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속의 삼베

2019.11.26 12:48

하광호 조회 수:11

장롱속의 삼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하광호

 

 

 

 

 매년 이맘 때는 어머니 생각이 더 더욱 난다. 8년 전 어머니가 삶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가신 때이기에 그렇다. 온 산야는 물론이고 가로수 잎들이 낙엽으로 딩굴고 있어 계절의 순환을 느끼게 한다. 추워지면서 눈이 내린다는 소설이 되니, 마음은 겨울채비를 서둘러 준비했다.

 

 내일은 어머니의 기일이다. 나는 오늘 아내와 함께 산소에 갔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인사를 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삶에 바빠 이제야 찾아뵈오니 송구스럽다. 유난히도 햇살이 따사롭다. 몇 년 전 심은 편백나무가 많이 자랐다. 산소에 와서 부모님과 함께 있으니 마음이 평안하다. 지난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머니는 나를 낳던 해는 유달리 추웠다고 했다. 초가집에 정월이라 외풍도 있어서 따뜻하도록 아궁이에 군불을 많이 지폈다고 한다. 나를 눕혔던 온돌방이 너무 뜨거워 엉덩이에 화상을 입었다. 그 때 화상 입은 엉덩이에는 그 때의 자국이 남아있다. 10여 년 전에도 씻고 나와 옷을 입기 전 돌아보라고 했다. “너를 혹 잃어버리면 찾으려고 표시했다”며 엉덩이를 때렸다. 그리곤 웃곤 하셨다. 지난 주말 덕진체육공원 테니스코트에서 운동을 한 뒤 회원들과 사워를 했다. A회원이 엉덩이를 보더니 무슨 흉터냐고 물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났다.

 

 산소에 올라오며 작은형님의 묘소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20여년 전 작은형님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31일에  전주 오목대 육교 밑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소식을 접한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눈물로 한숨으로 보내셨다. 식음을 전폐하고 지냈던 일들이 생각났다. 지금은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큰형님과 작은형님도 안계시니 허전하다.

 

 산소에서 내려올 때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하고 바람도 불어와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뭇잎들이 단풍이 되어 떨어졌다. 햇볕도 짧아지고 소슬바람이 불어와 온몸이 절기를 느낀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도 자랄 수 없듯이 사람도 뿌리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오늘은 그동안 여름 내내 나를 입혀주었던 옷장을 정리했다. 반팔 옷과 반팔티셔츠  등 여름옷과 초가을 옷을 모두 정리했다. 장롱속의 겨울옷을 하나하나 내놓았다. 옷장속의 옷을 정리하다보니 삼베가 한 묶음 눈에 띄었다. 삼베를 보니 어머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수의를 지을 삼베를 미리 준비하면 오래 산다고 하더라’ 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문득 기억났다. 삼베를 움켜쥐고 한참 울먹였다. 가슴이 먹먹했다.

 

 유달리 어릴 때 어머니 속을 썩히고 애를 태우며 자란 아들이 어느새 이순을 훌쩍 넘었다. ‘망나니같이 지낸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어려웠던 그 시절 개떡과 보리떡을 잘 만들어 주셔서 많이도 먹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떡을 좋아하나 봅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었던 것, 갖고 싶었던 것, ‘며칠만 기다려 보자’는 말에 만족하여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행복인 줄 몰랐다. 어머니! 이름만 들어도 포근하고 따뜻하고 내 마음에 함께 있어 늘 외롭지 않았다.

 

 장롱속의 삼베를 보면서 나는 늘 잘못한 것만 생각나고 생전 못한 부분만 기억이 되니 이것이 자식의 마음일까?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삼베를 보는 순간 왜 돌아가셨을 때 수의를 지어 입혀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고 아쉬움이 남는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수의 를 지어 입혀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늙지 않는다. 자식을 낳고 자식을 위해 헌신만 하셨던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을 아리게 했다. 늦가을 어머니와 이별한 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해마다 사계절은 뚜렷하여 봄에는 나뭇가지에 새움이 돋아나고 열매를 맺으며 가을이면 나뭇잎이 떨어지진다..

 

 오늘따라 더욱 어머니가 보고 싶다. 작은아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한동안 눈물로 보내셨던 그 모습, 뒷마루에 앉아 마이산 쪽만 바라보시며 눈물을 훔치시던 모습, 늘 누워서 한동안 말씀도 아니 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혀진다. 그래서 가을은 인생을 깊이 성찰케 하는 계절이라 하는가 보다. 장롱속의 삼베를 보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솟구친다.

 

                                                                                (2019.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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