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증

2020.01.22 23:33

김창임 조회 수:41

백반증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오늘 서울에서 백일홍 나무와 단풍나무 묘목이 1,200평에 심을 정도가 오니 그렇게 아세요.” 하는 남편의 소리가 들린다.

   “뭐하게요?

  심어서 키우면 돈을 번단다.

  나는 “우리가 둘이나 봉급을 받지 않나요? 그 일은 경험이 있는 분이나 키우지 아무나 기르지 못해요.” 우리는 돈도 벌고 또 내가 건강한 체질도 아니어서 절대 안 돼요.

  심기만 하면 절로 큰단다. 남편은 귀가 얇다. 전에 나와 같이 대흥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L 교사의 말만 듣고 그대로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나는 할 수 없이 생 시어머니에게 제발 나무 심지 않게 말려 달라고 애원했다. 어머님은 “당신의 지인이 나무를 심어놓고 나무가 크기도 전에 저 세상에 갔다.”면서 하지 말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L 교사는 경험이 아주 많고 아내가 전업주부다. 집안일은 어머니가 다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부인이 나무 가꾸기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아주 부지런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두 시간 정도 묘목 기르기를 하고 출근한다. 자식들도 육 남매나 두었으니 학비도 두 배나 들어간다. 그분이 사는 곳은 토질이 나무 기르기에 아주 적절한 마사토이다. 그곳을 가노라면 그 근처는 모두가 다 묘목 기르는 밭이다. 묘목들은 환경이 매우 좋아서 그런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활기가 넘치게 자라고 있다. 그래서 그분은 자녀들의 학비를 주려면 나무만 팔면 해결된다고 늘 자랑이다. 그분 성격은 서분서분하다.

 

  어느 날은 남편이 나무 전지를 한다며, 신정리에 있는 백일홍과 단풍나무 묘목이 심겨 있는 곳에 같이 가잔다. 그이를 따라가서 남편과 말동무도 해 주고, 물도 먹여주고, 나무에 물을 주기도 했었다. 기운이 없는 나는 겨우 양동이에 절반 정도나 가져온다. 그 많은 백일홍 묘목에 물을 주려니 내가 지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주다가 지쳐서  죽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었다. 그 곳 뙈기밭에는 미나리가 가득 심어져 오보록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푸른 미나리가 미소 지으며 나를 반가워한다. 그곳은 우리에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물을 선물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웬일인가? 남편은 본인이 나무 전지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생장점을 잘랐기에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한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잡초제거는 그 동네 사람에게 부탁했다. 주인이 감독하면서 같이 해야지 그분들은 대충해놓고 인건비만 챙긴다. 모든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데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농촌에서 농사나 지어라.”라고 하지만 농사 역시 아무나 할 것이 아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아 열정적으로 자기 자식 키우듯 늘 관찰해야 한다. 늘 사랑해주면서 길러야 되는 것인데 쉽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어느 날은 그 동네에 사시는 우리 큰 시숙님이 하도 답답하니 “자네는 뭐가 아쉬워 그렇게 일을 하느냐?”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을 대변해준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 삼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했다.

 

   그 뒤 신정리에 있는 나무 밭 600평은 그곳이 골프장이 생기면서 나뭇값과 땅값을 받기는 했지만 겨우 본전 찾기였다. 무슨 일을 하려면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가족과 의논해야 한다. 처음이니까 100평 정도에 여러 가지 나무를 심어본다. 우리 논에 잘 적응하는 나무를 선택한다. 기를 때는 경험자에게 일일이 잘 물어본다. 인터넷 검색을 한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물어본다. 우리는 일손이 부족한 집이니 잡초는 신경 안 써도 되는 느티나무나 느름나무를 심었더라면 잡초와의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심자마자 위로 잘 뻗어 잡초가 비집고 들어갈 사이를 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판로가 좋다. 아무리 품질이 좋더라도 팔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느티나무와 느름나무는 살 사람이 생겨서 몇 주라도 팔았다. 그 일로 남편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세워주었다. 나한테 미안하니 옷 구입비 100만 원을 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사서 항상 멋진 모습을 보여주란다. 매우 고맙지만, 그 옷값으로 내 입을 막으려고 하나 어림도 없다.

 

  지금도 그 이야기가 나오면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꼭 돈만 가지고 생각해야 할까?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우리 아들들의 골든타임은 계속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조금 생각을 지혜롭게 했더라면 내 건강은 아무 문제가 없이 살 수 있다. 등산은 날씬한 나에게 아주 좋은 운동이다. 국내에서 유명한 산은 모두 가보았다. 그 좋은 등산을 자주 하고 싶다. 매주 한 번이라도 하면 좋겠다. 남편이 혼자 묘목 기르기를 하고 있으니 나 혼자 가기는 쉽지 않다. 그리도 등산을 하고 싶은데 나무 기르기를 한다니 답답하다. 인생의 행복은 자기가 주인인데 남편을 논에다 두고 혼자라도 등산모임에 들어가지 못한 내가 바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손에 직사광선을 하루 내내 쬐게 되니 백반증이 생겼다. 광주에서 유명하다는 피부과는 모두 찾아갔지만 낫지 않고 있다. 민간약도 여러 가지를 써보았다. 치료비가 적지 않게 들었다. 그 귀한 시간과 노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2020년이 된 지금 나무를 팔아 수입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나무 상황이 좋지 않으니 살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심었던 나무를 포크레인을 이용하여 파내고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또 참는다. 끝이 나쁘면 안 되니까.  

 

  나는 천만다행으로 얼굴에 생기지 않았다는 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남편의 손이라도 밉게 하여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라고 백반증을 준 것 같다. 만약에 그것이 얼굴에 생겼다면 본인은 물론이고 나도 부부와 같이 외출하는 것을 꺼렸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기도 덕택으로 얼굴은 아직도 문제가 없다. 참 감사할 따름이다.

                                                 (201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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