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나

2019.11.05 12:14

백남인 조회 수:40

자전거와 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백남인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전거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잣집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휘익!’ 지나갈 땐 ‘난 언제 자전거를 가져 보나?’하면서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어렸을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독일에는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 일본에는 집집마다 자전거가 있으며, 한국에는 집집마다 지게가 있다.’는 이야기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겠지만 우리나라가 그만큼 후진국임을 자인하는 말dl 아닌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전거는 에너지가 전혀 필요 없고, 쉽게 배울 수 있으며, 좁은 길에서도 탈 수 있으니 참 좋은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자전거와의 인연을 가진 지도 60년이 넘는다.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던 자전거를 타려고 결심한 것은 I 초등학교에서의 초임 시절이었다. 학교 기능직으로 근무했던 김 주사의 자전거를 빌려달라고 했다. 김 주시는 내가 자전거를 잘 타는 줄 알고 서슴없이 빌려주셨다. 나는 조심조심 끌고 와서 밤에 운동장에 나와서 아무도 몰래 타는 연습을 했다. ‘넘어지면서 배워야 빨리 배운다는데, 넘어질까 봐 벌벌 떨면서 배우다 보니 이렇게 더딘가?’ 아무튼 쉽게 배우진 못했었다.  

  신학기 초 가정방문을 가는 첫날이었다. 선배동료들이 나를 안내할 겸 가장 먼 마을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자기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아직 자전거가 없는 나는 자전거 타기에 자신은 없지만 며칠 밤 연습을 했으므로 김 주시의 자전거를 또 빌렸다. 김 주시는 선선히 자전거를 빌려주었다. 선배들을 따라 나섰다. 6교시 수업 끝나고 다니다 보니 몇 집도 다니지 못했는데 날이 어두워졌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에서 큰길까지는 천천히 조심조심 잘 왔다. 큰길에서부터는 모두들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서툰 나도 경쟁심리가 발동하여 페달을 세게 밟았다. 조금씩 올라채던 고갯길을 전력을 다해 겨우겨우 올라오더니 고갯마루에서부터는 모두들 가파른 신작로 위를 무서운 속도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나도 겁 없이 페달을 밟았다. 선배들은 헤드라이트를 켜고 잘도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탄 자전거는 헤드라이트도 켜지지 않는데다 브레이크도 잘 듣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이대로 내려가다가는 큰 일 날 것 같은 공포심에 핸들을 오른쪽으로 살짝 돌렸다. 곧바로 가로수에 부딪쳤다. 나는 그 옆으로 곤두박질쳤다. 정신을 차려 여기저기 만져보니 다행히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순간 안심이 되어 ‘툭툭’ 털고 일어나 보니 옷에서 물기가 느껴졌다. 학부모님들이 신사복 호주머니 속에 넣어준 달걀들이 깨져서 엉망이 된 것이다. 자전거는 아무 이상이 없어서 다음날 아침에 잘 돌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새 자전거를 사서 익숙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후 시내 S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남교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반상회에 나가야 했다. 퇴근 후 담당 마을에 나가 주민들과 정부시책에 관하여 홍보하고 의견을 수렴하여 해당 동사무소에 제출하고 돌아와야 했다.

  자전거를 가진 교사들은 멀고 교통이 좋지 않은 마을로 배정되기 마련이었다. 내가 맡은 마을은 말이 시내지 산골짝 같은 곳이었다. 어두운 길을 자전거 타고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었다. 집에 돌아오면 아홉 시가 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담당했던 그런 마을이 지금은 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내가 그 때 그 마을이 있었던 곳에서 살게 될 줄이야….  

  또 몇 년 후 D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어느 날 퇴근길에 술집에 들렀었다. 언제나처럼 자전거에는 가방을 걸어놓고 안으로 들어갔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문이 열리더니

  “아저씨의 자전거를 누가 타고 갔어요.

  “예? 내 자전건데….

부리나케 뛰어나와 보니,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그 가방 속에는 방송통신대학 과제물과 녹음기가 들어있는데 그걸 잃어버리면 큰일이었다.

  “어느 쪽으로 가던가요?

  “저 쪽으로요.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인사는 공중에 날린 채,

  “저놈 잡아라!“ ”저놈 잡아라!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외치며 달려가는데, 저만치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자는 드디어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도망을 했다. 순식간에 자전거 있는 곳까지 달려가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어진 건 없었다.

  계속 추격하면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에서 한숨을 놓고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니 그 때까지 술을 들고 있던 친구들이

  “자네 대단하네. 이 어두운 저녁에 도둑맞은 자전거를 찾다니….

  “나도 과제물만 아니었으면 추격하다 그만 뒀을지도 몰라.

  그런 일이 있은 뒤로는 자물쇠를 꼭꼭 채우고, 가방은 잘 간수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 때 과제물을 잃어버렸으면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거나 늦어졌을 것이다.

  그 뒤 자가용 차량을 구입하고부터는 자전거를 타는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하면 편리해서 참 좋다. 아직도 뼈대가 튼튼하고 깨끗하여 얼마 동안은 더 탈만 하다. 나에게 애환을 준 자전거를 다시 한 번 매만져 본다.

                                                          (2019.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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