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

2019.12.16 12:47

한성덕 조회 수:3

연명의료

한성덕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던 분이다. 그의 삶에 시시비비를 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연명의료를 받지 않았다기에 그저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요즘은, 사람의 죽어가는 과정이 의학과 기술에 달려있지 않나싶다.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하려는데 연명의료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연명의료란 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에게 임종시간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뜻한다. ,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항암제투여,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치료 등이다. ‘치료가능한 자’가 아니라, ‘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연명의료를 받고 안 받고는, 20182월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다.

  지난 815일이었다. 후배목사가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라며 서류를 내밀었다. 긴 설명 없이 ‘임종 때 생명을 연장하려고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라기에 귀가 번쩍했다. 그렇잖아도, 나이 60대 초반에 모든 장기와 시신을 기증하려는데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는 바람에 서운했던 참이다. 더 이상의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아내와 함께 얼른 써버렸다. 작성하는데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했다. 산소 호흡기를 떼면 금방 끝날 생명을, 온갖 약물로 연장하는 것에 반감이 있었나? 우리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중에서도 극히 드문 일인데도 속이 후련했다.  

  4개월여 만에 등록증이 날아왔다. 요즈음은 지갑 대신 핸드폰주머니다. 그 안에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신용카드와 명함이 가지런히 들어있다. 최근에는 그 틈새로 살며시 끼어든 게 있었으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이다. 소지하기에 편리하도록 신용카드처럼 만들어졌다.

  *앞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

                성명: 한성덕(1953. 03. 13)

                등록번호: R19-323685.

                등록일: 2019-08-15.

                등록기관: ()위드피플.

  *뒷면:  귀하께서 작성하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지정,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선명한 마크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라고 썼다. 맨 하단에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 서울 중구 남대문로 113 DB 다동빌딩 4. www.Ist.go.kr(문의.1855-0075)이라고 적었다.

  1991, 1종 보통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 자랑한 적이 있다. 어이된 일인지 연명의료서는 그때의 자랑을 훨씬 능가했다. 선배나 친구나 누구든지 만나면 자랑하고 싶어서 등록증을 내민다. 두 딸에게도 그랬다. 엄마아빠의 임종을 자연 상태에서 맞이하도록 놔두라는 뜻이다.

 

  이제는 연명의료 때문에 왈가왈부하거나, 하랴마랴 망설이거나, 도의적인 책임을 거론할 이유가 없다. 주님 품에서 천사들의 호위(護衛)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하늘나라로 가면 그만이다. 좋을 듯 말듯 딸들의 떠름한 표정을 읽었다. 자랑 속에서 늙어감의 서글픔이 묻어났다. 덧없는 세월 속의 인생이 스멀거렸다.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나그네 인생길인데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부모나 아내나 자식들도, 나를 빚으신 조물주 하나님도 원망의 대상일 수 없다. 그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평안할 뿐이다.  

  여기, 국가생명 윤리정책원장의 글로 마감하고자 한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죽음에 대하여 미리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에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일 것입니다.

 

  2018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은,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고유한 법으로, “회복 불가능한 환자나 가족이 원치 않으면 연명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이 의도하는 바대로,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죽음이 아름답게 마무리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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