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다운 친구

2020.01.25 11:58

한성덕 조회 수:5

친구다운 친구

                                                                 한성덕

 

 

 

 

  작년 119 토요일, 늦은 저녁시간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내일아침 자기교회에서 ‘설교를 해 달라’는 게 아닌가? 조기은퇴 했으니 언제라도 부탁하면 되는 줄 알았을 터, ‘삼례동부교회 설교자’란 말에 끝도 밑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얼마나 황당한 일을 당했으면 그렇게도 나를 당황하게 할까 걱정이 앞섰다.

  급할수록 냉철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친구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부탁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절친한 사이라고 허투루 생각하면, 실수를 넘어 우정을 끊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친할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을 담고 사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 친구가 아니어서 더 섭섭했다. 주일이 지나고 안정되면 세세한 전화를 하겠지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몹시 궁금해서 두세 번 전화하고, 세 번의 문자를 날렸지만 꿈적도 하지 않았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신변에 큰 이상이 생겼는지, 친구 성덕이의 우정을 시험하는 건지, 별의별 생각이 내 안에서 뭉텅이로 돌아다녔다. 가고는 싶으나 연락이 없으니 내키지 않았다. 그런 걱정 속에 3월이 지났다. 그 뒤에도 아무 연락이 없었으니 인내하며 지낸 세월이 일 년이었다.

  목회에서 조기에 은퇴한 것은 그냥저냥 된 게 아니다. 먼저, 다섯 가지 목표를 세웠다. 좀 더 젊어서 인생의 남은 때를 즐기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실컷 여행하자. 아내의 찬양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갖자. 그리고 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글로 담아내자. 결코 돈이 있어서 은퇴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믿음’ 때문이었다.

  목회의 마무리 가닥은 두 교회를 합치는 것이었다. 합병을 고심하고 있을 때 정말로 좋은 후배를 만났다. 모든 걸 깔끔하게 정리해서 교회를 물려주고, 나는 보장된 70세 정년을 뒤로한 채 65세에 마쳤다. 단지 실천한 것뿐인데 모두들 신선한 충격이요, 대단한 용기라고 추켜세웠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닌 것을 누군들 알겠는가? 기도로 3년을 준비하며 좋은 후배를 찾았다. ‘좋은 후배’란 목사이기 전에 사람의 됨됨이에서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자를 가리킨다. 아무, 그런 후배에게 교회를 물려주어서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좋은지 모른다. 탄탄한 노후대책도, 생을 꾸려나갈 준비도, 교회에서 넉넉히 챙겨준 것도, 어느 독지가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다. 아내의 찬양사역에 기대는 정도요, 뾰족한 수라면 주님만 바라보는 것뿐이다.

  이런 나를 그 친구는 퍽 부러워했다. 나도 처음에는 자유롭고 좋다며 권했다. 하지만 인위적인 생각, 왠지 교만해 보이는 자신감, 교회합병을 쉽게 보는 태도, 준비성 없이 서두르는 자세가 문제로 보였다. 그래서 교회를 합치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충분히 기도하고 심사숙고하라며 신신당부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려다 문제가 불거졌는지, 이런저런 소문이 들렸다. 절친한 줄 알고 친구들은 나에게 물었지만 아는 게 없었다. 물론 안다고 해서 입을 나불거리지도 않겠지만, 그때부터 심기가 사나워졌다. 절친한 친구인지 고민에 빠졌다. 친구의 배신감을 처음으로 느꼈다. 일이년이 아니라 35년 지기다. 죽마고우는 아니라도 수시로 왕래하며 정이 도톰한 친구요, 누구보다도 절친한 사이였다. 더 친하니까 자존심이 더 강했나? 친구의 소식을 묻는 자들에게 모른다고 하면, 비아냥거리듯이 “친하잖아?”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런 분노가 어땠는지 친구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 격분 때문에 얼마동안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보다 먼저 알리고, 기도를 요청할 친구라는 데서 오는 섭섭함이 차오른 탓이었다.

 

  ‘이제 모든 것을 잊어야지. 묵은 감정을 훌훌 털어내야지.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면서 누구를 탓하랴?’ 하는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에 비하면 손톱 밑의 때만도 못하다. 절친한 사이에 옴니암니 하는 것 자체가 진정한 우정은 아니다. 이런 생각 속에서 너른 마음으로 글을 쓴다.

 친구야, 그동안 악한 세력과 싸우는 고통에 얼마나 시달렸나? 병이 들어붙진 않았는지 걱정이다. 나에 대한 섭섭함이 왜 없겠나? 이 글을 보는 순간 와락 쏟아 내고,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벗으로 만나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예술이 짧든 길든 무슨 상관이야, 짧은 인생길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면 되지. 이제 눈물을 걷어내자. 더 멋지고 풍요로운 내일의 추억이 기다린다. 친구다운 친구로 다시 살면 되잖아? 친구야, 안 그래?

                                             (2010. 1.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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