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는 시작이다

2020.01.15 22:50

정근식 조회 수:26

마침표는 시작이다

정근식

 

 

 

  글을 쓰다가 마침표를 찍었다. 글이 완성되어서가 아니라 문장이 끝나서 작은 점을 찍었다. 마침표는 끝이라는 뜻이지만 잠시 쉬어가는 쉼표와 의미가 비슷하다. 다음 문장을 시작하기 위해 앞 문장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어가라는 표시다. 한편의 글에서 진정한 마침표는 마지막에 찍는 점 하나밖에 없다. 마침표가 모여 한편의 글을 완성하듯이 우리 삶 역시 퇴직, 졸업, 이혼, 죽음 등 크고 작은 마침표를 겪어야만 완성된다.

 인생이란 큰 대하드라마에서 쉼표의 의미인 마침표는 새로운 변화다. 변화는 희망과 두려움이 함께 존재한다. 새로운 변화에 좌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변화에 적응하여 새 삶을 잘 꾸려가는 사람도 많다. 글을 읽을 때 마침표가 있어 편하게 호흡을 할 수 있고 글의 흐름도 좋아지게 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적절한 마침표는 활력소가 되어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생의 마침표 중 비교적 충격이 큰 것은 퇴직이다. 퇴직은 금전적인 부담도 있지만, 무엇보다 심리적 상실감이 크다. 대부분 재취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여 심리적인 부담을 해소하지만, 재취업이 어려운 정년퇴직자의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년퇴직을 할 무렵이면 빈둥지증후군을 겪기는 하지만, 자녀들이 성장하여 생활비 지출은 비교적 적다는 점이다. 게다가 요즘은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제도로 앞세대에 비하여 노후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어 금전적인 문제는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공적연금으로 필요한 자금을 모두 채울 수는 없다. 요즘은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 정년퇴직 후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다.  

  퇴직자는 경제생활을 하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원치 않는 일까지 해 왔다. 경제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못해 혼자 스트레스를 삭혔던 때도 많았을 것이다. 화려했던 그렇지 않았던 정년퇴직이란 점 하나만 찍으면 과거가 되어 버린다. 과거의 모든 경력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위하여 새로운 변화를 찾는 것이 어떨까. 젊은 시절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평소 탁구를 치고 글을 쓴다. 탁구도 글솜씨도 뛰어나지 않지만 탁구장과 문학회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의외로 퇴직자가 많다. 특히 문학회에 퇴직자들이 많다. 교사, 공무원부터 노동을 하던 사람까지 퇴직 전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다. 탁구장에는 탁구 잘 치는 사람이, 문학회에서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 나이도 과거의 직업도 상관이 없다. 탁구장에서 고수를 만나거나 문학회에서 신춘문예 당선하여 이름을 알려진 작가를 만나면 괜히 존경스러워 보인다. 좀더 잘보이려고 깔끔을 떨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7.80대가 3.40대와 친구처럼 어울려 지내기가 쉽지 않지만, 취미활동에서는 나이를 상관하지 않으니 쉽게 어울려 지낸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살 수 있다.

 경영학에서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포트폴리오라는 용어가 있다. 위험을 분산하라는 뜻으로 주식을 투자할 때 많이 인용된다. 한 종목을 투자하지 말고 투자 종목을 늘려 위험을 적당히 분산하라는 뜻이다. 포트폴리오는 주식투자만 필요한 단어가 아니다. 삶에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을 가정과 직장 그리고 취미활동으로 나눈다면, 모두에게서 보람을 느낄 수는 없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보람보다 실망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취미생활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직장이나 가정에서 받은 실망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사람이라 직장이나 가정에서 상실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직장을 옮긴 적도 있고,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실망을 한 적도 많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헤매었다. 그때마다 나는 운동이나 글을 쓰면서 위로를 받곤 했다.

 

  지금 나이가 들어 직장퇴직을 앞두고 있는 분이 있다면 퇴직 후 취미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돈이 되는 취미생활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취미활동으로 자신의 삶을 찾았으면 좋겠다. 많은 마침표가 모여 글이 완성되듯 우리의 삶도 많은 마침표가 찍혀야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작은 마침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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