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

2019.10.28 13:32

김세명 조회 수:5

콩깍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콩깍지는 콩을 털어내고 남은 껍데기를 말한다농부의 장남인 나는 아버지의 일을 돕는 게 숙명이었다. 공군에서 제대한 후에도 일은 계속되었다. 1967년도 여름, 마당에서 도리깨로 콩 타작을 하고 있는데, 이종 여동생이 찾아 왔다.

 "오빠, 뭐 혀?"

 "보면 모르냐? 콩 타작하잖아?"

 "오빠, 이리와 봐. 오빠, 머리 좋으니 경찰시험 한 번 봐."

 "어떻게 알았냐?"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며?"

 나는 반갑고 고맙기도 하여 전주로 나와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콩깍지의 인연이다. 그해 9월 1일자로 발령을 받아 111전경대로 배속되어 경찰생활이 시작되었다. 여동생은 전주여상을 다녔고, 내가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졸업하고 혼기가 차니 무주경찰서 근무하던 순경과 사귀는 중이었다. 매제가 시험을 보도록 권유했으리라.

 사람은 우연한 기회가 인연이 되어 직장과 이성을 알아 결혼도 한다. 직장에 들어가니 의주가  해결되고, 사랑의 콩깍지도 알았다. 경찰생활을 하는 동안 감내하기 어려운 일은 없었다. 농사일에 비하면 쉽고 단순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질서유지를 하는 게 경찰의 임무다. 35년 간 경찰로 종사하며 경찰은 ‘콩깍지’와 같다고 생각했다. 콩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콩을 보호할 콩깍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찰은 ‘콩깍지’ 와 같은 일이니 국민을 위해 충실히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쉽게 생각하니 경찰의 업무가 보람도 있었고 인내심도 길러주었다. 내가 농부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며 일을 가르치셨다. ‘콩깍지’라는 생각을 터득한 것은 아버지의 덕이다. '그 때 결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아찔하다. 농사로는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공직에 들어온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필부필부인 산골 나무꾼에게도 그 나름의 생활철학이 있다. 내가 인내하며 우직하게 공직에 충실한 바탕에는 ‘콩깍지’가 뇌리에 들어 있었다. 어렵고 힘들 때는 ‘콩깍지’를 연상하고 인내하며 천직을 지켜 2001년 말 경위로 정년퇴직했다. 노후에 연금으로 생활하며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니, ‘콩깍지’는 사랑이고 행복이며 내 삶의 보람이었다.

 

 

*‘콩깍지’는 2001년도『수필과 비평』 신인상 등단작입니다.

                                                    (2019.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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