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12:27
남편의 기 살리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우리가 곱고 아름다운 단풍과 오랫동안 밀어를 속삭일 수 있도록 바람님의 커다란 배려가 있었다. 무릎이 아픈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내장산은 멀리서 오시는 분들께 양보한다는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내장산 주위를 맴도는 것으로 단풍구경을 대신했다.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들은 잎이 다 지고 있지만, 약간 낮은 곳이나 안쪽에 자리한 단풍들은 11월 중순이 지난 지금도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남편은 “야, 환상적이네!“ 하고 탄성을 터뜨린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오묘한 저 아름다운 빛깔들! 정말이지 아주 아름답기 그지없다.
꽃이 지고 긴 잠을 준비하는 계절인데 잡풀 속에 노란색 꽃이 세상을 구경하려는 듯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알고 보니 기린초라는 들꽃이 내 마음을 붙잡는다. 꼭 기린이 고개를 쑥 내밀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냄새를 맡아보니 향기 또한 매우 좋아서 내 가까이 두고 향기에 취하고 친구하며 자판을 두드린다. 정읍수필 3호 출판기념식 준비로 남편은 요즈음 바쁜 나날이다.
11월 18일 월요일 11시 출판기념식에 참석하려고 여유 있게 일찍 앤 카페에 도착했다. 부지런하기로 이름난 재무국장님이 먼저 나와 열심히 준비를 하고 계셨다. 조금 있으니 정읍시교육장님, 전 시장님, 장지홍 정읍문인협회 회장님, 윤철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등 많은 분들이 오셔서 반가이 맞아들였다.
식전행사인 오프닝 세리머니로 김대섭, 김복희 씨 부부가 나와 멋진 음악을 선사했다. 먼저 남편인 김대섭 님이 나훈아의 사랑을 멋지게 색소폰으로 연주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이자 이 지역 성악가로 이름난 김복희 마리아가 샹송 어텀리브스를 노래하고 앙코르 곡으로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목소리가 매우 아름다워 듣는 사람이 그 아름다운 노래에 푹 빠지게 했다. 그녀는 시인, 수필가, 화가, 성악가이다. 남편은 색소폰 연주를 하고 목공예와 금속공예도 잘 한단다. 이렇게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부부가 한없이 부럽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남편이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사회를 잘 본다. 축사로 강 광 전 시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장들께서 주옥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축하 떡 자르기를 한 뒤에 따끈한 떡을 나누어주어 맛있게 먹었다. 수필 낭송에는 호성희 수필가가 낭랑한 목소리로 잘 낭독해주어 재미있게 들었다. 여행수필을 낭송하는데 본인이 방귀를 뀌었다는 이야기인데 참 코믹한 수필이어서 웃음이 나왔는데 참느라고 혼이 났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오늘 내가 제일 기분 좋은 일이 무엇인지 아나요?”하고 물었다. 남편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당신이 사회를 그렇게 멋지게 볼 줄 미처 몰랐다.”고 했더니 남편의 얼굴이 불그레해진다. 집에 도착하자 우리 부부는 소파에 앉아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사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 옆으로 바짝바짝 살며시 오더니 내 무릎을 베개 삼는다. 젊은 시절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드물게 있는 일이다. 그 이유는 방금 차안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아서 그런 것이리라.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더니 우리에게는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게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나처럼 누가 남편에게 사회를 잘 보았다고 칭찬을 했겠는가?
(2019.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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