답: 자연의 보고인 캐나다. 언젠가는 다시 찾고 싶다고)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캐나다죠. 럭키마운틴에 올라 설상차를 탈 때 뚱뚱한 여성 운전사가 우리에게 한국어로 “타봅시다.” 하며 운전석으로 올라갔지요. 눈밭에서 달리는 묵직한 설상차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넓고 깨끗하게 잘 가꾸어진 캐나다는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습니다.

Q14. 책을 준비하시면서 원고관리를 잘해야겠다고 깨닫게 되셨다고 하던데요, 어떤 이야긴가요?

(답: 중국 여행기원고와 미국 동부 하와이 여행기, 서유럽 여행기 등의 원고를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는데 홈페이지가 폐쇄돼서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

*옛날엔 마로니에샘가란 사이트가 있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죠. 그 사이트에 내 방도 있었고 행촌수필문학회 회원들의 개인방도 있었어요. 누구나 수필을 쓰면 그곳에 모아두곤 했었습니다. 나도 역시 중국 동북삼성 고구려유적지를 둘러보고 쓴 기행수필과 서유럽 4개국 방문기, 미국 동부와 하와이 여행기들을 그곳에 모아두었는데 그 사이트 관리자 아동문학가 김문기 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 사이트가 문을 닫아버려서 그곳에 원고를 모아두었던 나는 다시 그 원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터넷시대라지만 어느 한 군데에만 원고를 저장해두면 마로니에샘가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으니 여러 곳에 저장해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Q15-Q24. 교사, 방송제작자, 수필가까지 그간 걸어오신 길 이야기

Q15. 지금부터는 작가님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들어볼까 하는데요.

초반에 제가 방송제작자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그 이전에 교사로 계셨어요. 어떻게 교사에서 프로듀서로 전직하게 되신 건가요?

*1968년 육군 중위로 제대한 나는 1969년 3월 전주해성고등학교 역사교사로 근무했고, 그해 8월에 군산서행방송 방송요원 모집시험이 있어서 응시했는데 내가 1등으로 합격했어요. 그래서 프로듀서가 되었고, 1980년 12월 군사정부가 언론통폐합을 단행했어요. 신문사는 일개 시도에 하나씩 남기고, 서해방송은 KBS와 통합을 시켰지요. 그래서 나도 KBS에 몸을 담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필은 대학시절부터 썼지만 1980년 월간문학 8월호에 「전화번호」란 수필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지요. 열심히 수필을 쓰다 보니 여러 가지 문학상도 받게 되고, 전북수필문학회와 전북문인협회 전북펜클럽 회장도 역임하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도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9월부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14년 동안 수필 강의를 했고, 2015년 3월부터는 신아문예대학에서 수필 강의를 하고 있어요. 전주 안골노인복지관에서도 2008년부터 수필 강의를 하고 있고요.

Q17. 30여 년 동안 KBS에 근무하시면서 라디오부터 티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셨는데요. 어떤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으세요?

*

Q18. 작가님이 프로듀서로 계실 땐 글 쓰는 작가가 따로 없어서, 글을 직접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점들이 작가님이 수필가로 나아가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어떠세요?

*그렇습니다. 내가 프로듀서로 일할 때는 작가가 없고 피디가 직접 원고를 썼어요. 1970년대 초 서해방송에서 <밤의 여로>란 프로그램을 맡았는데 날마다 200자 원고지 10장 정도의 수필을 직접 쓰고 감미로운 음악 3곡을 넣어서 15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했어요. 그런 프로그램을 2년 반 정도 맡았지요. 그 때가 나로서는 글쓰기 지옥훈련 기간이었습니다. 그런 뒤 전북의 문인들에게 원고를 청탁하여 방송을 했고, 나중에는 대전의 김영배 오완영, 청주의 이재인, 대구의 정재호 등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갔지요. 그러다가 어느 해 연말에 <밤의 여로> 필진들이 모여 망년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우리 전북에도 전북수필문학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정덕룡, 정주환, 김동필, 김학 등이 전북수필문학회를 결성하게 되었지요. 지금은 그 전북수필문학회가 <전북수필> 88호까지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정덕룡 회장에 이어 내가 전북수필 회장으로 있으면서 전북수필문학상을 제정했는데 1회 때부터 2명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잘 운영되고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Q19. 수필가의 길을 가신 건 1980년에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당선되면서부터인데요. 우리지역 수필가로서는 최초로 중앙문단에 등단하신 거라고요?

*그렇습니다. 수필집을 출간하신 분들은 있었지만 수필가로 등단한 분은 없었습니다. 최승범 시인, 허소라 시인, 이보영 평론가 등이 수필집을 출간했지만 수필가로 등단은 하지 않았어요. 내가 1980년 월간문학 8월호에서 <전화번호>란 수필로 중앙문단에 등단을 했지요. 그게 처음이었어요. 그 뒤 후배들이 줄을 이어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Q20. 지역에서는 중앙문단에 등단하기 어렵고 또 예전에는 수필을 배울 수 있는 전문교육기관도 없고, 전문서적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글 쓰는 법을 어떻게 터득하셨는지요?

*선배들의 수필을 읽으면서 요령을 터득했어요. 최승범 교수가 전북대학교 국문과에서 처음으로 수필론을 강의하셨는데, 그 때 <수필ABC>란 이론서를 출간하여 가르치셨죠. 그 책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Q21. 지금까지 18권의 책을 집필하셨습니다. 수필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후진양성에 힘쓰고 계십니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며 여러 문하생을 길러내셨다고요?

*2001년 9월부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수필창작반을 개설하여 14년 동안 가르쳤고, 안골노인복지관과 꽃밭정이노인복지관에도 수필창작반을 개설하여 강의를 했는데 참 보람이 컸습니다. 그런 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반을 개설하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강의를 시작할 때 수강생들로 하여금 칭찬거리를 찾아와서 발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필소재를 찾는 훈련이지요. 그리고 연말이면 신문이나 방송이 올해의 10대 뉴스를 선정 발표하듯이 <우리 집 10대 뉴스>를 쓰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또 신문의 신춘문예 응모를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장에서는 전북일보와 전북도민일보가 신춘문예에 수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올해부터 전라매일신문이 신춘문예를 신설하고 수필을 포함시키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 덕으로 지금까지 5명의 수강생들이 전북일보(김재희), 전북도민일보(정원정, 정성려), 경남일보(이주리), 동양일보(이은재)에 당선하여 이름을 떨쳤지요. 이런 전통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Q22. 학생들뿐만 아니라,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도 수필을 가르치셨는데요. 어르신들이 많이 좋아하시던가요?

*어르신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는 32명의 수강생이 있는데 80대 어르신들이 더 열심히 글을 쓰시기 때문에 70대와 60대 어르신들이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어요. 80대 후반이신 김길남 어르신은 2008년부터 수필공부를 시작하여 그 해에 등단을 하시고 벌써 8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셨어요. 또 70대 김현준 어르신은 7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셨습니다.

재미있는 출판기념식도 많아요. 신효선 수필가는 자신의 수필에 퇴직 교수인 남편의 사진을 섞어서 수필집을 출간하고 남편의 칠순잔치를 해서 눈길을 끌었지요. 또 화가 정정애 선생은 그림전시장에서 처녀시집과 처녀 수필집을 출간하여 팔순잔치를 열어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10월 12일 정읍에서는 부부수필가 고안상 김창임 두 분이 각각 수필집을 출간하여 합동 부부칠순잔치를 열어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Q23. 수필은 일정한 형식 없이 일상에서 느낀 생각과 체험을 글로 써내려가는 거잖아요? 쉬운 듯 가장 어려운 글쓰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원로수필가로서, 수필 잘 쓰는 법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수필은 삶의 문학이며 정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삶의 다양한 문제를 다르면서, 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글이라 할 수 있지요. 남의 좋은 수필을 많이 읽고 열심히 자기 글을 써보는 것이 좋겠지요. 수필가는 세 가지 눈을 가지라고 했어요. 자기를 보는 눈, 남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야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Q24. 우리지역 수필문학계를 단단히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셨습니다.

‘전북수필문학회’ 창립에도 함께 하셨다고요.

*전북수필문학회 창립은 서해방송의 밤의 여로가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은 우리 고장 전북에 수필문학단체가 9개나 있어요. 그래서 올해 전북수필문학회 윤철 회장이 수필가들의 힘을 모아 지난 6월 완주군 대둔산관광호텔에서 제1회 전북수필가대회를 마련해서 성황리에 1박2일 행사를 치렀지요. 앞으로 연례행사가 되리라 믿습니다.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행사여서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Q25-Q27. 앞으로의 계획 및 마무리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수필 강의를 계속하여 후진을 양성할 생각이고, 나 스스로도 열심히 수필창작에 힘쓸 생각입니다. 내가 열심히 수필을 쓰면서 나를 따르라고 해야 후배들이 따라올 게 아닙니까? 내년이면 등단 40년이 됩니다. 그러니 내년에 수필선집을 한 권 내고 싶고 세 번째 수필평론집도 한 권 출간하고 싶습니다.

Q25. 내년이면 수필가 등단 40주년입니다. 지난 4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신다면?

*한국문인협회는 등단 40년이 되어야 원로 대접을 합니다. 나도 명실공히 문단의 원로가 되는 셈이지요. 원로가 되면 모든 면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야 하니 개인적으로는 더 힘들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열심히 수필과의 사랑에 빠져 살았습니다. 열심히 수필을 썼고, 열심히 문하생들을 길러냈습니다. 수필이 이렇게 나의 노후를 행복하게 해줄 줄 몰랐습니다. 수필이 있어서 행복한 40년이었습니다.

Q26.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수필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수필은 아내와 함께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동반자입니다. 수필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노후를 보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필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리라 믿습니다. 수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를 열면 제자들이 첨삭 지도해 달라고 보낸 수필들이 나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한 편 한 편 열심히 읽고 첨삭하여 제자들에게 되돌려줍니다. 그런 일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 올해에는 어떤 제자들이 수필집을 출간할지 기다려 보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지금까지 문하생들이 펴낸 수필집이 무려 200권 가까이 됩니다. 우리 고장 전북이 한국수필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07 추억의 5일 시장 박제철 2019.10.31 1
1006 k를 만나는 행복 한성덕 2019.10.30 6
1005 활기찬 새만금 개발 이윤상 2019.10.30 7
1004 큰언니와 형부의 희수여행 최인혜 2019.10.30 22
1003 내 사랑 '해피' 최인혜 2019.10.29 2
1002 포천 구절초 백승훈 2019.10.29 5
1001 공감 토크 '결' 정아람 2019.10.28 14
1000 콩깍지 김세명 2019.10.28 5
999 가을 나들이 곽창선 2019.10.27 6
998 글감은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다 송준호 2019.10.25 9
997 호박꽃은 아름답다 김학철 2019.10.24 9
996 당신이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임두환 2019.10.24 13
995 부모님의 맑은 영혼이 깃든 '나의 서재' 은종삼 2019.10.23 9
994 바람처럼 스쳐간 인연 소종숙 2019.10.22 19
993 메리골드 백승훈 2019.10.22 7
» KBS전주 초대석 '공감토크 결' 정아람 2019.10.22 15
991 선생님과 어투 김성은 2019.10.20 10
990 얼굴 하광호 2019.10.20 7
989 책 표지 모음 양봉선 2019.10.20 901
988 하모니카를 배우면서 최동민 2019.10.20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