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2020.01.22 12:26

한성덕 조회 수:21

엄마의 일기

 나는 96세의 어머니를 지금도 ‘엄마!’라고 부른다. 막내 같으면 막내티를 낸다지만 60대 후반의 큰아들이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지도 김학 교수님으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글에서도 엄마, 부를 때도 엄마라고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어머니에게서만이 느껴지는 사랑과 포근함 때문이다.

  요즈음 엄마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무슨 종이든지 메모를 하신다. 일종의 ‘잡기장 습관’이라고 할까? 노트를 사다드렸다. 엄마의 성장과정이나, 최근의 일을 써놓으시면, 두 번째 수필집에 넣겠다고 했다. 서너 장을 쓰시더니 이제는 그럴만한 기력도 쇠진하고, 모든 게 귀찮은지 죽고만 싶다고 하신다.

  엄마의 일기를 독자들과 나누려고 몇 편을 골랐다. 철자법과 띄어쓰기가 어색하고, 문장이 뱅뱅 돌다가 휙휙 건너뛰는데서 오는 어려움이 있었다. 중복되는 것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간간히 한자어가 보이거나 젊은이다운 문장에서는 감탄했다. 독자들의 너른 이해를 구하며 원문 그대로 수록하고자 애를 썼다.  

   * 20191021()

 주일 오전 오후예배를 320분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일날은 일손을 놓고 12시까지 예배를 드리지요.

  월요일, 요양원에서 5시 반에 왔다. 집에 오면 외로움이 많지만, 아들 4형제가 있다는 풍요로운 마음이 우러나기에 위로가 되지요. 그날그날 행복을 가지고, 마음을 넓히고, 위로를 누리며 생활하는 것뿐이지요. 아들 4형제가 착해서, 곁길로 나가지 않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생활하며 위로받고 있지요.

  오늘도 큰 아들이 아침 일찍 왔어요. 어머니를 딸같이 잘 섬기고 세밀하게 아침식사를 챙겨줄 때가 너무 행복하고 감격해서 눈물이 흐르지요. 맏딸 정자는 5살에 잃고, 아들 용선이와 딸 혜숙이 셋을 잃으니까, 자식을 못 키울까 봐 안타까운 심정을, 누구에게 다 말 할 수 없고 울기도 많이 했지요.

 넷째 큰 아들 성덕이를 낳았지요. 약하지만 차차 성장하면서 건강하더구만요. 지금은 전주에서 아침밥을 싸가지고 어머니와 같이 먹으려고 오는데 성의가 너무 고맙지요. 딸은 없고 아들만 넷인데 다 잘하고 효를 다하기에 하나님께 감사기도가 끊이지 않아요. 나의 일생이 얼마나 살는지 모르지만 하루하루의 생활을 감사하며 지내지요.

  * 20191025()

   오늘도 요양원에서 5시에 원장님이 실어다 주었다. 원장님의 마음이 착하고 참 잘하지요. 하루 요양원생활에서 한 식구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감사하지요. 헤어질 때는 서운한 듯이 하지만 혼자서 집에 있는 것보다 낫지요. 단체 생활에서 이것도 아들의 혜택이다 싶어 행복을 느끼며 감격할 때가 많아요.

 

  저녁까지 요양원에서 먹고, 집에서 평안히 자게 됨은 아들의 덕이지요. 이렇게 됨을 마음으로 감사하면 감격의 눈물이 흐르지요. 한목사야, 한 장로야(첫째와 둘째) 고마워 하나님께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겠어.  

   * 2019126. ()

 성모(둘째아들) 자부가 와서 35,000원 용돈을 주었다. 오늘부터(실제로는 7월말부터) 맏아들 한 목사가 집에 오면, 여자처럼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해서 엄마에게 주느라고 동당거린다. 딸처럼 상을 놓고, 차리고, 먹게 하는 걸 볼 때 감격스럽기 한이 없다. 어려서는 7,8세가 되도록 머리에 열이 나면, 정기가 나서 눈을 뒤집어쓰고 놀랬는데, 참 놀래기도 잘 했지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울기도 많이 했지요. 아버지가 찬송을 부르면 울음을 그치고 찬송을 같이 불렀지요.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기도를 드리지요. 몸이 약한 것 같지만 장성하면서 건강체를 가지는 것을 볼 때, 속으로는 마음이 기쁘고 기쁨이 솟아나지요. 제일 씩씩하고 건강체를 가졌어요.

  위로 셋을 잃었으니 어머니 마음이 오죽하리오. 또 아들을 잃을까? 걱정을 많이 했지요. 때로는 어릴 때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4형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넘쳐요. 건강한 아들의 착함을 표현함.

   * 2019128()

   주일날, 거실에 까는 요(카펫), 이불과 침대에 까는 이불덮개, 여러 가지 필수품(작은아들 성모가)을 사왔다. 아름답게 펴고 침대에 덮는 이불을, 어머니를 생각하고 돈을 들여서 사왔다. 펴 놓은 것을 바라보니 마음이 너무 기쁘지요. 자부들의 고마움을 느끼지요. 큰 자부로부터 막내자부의 고마움을 말로 다 할 수 없어 속셈만 가지고 있지요. 생각할수록 고마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끊임없이 하는 것뿐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압니다.

  *20191210()

  아침 8시쯤 되면 원장이 나를 실러오지요. 큰 아들은 전주에서 6시쯤 준비하고, 720분 도착하는데 쉬지 않고(이틀에 한번 꼴) 오지요. 부엌에 가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빵(가끔씩)과 같이 차려오지요. 밥 먹고 나면 원장님 차가 와서 태우고 가는데 9시 가량 하차하게 됩니다.

  차에서 내리면 직원들이 나와서 맞아주지요. 하루생활에 있어서 오전에는 주로 운동을 하고, 치매 걸리지 않기 위해서 체조를 많이 하게 되지요. 11시 반쯤 되면 점심을 먹게 되고, 식사 후에는 그림 이름 짓기 하면 간식이 있지요. 구루마 밀고 아래위로 다니는데 다섯 번을 하게 하지요. 두시 반쯤 되면 윷놀이를 하게 됩니다. 화투치는 사람은 취미로 하고, 윷놀이 하는 사람은 윷놀이하고, 직원들이 많이 수고 하지요.

 

  4시 반쯤이면 저녁식사가 있어서 먹고, 5시가 되면 집에 갑니다. 치매 걸리지 않게 하느라고 운동을 많이 시키지요. 직원들의 수고가 크지요. 맹목적으로 노는 것이 아니고 활동을 많이 합니다. 오늘은 5시 반쯤 집에 와서 무를 뽑고 일을 하였습니다.

  단 한 번도 일기 쓰는 엄마 곁에 있었거나, 그 어떤 말도 거든 적이 없다. 오롯이 엄마가 손수 쓰신 일기일 뿐이다. 이 다섯 편의 일기에서 자식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노치원에서 보내는 하루의 일과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2020. 1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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