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은 아름답다

2019.10.24 14:15

김학철 조회 수:13

[금요수필] 호박꽃은 아름답다



김학철김학철

예로부터 얼굴이 예쁘지 않거나 뚱뚱한 체격의 여인을 일컬어 흔히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비아냥댔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은 당사자들은 매우 서운해 했고 성깔 있는 여자들은 버럭 화를 냈다. 여인만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고 만약 호박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결국 호박꽃은 예쁘지 않아 꽃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이다.

나 역시 호박꽃은 어딘가 모르게 천박스럽게 여겨왔다. 그런데 그동안의 이런 고정관념을 일순간 바꿔놓는 계기가 있었다. 1년 전 어느 갤러리에서 유명화가의 <꽃>을 소재로 한 개인전을 관람한 일이 있었다. 호박꽃, 가지 꽃, 참외 꽃, 도라지꽃, 들국화꽃 등 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을 그린 6호~10호정도의 비교적 작은 작품들이었다.

평소 하찮은 것으로만 여겨왔던 꽃들을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예전엔 미처 몰랐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며 어느 한 작품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이 있었다. 잎사귀와 줄기, 그리고 활짝 만개한 꽃, 피어나려는 꽃, 이미 만개했다가 지려고 축 늘어진 꽃잎 등이 어우러진 ‘호박꽃’ 그림이었다.

한참 보고 있노라니 새빨간 장미가 화장을 짙게 한 서양여인상이라면, 호박꽃은 마치 노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온아우미(溫雅優美)한 기품(氣品)이 서린 전형적인 한국여인상이었다. 호박꽃이 이처럼 예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보면 볼수록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이것이 예술의 힘이려니 싶었다. 평소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호박하면 생각나는 것이 많다. 해마다 4월초 커다란 구덩이를 판 다음 잘 숙성된 퇴비를 넣고 흙을 덮은 뒤 씨앗 또는 모종을 심는다. 그러면 초여름부터 애호박이 열린다. 겉이 녹색의 윤기가 잘잘 흐르며 촉촉하고도 예쁘장한 애호박은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채소류의 하나다. 애호박을 썰어 넣고 뚝배기에서 팔팔 끓는 토종된장찌개는 생각만으로도 구미가 당긴다.

애호박나물무침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여름이 되면 연한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과 함께 쌈을 싸먹는데 이때 보리밥과 함께 먹으면 단연 여름철 별미다. 여름철 보양식이 따로 없다. 추석 때는 애호박을 썰어 전을 부치기도 한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 연한 호박잎과 까칠까칠한 껍질을 벗겨낸 줄기, 그리고 호박순 끝부분과 엄지손가락만하거나 조금 더 큰 애호박을 으깨어 된장국을 끓이면 맛이 그만이다. 애호박을 썰어 말린 호박고지로 만든 정월보름날 아침의 나물무침은 취, 고사리와 더불어 우리 고유의 반찬이 아니던가!

어디 이것뿐이랴. 늙은 호박은 눈이라도 오는 겨울날, 호박죽 또는 호박떡을 만들어 먹으면 간식으로는 최고다. 호박엿과 호박 차를 만드는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호박의 주성분은 당질이지만 카로틴의 형태로 들어있는 풍부한 비타민, 칼슘, 철분, 인 등 미네랄이 균형 있게 들어있고, 특히 감기저항력과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분, 위장강화 등으로 회복기에 있는 환자나 산후부기를 빼는데도 좋다.

전국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호박밭이다. 밭 가장자리나 울타리, 담장, 언덕배기 등 장소나 토질을 가리지 않는 덕성도 지녔다. 6월초부터 여기저기서 웃음을 짓는 노란 호박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호박꽃은 더 이상 미운 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니 이젠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은 빈말이라도 삼가야 할 일이다.

 

△수필가 김학철 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이사·영호남수필문학회, 한국미술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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