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후회

2020.01.06 16:37

김학 조회 수:55

때늦은 후회

김 학

오랜만에 결혼식 주례를 섰다. 10여 년만의 주례여서 얼떨떨한데 예식장 여직원은 나에게 주례사를 5분 이내로 짧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사진 찍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례 없는 결혼식도 있다는데 주례사를 짧게 해달라는 요구쯤이야 무슨 문제겠는가?

결혼식은 2019년 12월 7일 낮 12시 40분이었다. 신랑 김광채 군과 신부 박유미 양의 결혼식인데 나는 신랑과 신부 어느 쪽도 모른다. 후배의 소개로 신랑을 만난 뒤 주례를 맡기로 했으니까. 신랑은 결혼식 날 예식장에 갈 수 있도록 승용차를 보내주었다. 토요일이지만 차가 막히지 않아 예상보다 일찍 예식장에 도착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예식장 커피숍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이미 주례사 원고는 준비했지만 꼭 어떤 이야기를 더 해줄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문득 파레토법칙(2080법칙)을 들려주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것은 개미를 소재로 한 과학실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19세기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개미를 관찰하여 개미의 20%만이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인간사회에 적용시킨 법칙을 ‘2080법칙’ 즉 ‘파레토법칙(Pareto's law)’이라고 한다.

파레토는 어느 날 우연히 땅을 쳐다보다가 개미의 재미있는 행동패턴과 습성을 관찰하게 되었다. 파레토는 거기서 전체 개미의 20%만 실질적인 일을 하고 나머지 80%는 빈둥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미를 느낀 파레토는 ‘일을 열심히 하는 20%의 개미만 추출하면 모두 일을 열심히 하겠지’ 생각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20%의 개미를 따로 추출하여 관찰했다. 하지만 이들도 처음에는 모두 열심히 일을 하더니만 곧 그 중 80%는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놀기 시작하더란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빈둥거리는 개미를 세어보니 그 비율이 20:80이었다고 한다. 믿기지 않아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만 채집하여 따로 모아놓았는데 이번에도 시간이 지난 뒤에 보니 열심히 일하는 개미로 채집된 개미와 그렇지 않은 개미의 수가 20%:80%의 비율로 나뉘더란다. 파레토는 이런 ‘20%:80%’ 현상이 유독 개미만의 특성인가 싶어서 이번에는 벌통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벌 역시 개미와 마찬가지로 20%:80% 현상이 나타나더란다. 파레토는 이를 신기하게 여겨 인간사회에서도 이 비율이 적용되는지 알아보았다. 그는 유럽 인구와 부(富)의 분포 자료를 살펴보고 다음 같은 결론을 얻었다.

“전체 부의 80%는 상위 20%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또 전체 인구 중 20%의 인구가 전체 노동의 80%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 유명한 ‘20%:80%의 법칙, 즉 파레토 법칙’은 이렇게 하여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주례사에서 이 ‘파레토법칙’을 강조하면서 오늘의 신랑신부는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일하는 20%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고 했다. 2%안에 들기는 어렵지만 20% 안에 들어가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분명히 성공하는 인생이 되리라 믿는다.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랑이 나를 찾아와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사례도 했다. 예의바른 젊은이로구나 싶었다. 나는 예전에 주례를 서고 점심식사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신부와 가족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니 주례를 챙기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한정 기다릴 수 없으니 슬그머니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득 45년 전 나의 결혼식 생각이 났다. 그때 주례는 언론계에서 존경을 받던 J사장이셨다. 그때 나는 주례선생님을 제대로 모실 줄 몰랐었다. 그 주례선생님이 점심식사도 못하시고 그냥 가신 게 아닌지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나는 그때 주례선생님을 예식장까지 모셔오고 예식이 끝나면 모시고 가서 식사를 하도록 조처를 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런 범절을 몰랐었다. 나의 미흡했던 의전문제를 이제야 깨닫게 되었으니 후회막급이다. 더구나 그 주례선생님이 몇 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어떻게 사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누군가가 살짝 귀띔만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다른 이들 결혼식 때 어떻게 하는지 잘 살펴보았더라면 그런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후빈다.

45년의 세월이 흐르자 신랑이던 내가 주례로 바뀌었다. 신랑일 때 모르던 것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역시 세월은 모르는 것도 알게 해 주는 선생님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드는 모양이다.

내가 오늘 주례를 서준 신랑 김광채 군과 신부 박유미 양 부부가 꼭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갈등의 2019년을 보냈으니 2020년은 가정이나 나라가 모두 화해와 협력의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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