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2019.12.17 16:46

윤근택 조회 수:6

나무난로 앞에서

-일흔다섯 번째, 일흔여섯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75.

나무난로 불은 활활 타고... .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 녀석은 그 작은 손바닥을 연신 들여다보며 오늘따라 보챈다.

“한아버지, 이 오른 손 검지가 자꾸 아파.” 해서, 이 할애비는 녀석을 나의 의자 쪽으로 건너오라고 한다. 그런 다음 돋보기안경을 끼고 녀석의 손가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작고 까만 가시가 박혀 있다. 아마도 어제 녀석과 함께 고무새총으로 참새를 잡겠다고 찔레덩굴을 헤집고 다니다가 찔레가시가 박힌 모양이다. 녀석한테 일러, 농막에서 손톱깎이와 ‘바느질 바늘’을 찾아오도록 한다. 녀석은 금세 그것들을 찾아 들고 왔다.

녀석의 검지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뽑으려 한다.‘바느질 바늘’로 가시 박힌 살점 언저리를 조심스레 찌른 다음, 내 두 엄지손가락손톱으로 ‘자근자근’ 주무르자 그 까맣고 작은 가시의 끝이 드러난다. 이번에는 손톱깎이로 그 가시를 집어낸다. 사실 가시를 빼낼 적에는 손톱깎이가 아주 유용하다는 걸, 내 젊은 날 연인이었던 어느 여인이 가르쳐준 적 있다. 그리고 몇 해 전에야 내가 안 사실인데, 가시를 뽑는 데에는 ‘화살나무’의 재가 아주 유용하단다. 줄기에 화살 날개같이 생긴 게 달려 생긴 이름 화살나무. 그 화살나무의 줄기를 태워 재를 만든 다음, 그 재를 가시 박힌 살점 위에다 묻혀 두었다가 가시를 배면 쉬이 가시가 빠진다고 하였다. 해서, 화살나무를 ‘가시나무’라고도 부른단다. 화살촉이 또 다른 화살촉인 가시를 뽑는다?

“으뜸아, 당분간은 약간 아프겠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맞은편 자기 의자로 돌아가 앉으며 혼잣말처럼 한다.

“ 완죤(완전) 나쁜 가시! 왜 나무들 가운데에는 가시가 돋친 나무들도 있는 거야?”

아주 잘되었다. 이 할애비의 노변담화(爐邊談話)는 또 이어갈 수 있게 생겼다.

“으뜸아, 나무들 가운데에서 가시를 단 나무들은 말이야,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해서... .”

녀석의 눈빛이 금세 달라진다.

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그 진실을(?) 전해준다.

대개, 나무들은 외침(外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가시를 단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들 가시달린 나무들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먹잇감 등으로 유용한 성분을 퍽이나 지녔다는 뜻이다. 두릅, 망개, 산초, 제피(계피), 엄나무, 가시오가피 등은 우리 몸에 좋다지 않은가.저 아랫녘 구순(九旬)의‘신호영감’내외분은 이 할애비한테 알려준 바 있다.

“윤 과장, 쏼쏼 끓는 이 가마솥에는 스무 종류 이상의 가시달린 나무들과 감초가 들어 있어.나는 해마다 한 두 차례씩 이렇게 약을 지어 먹어.”

참말로, 나무의 가시들은 유용한 성분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해주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으뜸아, 놀랍지 않던? 네 손가락에 박힌 그 가시를 또 다른 가시인 바늘질바늘로 뽑았다는 거.”

녀석은 누구의 새끼인지, 총명하기 이를 데 없다.

“한아버지, 참 그렇네. 지난번에 으뜸이가 벌침에 쏘였을 적에는 벌꿀을 발라줬다?”

사실 우리네 삶은 응용이다. 깨달음이다. 가시로 또 다른 가시를 뽑는다는 거. 이야말로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저 아랫녘 신호염감 내외분은 그걸 유사하게 실천하고 있다. 그 많은 종류의 나무가시들 ‘미량(微量)의 독(毒)’을 한데 모아, 이를 감초로 중화(中和) 내지 해독하여 한약으로 복용하고 계시지 않은가. 술꾼인 이 할애비가 복어탕을 즐겨 사 먹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복어가 품고 있는 미량의 독이 또 다른 독인 술독을 잘 다스리게 되니까. 사실 복어탕에 들어가는 미나리의 음식궁합(?)도 놓칠 수가 없다. 미나리는 수채에서도 잘 자라나지 않던가. 미나리는 오염된 물을 섭취하되, 스스로 독을 녹이는 자정능력(自淨能力)을 지녔다는 이야기이니... . 여기까지는 녀석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로 이어졌으나, 하나만 더 깨우쳐주려 한다.

“으뜸아, 며칠 전에 네 손가락을 찔렀던 그 찔레가시도 지금처럼 겨울이 아닌 봄에 찔리면 더 아프다? 심지어, 곪기도 하는 걸? 왜 그렇다고 생각해?”

그러자 녀석은 이내 답한다.

“한아버지, 으뜸이는 금방 알겠다? 봄에는 찔레 햇순이 나오고 물이 ‘좍좍’ 오르니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나무난로 불기운도 사위어 간다. 조손(祖孫)은 농막 안으로 자리를 옮겨 이부자리를 깔아야겠다.


76.

* 오늘밤에는 조손(祖孫)이 헛개나무와 가시오가피로 차를 끓여 마시는 이야기가 이어질 텐데요, 닭장의 닭들이 밥 달라고, 해가 떴다고 요란이거든요. 염소들도, 개들도 돌봐야하니까요.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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