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혼비

2019.11.07 12:55

김세명 조회 수:21

돈혼비(碑)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돼지는 언제 보아도 생김새가 복스럽다. 꿀꿀이 사료로 잔뜩 배를 채우고 우리 한 쪽에 모로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만복감에 젖은 모습은 복돼지 같다. 놈의 생김새 또한 모나지 않고 구부정하게 휘어진 얼굴, 콧잔등의 주름살, 하늘로 벌렁 뒤집힌 콧구멍, 아래로 처져 경계심이 없는 귀, 꼬리까지 두어 번 돌돌 말아서 안정감을 준다. 놈은 인류 식생활에 크게 이바지하고 공헌한 게 틀림없다.  

  "대사는 내가 보기엔 돼지 같아 보입니다만 대사가 보기엔 내가 어떻게 보이시오?"  

  ", 제 눈에는 부처로 보입니다."  

  "나는 돼지라 했소만 왜 부처라 하시오?"  

  ", 본래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지요."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가 주고받은 해학적인 대화다. 돼지꿈은 횡재요, 복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열병이나 사스 같은 전염병과 광우병 여파로 돼지가 수난이다. 그러나 그 사육법이나 가공법도 기계화되어 있다.

 

 집돼지는 가축화된 멧돼지다. 전 세계에 약 8억 마리가 사육되어 사람들의 중요한 영양원이 되고 있다. 9천 년 전에 중국에서 가축화되었다고 한다. 야생종과 가축의 차이는 아주 작다. 요즘에는 멧돼지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주택가에도 나타난다. 돼지는 개와 돌고래에 견줄 만큼 매우 영리하며 깔끔한 것을 좋아한다. 고기를 얻고자 사육된다. 이슬람과 유대교는 돼지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재물과 복()의 상징이자 제전의 희생물로 쓰였다. '돼지꿈을 꾸면 복이 온다.'고 믿었다. 돼지는 재물을 불러오는 동물이다.

 돼지는 한 배에서 많은 새끼를 낳으며, 잘 먹고 잘 자란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즐겨 기르던 가축이 돼지다. 최근에는 돼지 사육도 전문화되어 축산농가에서 위생적으로 사육한다. 주로 사료를 먹이고 일정 시기가 되면 도축장으로 보낸다. 목우촌을 방문한 적이 있다. 포동포동한 돼지가 트럭에 실려 오면 정문 수위가 차량 통제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 것부터가 무거운 분위기다. 운전자 옆자리에 앉은 비대한 몸집의 돼지 주인은 먼 길을 달려온 듯 꾸벅거리며 실눈을 뜨는 모습이 피곤해 보인다. 실려 온 놈들은 좁은 통로를 지나 도살장으로 기어든다. 도살실 가운데는 두루미가 우렁이 속을 뽑듯 푸른색 고무 바지를 입은 메잡이가 구릿빛 팔뚝으로 둘러멘 쇠망치로 정확히 놈의 양미간을 때린다. 놈들의 염라대왕인 셈이다. 단번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픽 쓰러진 놈은 인자스러운 눈을 지그시 감고 꼬리를 힘없이 놓는다. 메잡이는 날랜 동작으로 쓰러진 놈들의 한 쪽 발목에 쇠사슬을 걸어 회전 틀에 걸면 자동 회전기계는 놈들을 거꾸로 매단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칼을 쥔 투경수 앞에 오면 놈의 목덜미에다 예리한 비수를 꽂으면 새빨간 핏줄기가 파열된 수도관처럼 쏟아지면서 발모기 속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털이 뽑히고 매끈한 몸매로 나오면 놈은 사우나를 하고 나온 양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면도사가 다듬으면 목이 댕강 잘리고 회전틀에 머물면 다른 칼잡이는 복부를 헤쳐 한 뭉치의 뜨거운 내장을 꺼낸다. 계속 회전틀에 매달려 나가면 수의사가 열심히 푸른 잉크 ""자와 날짜 번호를 찍는다. 인간에게 전신을 시해당하고 선지피는 해장국집으로, 내장은 순대집으로, 털은 솔공장으로, 분뇨는 농가의 거름으로 나간다. 그래서 놈은 복의 상징이고, 놈의 머리는 고사상에 오른다. 그 인자한 놈의 양미간을 향해 차가운 쇠망치를 휘두르던 그 손으로 '돈혼비()' 세 글자가 새겨진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전표를 움켜쥔 돼지주인에게는 돼지의 몸값이 계산될 것이다.

 

 

                                              (2018.1.30.)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27 속 찬 여자 최정순 2019.11.11 19
1026 나는 굽은 나무다 김성은 2019.11.11 13
1025 [김학 행복통장(77)] 김학 2019.11.11 13
1024 흔적을 따라서 홍치순 2019.11.09 18
1023 이런 독자가 있다니 김창임 2019.11.09 8
1022 찬란한 이 가을에 김학 2019.11.08 18
1021 직장 여성들의 육아고민 이우철 2019.11.07 52
» 돈혼비 김세명 2019.11.07 21
1019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김길남 2019.11.07 28
1018 자전거와 나 백남인 2019.11.05 40
1017 개미취 백승훈 2019.11.05 16
1016 내 자리 한성덕 2019.11.04 47
1015 한라산 산행 하광호 2019.11.04 17
1014 정정애 작가의 팔순잔치 장지나 2019.11.04 80
1013 텃밭 김재교 2019.11.03 35
1012 맞춤법 정리 두루미 2019.11.02 51
1011 나는 개떡이다 한성덕 2019.11.02 39
1010 말은 안 통해도 변명옥 2019.11.01 8
1009 직인파동 단상 이준구 2019.11.01 4
1008 내가 나에게 띄우는 편지 김창임 2019.10.3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