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와 형부의 희수여행

2019.10.30 01:17

최인혜 조회 수:22

  큰언니와 형부의 희수喜壽여행

                 

             꽃밭정이 수필 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 창작 수요반 최 인 혜

 

 

                                                        

 

  올해 77세 동갑인 큰언니와 형부가 희수를 기념하여 전주에 왔다. 24년만의 고국 나들이다. LA에 살고 있는 막내여동생이 주선한 일주일간의 알래스카여행을 마치고 고향 전주에 왔다. 강원도 평창에서 형부의 전주고등학교 동창들의 환대를 받으며 느긋하게 3일간 일정을 보내고 일요일저녁 늦게 우리 가족들이 기다리는 전주에 도착했다.

  24년 만에 오는 고국이니 먼저 고향을 찾아와 성묘도 하고 변해버린 산천을 돌아보며 지난시절을 회고하는 것이 순서려니 싶었지만, 언니 내외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위도상 위쪽에 있는 평창에 먼저 들러 친구를 만나 며칠을 보낸 뒤에 우리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왔다. 우리 내외와 두 아들 내외, 손자 셋, 조카내외, 언니내외 모두 13명이 덕진동 한정식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24년 동안의 그리움과 아쉬움, 반가움이 버무려진 만남의 시간을 보냈다.

  큰언니와 형부는 우연치 않게 둘 다 8남매의 맏이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큰 무리 없이 이끌어가는 숨은 일꾼들이다. 형부는 형제들이 미국에서 6남매가 자리 잡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고, 한국에 남은 남매도 잘 살고 있다. 우리 큰언니는 일찍 미국에 가서 치과의사로 일하면서 막내여동생을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시켜 돌아가신 엄마대신 가르쳐서 역시 치과의사로 일하게 하고, 두 자매도 불러들여 네 자매가 미국에서 언니를 중심으로 우애를 다지고 있다.

  24년이라는 긴 시간과 한국과 미국의 거리를 사이에 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보니 할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시간은 덧없이 짧기만 했다. 흘러간 시간이 만들어낸 추억과 그리움이 서로의 가슴에 되살아나고, 그 먼 거리에 떨어져 살아온 안타깝고 답답했던 그리움이 서로의 입을 통해 다시 풀리고 이해하는 동안 금세 밤이 깊어졌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그 먼 거리에 떨어져 살았나 싶을 만큼 정이 솟아나는 자리였다.  

  다른 손님들이 모두 가고 우리만 남아 아직도 할 이야기가 넘쳐나니 식당 종업원과 주인아주머니에게 퍽 미안했다. 몇 번이나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하며 양해를 구했다. 모든 진행을 맡은 우리 큰아들은 신바람이 나서 연신 큰이모와 이모부에게 맛있는 음식을 이것저것 권하며 너스레를 떤떨었. 아들내외가 미국에 신혼여행 갔을 때 큰이모부가 LA에서 맛있는 요리를 사 주시고 안내하며 선물을 주었던 은혜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식사와 회포풀이가 거의 매듭지어질 무렵, 전 가족들이 모두 나올 수 있도록 여주인에게 부탁하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참석하지 못한 미국에 사는 언니와 동생들, 서울 오빠에게도 훈훈한 가족의 정리를 전하기 위해서다. 오랜 시간과 먼 거리에 이어지지 못했던 기족의 정과 사랑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길 수는 없지만,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모인 순간을 기록해 확인하는 건 퍽 의미가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언니와 형부의 얼굴에 여행의 피곤함이 역력해 보여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제는 자주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언니와 형부를 아들이 호텔로 모셔갔고, 나머지 식구들은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 10L호텔에 가서 언니 내외와 우리 내외 그리고 큰아들까지 다섯 명이 한 차에 타고 정읍내장사로 갔다. 아직 철도 이르고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가을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내장사에 이르는 길가의 단풍나무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지만 나뭇잎이 많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었다. 나중 단풍이 들면 환상의 단풍터널을 이룰 거라 상상만 해볼 뿐이다.

  내장산을 빗속에서 돌아본 뒤 시골길을 달려 얼마를 가더니 형부는 당신 부모의 묘소를 찾아보겠다고 빗속을 뚫고 산속을 한참 헤매다가 돌아왔다. 비가 쏟아져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동생과 같이 와야 찾겠다며 포기하고 돌아섰다. 24년이 지났으니 산천이 두 번하고도 반이나 변한 세월이다. 더구나 빗속이니 더욱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언니도 부모님 묘소에 가는 길이 비가 오면 진창을 이루어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묘소에 가지 못하고 말았다.

  언니나 형부가 한국을 떠난 지 이제 50년을 훨씬 지났다. 24년 만에 고향에 와서 성묘도 못하고 미국으로 가야하는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이제 하던 일도 그만 하고 은퇴하면 자주 고향에 오겠다는 말도 그런 안타까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정말 이제 좀 쉬면서 가끔 고향도 찾아오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제발 그렇게 되기를 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교사시절 내장사에 가면 단골로 잘 들리던 ‘ㄱ수랏상’ 이라는 음식집에 들러서 양식에 젖어 있는 큰 언니와 형부의 입맛을 한국전통식사로 산뜻하게 대접했다. 거기서 어제 한정식으로 먹던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더덕구이 및 묵무침 등 산채정식이 주가 되는 여러 음식을 복분자술을 반주 삼아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점심이 끝나자 큰 언니와 형부는 갑자기 서둘러 전주로 가자고 했다. 오후 3시에 KTX로 여수에 가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마도 자기들로 인해 우리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게 폐가 된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형제의 우의보다는 개인 대 개인의 관계를 더 크게 생각하는 미국식 사고방식에서 일정을 계획하고 이번 희수여행을 진행하나 싶어 조금 서운했지만 정해진 스케쥴이라니 도리가 없었다.

  나로서는 퍽 서운하고 안타깝지만, 당신들이 그렇게 미리 계획하고 왔으니 그저 떠나보내는 수밖에…. 빠듯한 KTX시간을 맞추기 위해 빗속을 위험하다시피 달려 탑승시간 10분전에 당도했다. 우리는 환송 플랫폼까지 가서 언니 내외를 배웅했다. 큰언니 내외는 일 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올 것이라는 약속을 다시 확인하고 여수행 열차에 올랐다.

  언니와 형부의 이번 여행길이 편안하기를 빌며 약속대로 내년에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열차가 사라진 다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전주역을 나왔다.

                                                                                            (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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