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해피'

2019.10.29 13:36

최인혜 조회 수:2

 내 사랑 ‘해피’

                 

             꽃밭정이 수필 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최인혜

                       

                                 

 

  남편과 둘째아들이 경영하는 가구점 창고에는 길고양이들이 산다. 집고양이가 아니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몇 마리나 되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자유롭고 그들 나름대로 편안하게 살고 있을 따름이다. 먹이가 부족하지 않게 매일 시간 맞춰서 주고, 새끼를 낳아 자라고 그것들이 다시 어미가 되어 세대를 이어가는니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집고양이와 달리 녀석들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매일 밥을 주고 관심을 기울여도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길고양이도 처음에는 집고양이였을 터인데도 사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내가 저녁 6시쯤 고양이에게 사료와 물을 주려고 창고에 들어가면 눈에 익은 고양이들이 가구 박스 사이사이에 얼굴을 조금씩 내밀고 나를 살펴본다. 얼굴도 거의 눈만 보일 정도로 내놓고 날 노려보듯 쳐다본다. 그러다가 내가 여러 그릇에 사료를 나누어 놓고 나간 뒤에야 쫓아 나와 사료를 먹는다. 녀석들이 사료 먹는 모습을 보려면 사료를 주고 문틈으로 몰래 보아야 한다. 그렇게 날 경계하는 녀석들이지만, 앙증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예쁘고 내 가게를 근거지로 삼아 사는 모양이 예뻐서 가끔 생선 머리와 뼈 등을 챙겨다가 특식으로 먹인다.    

  그렇게 녀석들과 밀당을 계속하며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부르고, 혹시 안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궁금해하며 녀석들이 날 경계하든 말든 난 그 귀여운 모습에 마음을 뺏기고, 정에 인색한 녀석들을 원망하기도 한다. 제놈들이 좀 가까이 해주면 얼마나 예쁠까? 내가 생선 머리라도 자주 주면 날 더 좋아할까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던 세월이었다.  

  그 세월 동안 우리 가게에서 태어나 자라서 어디론가 떠난 예쁜 고양이들도 많다. 눈에 익어 정들고 내 발소리와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여 살포시 나타나 주던 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면 얼마나 서운하고 안타까운지 모른다. 집고양이는 아니지만, 날마다 먹이를 주고 마음을 쏟아주었던 녀석이 칼로 자르듯 하루아침에 안 보이는 그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길고양이의 세계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새끼가 얼마쯤 자라서 독립할 때가 되면 어미가 내쫓아서 함께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에 다른 독립해나간 고양이의 구역을 침범하면 형제나 모자간이어도 가차 없이 공격을 하여 죽이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고양이과 동물의 생존법칙은 냉엄하여 남의 구역에 들어가면 상대를 죽이고 구역을 차지하거나 죽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정이 들만하면 예쁜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젠 그게 길고양이의 습성이려니 생각하면서 만성이 되어 스스로 나 자신을 달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젠 정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갑자기 보이지 않는 녀석을 눈으로 찾다가 안 보이면 녀석이 나가서 어디에서 자리를 잡았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면 공연히 마음이 아리기도 한다.

 

  한 달 반 전쯤 아주 작은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틈새에서 겁도 없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새가 인형처럼 예뻐서 나도 모르게 “야! 헤피다.” 라고 외쳤다. 그 뒤로 새끼고양이만 보이면 나는 그저 기분이 해피해지는 묘한 행복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얀 바탕에 얼굴과 몸에 적당히 검은 무늬가 섞여 있는 고양이는 정말 한눈에 봐도 예쁜 인형이라고 해도 좋을 성싶었다.

 

  요즘 애들 말로 한방에 뿅 가버린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녀석이 우리 집에 사는 동안은 정성껏 최선을 다해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주 수요일 신아문예대학에서 수업 후 식사가 끝나면 교수님이 먼저 알아서 챙겨주시는 새끼 조기구이 남은 반찬을 봉투에 담아서 가구점으로 가져온다. 내가 “야옹, 야옹” 소리를 내며 신문지 위에 키친 타월을 깔고 먹기 좋게 잘게 부수어 놓으면 제일 먼저 ‘해피’가 와서 조기 살 부위를 한 덩어리 물고 한쪽에 가서 먼저 맛을 본다.

  ‘헤피’는 내가 저를 제일 예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다른 고양이들은 살면서 경계심이 많아져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해피는 아직 철이 덜 들어 사람이 무서운 줄을 모르니 내게 쉽게 접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자주 가까이 접하면서 내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이제는 나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내 마음이 저를 향하고 있음을 점점 더 크게 느끼면서….

  그 작고 귀여운 녀석이 다른 고양이들처럼 슬금슬금 피하지 않고 제가 앉은 자리에서 내 눈과 똑바로 마주치며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금세 황홀해진다. 아마도 사랑의 감정에서 엔돌핀이 내 전신에 퍼져 ‘해피’에게도 전달된다는 생각이 든다. 해피는 이제 수동적인 사랑을 넘어 내게 뭔가 요구하기도 한다. 사료가 아닌 뭔가 먹고 싶을 때는 서너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나 내게 “엄마, 맛있는 것 좀 주세요!”라고 하듯 이상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특별한 메뉴로 북어포, 꽁치 캔으로 아이들을 달랜다. ‘해피’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고 싶고 언제까지든 옆에 두고 보살피고 싶다. 아직 독립할 만큼 크려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니 그때까지만이라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주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언젠가는 ‘해피’가 내 곁을 떠나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어 내 마음이 무너지는 슬픔을 맞을지라도 나는 오늘 녀석을 위해 맛있는 생선을 주어 좋아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이런 마음이 바로 사랑이 아닐지….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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