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 수 있다면

2020.01.18 12:22

최상섭 조회 수:7

날개를 달 수 있다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상섭

 

 

 

                                           

  사방이 온통 까만 신새벽에 전깃불 대신 촛불을 켜고 어둠을 물리치려는 청승을 떤다. 옛날 같으며 수탉이 홰를 칠 시간이고 예배당 종소리를 그리워할 시간인데 나이 탓인가 새벽잠이 없다. 이내 촛불은 희미함에서 벗어나 눈물을 흘리고 밝기를 더해가며 내 시린 가슴을 후비며 그리움의 날개를 찾는다. 나는 이 시간이면 더듬더듬 출근 채비를 서두르며 일상의 첫 번째 과제인 수영장에 갈 준비를 한다. 수영장에서는 무아지경을 꿈꾸지만 물속의 부력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산산이 부서지는 상념의 조각들이 오히려 발목에 간지러움을 태운다. 그래도 사방으로 둘러싸인 하얀 밤의 정서가 내게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삶이 늘 갈대숲 지나가는 바람 같거나 세한의 세월에도 푸르름의 병풍으로 하얀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들의 의지를 내 삶의 바탕으로 여기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서 사색에 빠져 외로움의 날개를 찾는다. 대저 언제나 희열이 넘치는 새벽을 맞아 가슴 뿌듯한 시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날들의 일상이 오기는 하려는지 시린 발끝이 저려와 양말이란 무기로 희망을 걸어 발등을 덮는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삶의 넋두리처럼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굴레건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일탈하려는 심사가 더 싫다. 통나무집 찻집에서 이름 모를 풀꽃 이야기며 세월의 야경 같은 삶의 고뇌를 쉽게도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추억이란 한 줄기 나이테를 만들어 두고 떠나간 여인의 뒷모습이 싫다. 평생이란 세월을 걸고 혼신으로 전력투구한 직장에서 온갖 부정으로 뺏긴 내 마지막 보루였던 장이라는 자리의 패배는 생각하면 늘 생채기로 나를 괴롭혔다. 지울 수 없는, 지워지지 않는 고뇌를 이제는 떨쳐 버릴 수 있으련만 더욱 선명한 그림자가 되어 또렷이 가슴을 후비고 드는 심사가 무엇이란 말인가? 패배 대신 나는 문사(文士)라는 귀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는가? 8권의 시집이며 한 권의 수필집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도로아미타불 관세움보살의 염불을 외우지 않은 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고, 공든 탑이 무너진 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나이테는 더 선명하다. 그러나 이제는 하얀 서리가 아침 햇살에 자취를 감추듯, 동지섣달 긴긴밤에 소복이 내린 눈이 작열하는 태양에 녹아 사나흘 후 강물의 물소리가 되듯 떨쳐버리는 지혜를 오묘함으로 찾아야 한다. 새로운 초원에서 도롱테를 굴리며 미학의 날개를 달아야 할 판이다. 그것만이 꿈이고 희망이며 온몸을 내던져 내가 지켜야 할 경자년의 화두이다.

 

  새롭게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한데 까만 밤이 주는 절대 고독을 무슨 수로 떨쳐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왜 신새벽의 설렘은 내 발목을 잡고 뒷걸음질 치게 하는가? 그러나 해답은 간단명료하다. 나이가 주는 세월이라는 경륜 속에서 얼음강으로 뒤덮인 미나리깡의 초록 이파리의 변신을 꿈꾸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푸른 삶의 언덕에 오를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문사가 되어 영혼이 담긴 한 줄의 시와 한 편의 수필을 짓기 위해 날개를 달고 푸른 초원으로 날아갈 판이다.

                                                                        (2020.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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