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밭에 가자

2020.02.03 12:28

홍성조 조회 수:4

얘야, 밭에 가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홍성조

 

 

 

 “따르릉! 따르릉!”

 채 어둠도 가시지 않는 새벽 4시쯤, 거실에 놓여있는 전화벨이 정적을 깨뜨렸다. “누구야? 이 시간에!” 나는 잠에서 덜 깬 얼굴을 찡그리면서 불만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000씨 아드님이시죠?

“그런데요?

“여기 000병원인데요, 어머님께서 통화하고 싶다고 하네요.

“바꿔 줘 봐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이 시간에 전화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지 간호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사실 나는 잘 알고 있다.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너무 외로워서, 또는 병실에서 갑갑해서 시도 때도 없이 자식과 통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허나 나는 귀찮다. 왜냐하면 전화 할 적마다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니까.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꼭 말씨름을 하곤 한다.

“엄마, 왜요? 뭐 불편한 것 있어요?

“얘야, 밭에 가자.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어제보다는더 힘이 없어 보였다.

“엄마, 지금 몇 시인 줄 아세요? 지금 새벽 4시에요.

 나는 큰소리를 치고, 씩씩거리면서 수화기를 쾅하고 놓아버렸다.

  어머니는 올해 93세이시다. 83세에 아버지가 작고하신 뒤 10년 동안 단독 주택에서 혼자 생활하셨다. 혼자 양로당에 다니시고, 또 참죤의료기에 가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같이 지내고, 어느 때는 시장으로 찬거리를 사러 유모차를 몰고 가시곤 하셨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상 조짐이 보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면 자꾸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말할 때가 많았다. 나는“연세가 드셨으니 당연히 기억력이 약해지겠죠!”하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우 후회가 된다. 그때 바로 병원에 갔어야 하는데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또 가스레인지를 켜고 그냥 잊어버려 냄비가 시꺼멓게 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하고 말만 했지 왜 그런가를 무시해 버렸다. 그 뒤 난 그 방지책으로 가스레인지 차단기를 달았다.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가스불이 꺼지는 편리한 장치다.

  어머니의 전두엽 인지 지능은 날이 갈수록 떨어져,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곤 하셨다. 한 번은 1000만 원이 예금된 저금통장이 없어졌다면서 옆집 할머니를 의심하기 시작하여 다투기도 했다. 나는 온 집안을 다 뒤져 2층 올라가는 계단 밑에서 그 통장을 찾아냈다. 암만해도 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요소  요소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요즈음은 과학이 발달하여 CCTV내용을 밖에서도 내 핸드폰으로 볼 수 있어 참 편리하다. 가족회의를 열어 어머니에게 치매검사를 받아보기로 결정하고  B병원에서 1시간동안 뇌 MRA촬영을 한 결과, 의사는 어머니의 전두엽 두뇌가 쪼그라들어서 인지기능이 떨어졌다고 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유될 수 없고 다만 치매 진행속도를 좀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난 그 당시에는 중환자실 환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중환자실 환자는 나을 희망이라도 있지만, 치매는 죽을 때까지 못 고친다니 맥이 풀렸다. 치매의 무서운 증상은 인지기능이 떨어져 밤에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는 넘어지고 다치며,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된다고 절대 집에 혼자 두지 말라고 신신 당부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밤중에 거리를 배회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혼자 단독 주택에서 생활한 어머니를 안심할 수 없어 별 수 없이 요양병원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요양병원은 엘리베이터 잠금장치와 24시간 간호사들이 철저히 감시하여 환자 혼자는 절대로 외출을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  가족이 항상 잠을 자지 않고, 옆에서 지켜야 한다는데, 가족들의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밤중에도 가족 몰래 일어나 대문을 열고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족들이 뜬눈으로 어머니를 지켜야만 한다. 그런데 요양병원은 이런 점을 잘 해결해 주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부지런하여 한시도 일을 놓지 않으며 무엇인가를 꼼지락거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매일 새벽에 오르내리면서 물도 주고, 채소도 가꾸어 왔다. 나도 어머니의 DNA를 닮았는지 부지런하다는 평을 주위 사람으로부터 듣는다. 어머니는 평소 채소를 기르는 습관이 있어 치매가 있는 지금에도 밭에 가서 일하고 싶은 잠재의식이 있다. 그래서 새벽에 밭에 가자고 나한테 전화를 하니 말이다.

  요즈음은 평균수명이 길어 치매환자가 많이 발생한다. 국가적으로는 굉장한 손실이다. 왜냐하면 치매환자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과 금전적인 손실은 어마어마하다. 끝이 없는 병이다. 낫지도 않는다. 죽어야만 끝난 몹쓸 병이다. 하나도 희망이 없다. 나을 희망이 실오라기 한 줄이라도 있다면, 치료하는 가족들에게도 보람이 있을 것이다. 옛날에는 치매환자가 없었다. 치매가 오기 전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만 희미해지니 그 가족들의 고통이 그지없다. 이틈에 기승을 부리는 것이 각종 요양원과 요양병원들이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어 좋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병원비 고지서에 가족들은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된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어머니 면회를 간다. 갈 때마다 벌어지는 행위는 옷 보따리를 싸는 것이다.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은지 항상 침대 맡에는 집에 가려고 싼 짐 보따리가 있었다.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잠재의식으로 남아 자꾸 집을 그리워하게 된다. 내가 면회를 가면 어머니는 고즈넉이 앉아 있다가 가납사니 같게 말이 많았다. 평소에는 또랑또랑하게 말을 잘하시는 어머니도 요즈음은 노태모습이 역력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병실 안은 치매 환자끼리 서로 대화가 일절 없다. 멍하니 벽이나 처다 보든가 아니면 상대방을 멍하니 쳐다본다. 가족들이 면회 가면 그때서야 말이 많아진다. 처음에는 눌삽하게 말을 하지만 술술 이야기 타래가 풀리면 끝이 없다. 그 다음에는 빙그레 웃는다. 그 얼굴은 “나 말 잘했지?”라는 은연중 자신감의 표징을 말해주는 것 같다.

  치매환자는 현재나 장래보다는 과거의 삶을 굉장히 잘 기억해낸다. 누가 보더라도 치매환자라고 믿기지 않는다. 가족 이름을 잘 기억하고 얼굴도 알아보는데, 한 달 중에 어느 한 날은 필름이 끊긴다. 맨붕 상태가 되면 공상의 나래를 펼치어 시공간을 넘나들어 환상의 상태로 빠져든다. 그때 만약 밖으로 나가면 반드시 교통사고를 당한다. 인지 장애로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강 신호등도 그냥 건너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대소변도 못 가린다. 그 단계를 넘어서면  정상인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그래서 항상 환자를 주의 깊게 옆에서 지켜보아야 한다. 가족들은 그것이 힘들고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족들도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데 환자에게만 매달릴 수도 없다. 어머니도 정신을 차려보려고 굴침스럽게 노력하지만, 일력으로 되지 않으니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신다. 옆에서 보기에도 눈물겹도록 불쌍해보인다.

  어머니는 외롭다. 같은 병실에도 똑같은 환자들만 있으니 무척이나 갑갑하고 답답하리라. 허나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치매는 완쾌가 없다. 정말이지 이런 병이 다 있는지 모르겠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치매라고 하니 평소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치매는 예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주차장에서 내 차를 어디에 놓았는지 이리저리 찾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심각하게 뒤돌아볼 일이다.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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