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올케

2020.02.04 12:07

신효선 조회 수:7

큰올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신효선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요트경기장에서 대통령기 전국시도대항 요트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채석강과 격포해수욕장을 배경으로 요트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나비처럼 파도를 헤치며 펼쳐지는 화려한 레이스는 장관이었다.

  격포는 해변이 아름답고 파도가 잔잔하여 해양스포츠를 즐기기에 아주 좋은 곳으로, 평상시에도 요트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요트들의 멋진 레이스도 보고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남편과 함께 가기로 했다.

  남편은 정년퇴직 후 취미로 사진을 배워 시간만 있으면 어디고 달려가는 무명작가다.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전주에서 늦게 출발하여 변산 조개미 집에 가니 큰올케가 친구 세 명과 함께 와 있었다. 친정 자매들은 서로 보고 싶을 때 연락하여 이 집에서 만난다. 8남매가 누구나 필요할 땐 언제든지 이 집을 사용할 수 있다.

 큰올케는 내가 초등학교 때 김제 죽산에서 배를 타고 동진강을 건너 우리 집으로 시집을 왔었다. 눈이 크고 키도 큰 언니는 어린 내 눈에는 참 예뻐 보였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교통이 편리한데, 60여 년 전 부안과 김제 죽산을 오가려면 차를 타고 멀리 돌아가거나 배를 타야 했다. 시부모는 하서에서 대농이니 부잣집으로 시집 잘 갔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잣집 맏며느리 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오빠는 법대를 나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에 입대했다. 사법고시 합격을 소망했던 아버지는 기대에 어긋난 큰아들에 대해 실망이 컸다. 큰올케가 사는 집은 상서면과 하서면 경계선 부근인 내변산 입구다. 올케는 거의 날마다 3㎞쯤 되는 하서 부모님 집으로 오갔다. 집에서 숙식하는 일꾼만 7~8명이 있어 점심때는 일하러 온 30여 명 식사준비를 위해서는 아줌마와 어머니 그리고 작은어머니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큰올케가 많이 도왔다.

  나는 어머니가 둘이다. 나를 낳은 어머니와 남동생 둘을 낳은 작은어머니가 있다. 큰올케는 나에게 굉장히 잘해주었다. 보자기에 책을 싸들고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 광목으로 가방을 만들어 주어 나는 편리하게 다녔다. 소풍을 갈 때면 언니는 보리를 조금씩 넣는 아침밥을, 그날은 쌀밥을 지어 누룽지를 만드는데 설탕을 넣고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간식으로 주었다. 그때 그 누룽지는 세상에서 나만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다. 지금도 시누이 넷 중 나를 제일 좋아하며 집안일도 잘 의논한다.

 

  그곳에 온 친구들은 올케보다 나이가 많지 않아 올케를 왕언니라 불렀다. 등산모임 친구들인데, 나이가 드니 등산을 할 수 없어 집에서 모이는데, 올케 차례가 되어 이곳에서 모였다 한다. 큰방은 올케 친구들이 사용하고 침대 방은 내가 쓰기로 했다.

  나는 그곳에 밑반찬과 식량이 있어서 반찬 몇 가지만 가지고 갔었다. 올케가 토종닭에 과일도 가지고 와서 같이 식사를 했다. 저녁에 건넛방에서 윷놀이하는 소리가 조용한 갯마을을 잔치 분위기로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올케는 일행 둘과 산책을 나가고 한 사람만 남아있어 아침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올케가 모싯잎을 넣어 떡을 만들어와 그것으로 아침을 대신하기로 했다 한다. 그것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아침을 준비하면서 잘못되어 흉이나 잡히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집에서보다 잘 되었다.

  된장찌개와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으로 상을 차렸더니 시누이한테 밥상 받는 올케도 있다며 칭찬이 대단했다. 올케 친구들한테 실수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칭찬을 받으니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친정에 가면 올케한테 대접을 받는데 세월이 지나 팔십이 넘은 올케는 옛날의 올케가 아니다. 부모님 기일 때 가면 조카며느리들이 상을 차린다올케는 영리하고 배움에도 관심이 많다. 예순 살에 운전을 배워 지금도 운전 못하는 오빠를 승용차에 태우고 다닌다.

  몇 년 전 이곳에서 형제 모임이 있던 날, 올케한테 전북대 평생교육원 자서전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방 같은 분위기로 가까우면 올케도 다녔으면 좋을 텐데 거리가 멀다고 했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올케 둘째 아들이 한의사인데 전주로 한의원을 옮기게 됐다며, 일주일에 한 번 듣는 강의니 아들과 드라이브한다 생각하고 다니고 싶단다. 나와 함께 한 학기를 다녔는데 올케는 지금도 다니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새로움에 도전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올케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고 존경스럽다. 나도 저 나이가 되어 저런 용기와 열정이 있을까?

  다음날 비가 와서 아쉽게도 요트경기의 화려한 레이스를 사진에 담아오려던 바람은 포기했지만, 올케를 만나 의미 있게 보낸 날이었다.

 

(201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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