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2020.01.22 11:59

윤근택 조회 수:31

  나무난로 앞에서

                    -여든 일곱 번째, 여든 여덟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87.

  오늘 낮에 어느 낯선 분이 부친 택배를 받았다. ‘받는 이’의 주소며 이름이며 손전화번호며 모두가 맞아떨어지니, 나한테 온 게 분명하다. 포장을 뜯자, 예쁜 편지봉투도 들어 있다. 읽어보니 자신은 청도에 살고 있으며 나의 숨은 애독자인데, 특히‘나무난로 앞에서’ 연재물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읽고 있노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 청도의 특산물인 ‘송기떡(松肌떡)’을 선물로 부치니 뭔가 또 짚이는 게 있어, 글감으로 챙겼으면 좋겠다고 적어 두었다. 참으로 고마운 애독자님이시다.

  조손은 다시 나무난로 앞. 외손주녀석이 송편처럼 빚은 그 송기떡 하나를 먹으며 말한다.

  “한아버지, 이 떡에서는 소나무 향기가 나는 것 같애. 무엇으로 만든 거야?”

  꽤 유익한 질문을 해온 게 분명하다.

  “으뜸아, 이 떡을 ‘송기떡’이라고 해. 소나무의 속껍질과 쌀을 버무려 만든단다. ”

  그러자 녀석은 하고많은 곡식가루 대신에 소나무 속껍질을 떡 재료로 쓴 이유가 뭔지 궁금해 한다.

  해서, 나는 송기떡의 내력을 들려준다. 우리네 선조들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수 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주린 배를 채우고자 봄날 소나무의 껍질을 벗긴 후 그 속껍질을 칼로 ‘포뜨기’했다. 그런 다음 그 속껍질을 잘게잘게 찢어 잿물을 넣어 삶은 후 물에 몇 날 우려 멥쌀과 함께 쪄서 안반에 놓고 차지게 친 게 송기떡. 사실 우리네 조상들은 보릿고개를 겪었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했다지 않던가.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

  녀석은 그래도 아리송해 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어린 날 우리가 ‘송구’라고 곧잘 부르던 ‘송기’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해 주어야 할 것 같다. 해서, 이 할애비는 오른 쪽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려 종아리에 길게 난, 큰 흉터자국을 보여 주며 말한다.

  “으뜸아, 이 흉터는 할애비가 어렸을 적에 소나무 가지에 올라 소나무 햇순을 꺾다가 떨어져 생긴 흉터인 걸. 4,5월 소나무가 물이 오를 적에 소나무 햇순을 꺾어 껍질을 벗긴 후 그 속껍질을 생선 포뜨기 하듯 해서 먹으면 얼마나 달착지근하던지! 그게 바로 송기거든. ”

  녀석이 이제야 송기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 같다.

  “한아버지, 그게 그리 맛있어?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 한아버지랑 송기 벗기러 가고 싶으니깐.”

  녀석한테는 소나무의 부산물인 송기에 그치지 않고 ‘송편(松편)’과 ‘소나무 이름 유래’와 ‘소나무의 특별한 성질’ 등을 아래와 같이 마저 들려준다.

  송편(松편)은 ‘소나무잎을 받쳐 찐 떡’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소나무잎들은 떡들이 서로 엉켜붙지 않게도 할뿐더러 향기까지 은은히 배어들게 한다.

  ‘소나무’는 ‘여러 나무들을 인솔한다(이끈다; 으뜸이다)’하여 ‘솔(率)’에서 온 말이다. ‘솔(率)나무’는 나무들 가운데에서 빼어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숲의 대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파고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소나무의 미덕’과 달리 자못 못된 구석도 있다.   소나무는 그야말로 독야청청(獨也靑靑)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의리가 없는 나무다. 여타 나무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모른다. 소나무는 자기 발아래 다른 나무가 들어서는 걸 엄청 싫어한다. 그 뿌리에서 여타 나무가 살아남기에 해로운 물질을 내어놓는다. 요컨대, 그 발치의 토양을 산성토양으로 만들기에 그렇단다.

  조손은 어느 애독자가 부쳐준 송기떡을 나누어 먹으며, 이처럼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꽤나 한 듯하다.

  “한아버지, 그래도 소나무는 으뜸이야! 짱이야! 이렇게 나무난로 장작도 만들어 주고 송이버섯까지 우리한테 주는 걸!”

  맞는 말이다. 우리네 전통가옥은 죄다 소나무 재목이고 이 헛간도 소나무 재목으로 지었으니!

 

  88.

  어제 이야기(87화)에 이어, 외손주녀석은 ‘송기떡’처럼 나무의 부산물로 만든 떡 따위의 음식물이 더 없느냐고 물어온다.

  “으뜸아, 왜 더 없겠어? 오늘은‘상수리’·‘떡갈나무’·‘망개떡’에 관한 이야기를 마저 들려줄 게.”

  가)상수리

  조선 14대 왕 선조(宣祖)는 왜구들이 쳐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자, 궁궐을 비우고 의령으로 피란을 하게 된다. 소주방(燒廚房) 즉, ‘대궐 안의 음식 만드는 곳’에서 차리는 수라상이 변변찮았다. 그래서 주방상궁은 도리없이 도토리묵으로 수라상을 차렸다. 선조는 이 도토리묵을 차츰 맛들이게 되어, 늘 도토리묵으로 상 차리게 명한다. 그래서 ‘늘[常] 수라’ 즉 ‘상수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이다. ‘상실이(橡實이; ‘도토리나무의 열매’란 뜻임.)’가 변하여 ‘상수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 ‘橡(상)’은 ‘도토리’를 이른다. 상수리나무는 그 많은 참나무류 가운데에서 도토리가 가장 크며,돌기(突起) 모양의 비늘잎이 달린 깍정이를 쓰고 있는 게 특징이다. 공교롭게도, 그 ‘돌기 모양의 비늘잎이 달린 깍정이’ 가 허울 좋은 선조 의 왕관 모양을 연상케 하기도 하니... .

  나)떡갈나무

  사실 ‘참나무’란 나무는 없다. 단,‘참나무과(-科)’‘참나무속(-屬)’은 존재한다. 참나무속에 든 참나무류는 300여 종. 이 할애비가 임학(林學)을 전공한 터라, 나무 이름을 부를 때에도 꽤나 까다롭게 군다는 걸 이해해주길.

  하여간, 떡갈나무는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든 나무다. 참나무류에서 가장 잎이 큰 수종이다. ‘떡갈나무’는 ‘떡깔이나무’라고도 한다. 즉, ‘떡을 찔 때 까는 나무’란 뜻이다. 송편을 찔 적에 솔잎을 깔 듯. 떡갈나무잎은 떡이 서로 엉켜 붙지 않게 할뿐만 아니라 그 향기가 떡에 배어든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단옷날에 떡갈나무잎을 받쳐 찐 떡을 떡갈나무잎에 싸서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80년대 당시 농협중앙회 간부로 지낸 내 재종숙(再從叔)은 ‘떡갈나무잎 일본수출 사업’을 펼쳐 외화를 획득한 바 있다. 떡갈나무잎을 탈취제로 냉장고 속에 넣어두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다) 망개떡

  저기 남녘 의령이 특산물인 망개떡. 솔잎과 떡갈나무잎과 마찬가지로, ‘청미래덩굴’의 경산도 사투리인 망개의 잎도 떡을 찔 때에 떡을 받친다. 가야의 백성이 백제로 시집을 갈 적에 만들어갔다는 망개떡. 그 떡은 신선이 먹는다 하여 ‘선유량(仙遺糧)’이라고도 부른단다.

  내가 위와같이 나무의 부산물로 만든 음식 이야기를 주욱 들려주자, 외손주녀석이 이번에도 나름대로 요점정리를 잘도 한다.

  “한아버지, 소나무는 ‘인솔한다’고 하여 ‘솔’, 솔 속껍질은 송기, 송기는 송기떡. 상수리나무 도토리는 도토리묵, 도토리묵은 선조임금의 수라상. 떡갈나무잎은 일본사람들 떡받침. 망개는 으뜸이의 손을 찔렀던 바로 그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잎은 망개떡. 글고 글고(그리고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름들이 다 이유가 있어 그렇게 따로따로 지어 부르는 거 같애.”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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