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들이

2019.10.27 13:57

곽창선 조회 수:6

가을 나들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마지막 고갯마루 팔각정에 올랐다. 자주 찾던 아지트였다. 아내는 지난 추억이 그리운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마도 이곳에서 나눴던 사연들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동안 쌓였던 서운함을 달래주려rh ‘고마워요!’f라고 속삭였다. ‘싱겁기는!’ 그녀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백담사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식이다.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지난 6월 한라산에서 경험했던 사고 후유증으로 마음만 앞설 뿐이다. 가을은 입에서 눈으로, 마음까지도 뒤흔들어 놓았다. 이른 점심을 먹고 가사에 지친 아내를 위로할 겸 대아나들이에 나섰다. 소양 위봉사를 거쳐 대아호에 이르는 길은 드라이브에 적합한 코스다. 특히 이곳은 아내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달리던 추억의 샘터 같은 길이다.  

 

 아직 식지 않은 열기에 반반씩 물든 산야의 모습은, 어정쩡한 가을의 정취를 풍겼다. 소양을 지나 위봉산성에 오르니 짙어 오는 가을이 더욱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알싸한 산 공기는 황홀까지 했다. 한껏 가을의 기운을 들여마시니, 무색채의 청량음료를 마시는 기분이다. 구비 구비 위봉사 길을 돌고 돌다 보면 한 여성이(송옥자)떠 오른다. 사람 하나 비켜서기도 어려웠던 산골길을 가녀린 아녀자의 몸으로 도로를 개통했으니 그녀의 집념에 그저 놀랄 뿐이다.

 

 위봉산성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숙종 원년에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축조되었다. 일부 성벽을 제외하고는 성문과 포루 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군사적 목적 외에 유사시 이성계 영정을 모시고자 조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사료 중 한 곳이다. 넓다란 분지 좌로 올려다 보이는 위봉사, 검붉은 요사채에 둘러진 그윽한 정취가 마음을 이끌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지나쳤다.

 터널을 지나 내리막길 옆에 세워진 정자에서 쉬었다. 건너편 위봉폭포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서에서 동으로 60m 높이의 2단 폭포다. 폭포수는 주위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속을 헤치며 떨어져 분무를 이루고, 때때로 오색 무지개가 피어오를 때면 찾는 이들마다 탄성이다. 폭포수를 머금은 공기가 콧속 점막을 통하여 폐부 깊숙이 휘비고 들었다.    

 

 비탈진 도로를 따라 동상면 입석마을을 지나 단지동 다리에 다다랐다. 원등산과 위봉산 사이에 1964년에 축조된 동상, 검붉어지는 잎새들을 물위에 불러 모아, 빚어놓은 산수화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산비탈 찻집에 올라 대추차 한 잔을 마셨다. 실내에는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며,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27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의 노래가 애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찻집 여인의 수다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튀어 나왔다. 하얀 새털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세상의 어느 색채가 저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파랗다 못해 눈이 시렸다. ! 밀치고 드는 희열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동상호와 대아호를 가로 지른 다리를 지나면 추억의 오솔길이 나선다. 당시 비포장 길을 아내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달리던 기분은 남달랐었다. 순간 숨겨진 밀어들이 솟아나며 가슴을 뜨겁게 했다. 40여 년을 고락을 함께하며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도로 옆으로 약 1km쯤 조성된 단풍나무 길은 가을옷으로 갈아입기에 바쁜 모습이다. 구색을 갖추어가는 단풍나무 사이사이에 추억을 담으려는 여성들이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까르르까르르 괴성을 지르는데 그 모습이 마냥 보기 좋다.

 

 상하의 단풍색 가을옷에 브라운 색조의 화장, 단풍색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낭만에 젖은 그들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여성들의 특권인가 싶어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대아저수지는 1922년 국내 유일하게 돌로 축조된 완주 8경의 하나다. 만경강의 시원지로 완주, 익산, 옥구의 식수 및 농용수로 역할을 다해 왔다. 주위의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진 운암산과, 우아하고 부드러운 산세의 동성산 사이에 위용을 뽐내던 관광지다. 푸른 물빛에 어우러진 풍경이, 잔잔한 물결에 출렁일 때면, 오색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느낌이 든다.  

 

 어느덧 마지막 고갯마루 팔각정에 다다랐다. 동서 사방에 퍼지는 대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병역의무를 마치고 사랑을 속삭이던 추억들이 스멀거려, 숨었던 밀어들을 더듬어 보았다. 저물어 가는 노을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2019.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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