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다는 것

2020.02.04 12:32

한성덕 조회 수:10

참는다는 것

                                                                     한성덕

 

 

 

 

  한 마을에, 늘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가 피아노학원을 다니자 너도나도 우르르 함께 다녔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피아노학원에서도 어울리는 재미기 쏠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두 명 피아노학원을 떠났다. 한 명 남았던 자는, 참고 끝까지 배운 덕에 결국은 피아노 전공자가 되었다.

  학생시절에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명언을 익혔다. 참을성이 부족한 탓에 그 글귀가 절절히 다가왔다. 인내를 키우려고 책상머리에 써 붙이기도 했었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허나 그 명언이 내게는 신화였나? 2% 부족한 참을성이 여러 번의 기회를 밀어냈다.

  중학생 때 풍금소리에 홀려 가슴이 콩닥거렸다. 교회선생님께 풍금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동생과 함께 배우는데, 찬송가 한곡을 가르쳐주시더니 계속 연습하라고 하셨다. 요지는, ‘손가락이 부드러워진다. 곡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어떤 곡이든지 쉽게 칠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고 ‘연습에 충실 하라.’는 것이었다. 찬송가는 4성부여서 손가락 네 개를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겨울방학 때는 왼 종일 풍금의 건반을 두드렸다. 화로에 숯불을 담아 풍금 옆에 두고,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건 동생이고,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한 시간으로 족했다. 아우는 저녁이 되어서야 화로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음악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립고등학교에서 교사로 데려갔다. 인내한 동생은 음악선생으로 꽃을 피웠고, 나는 사단군인교회 반주자로 만족했다.

  무주농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한 학년이 한 반뿐이요, 미술시간은 아예 없었다. 그래도 어떤 대회든지 중학교와 연합했다. 그중 포스터 그리기대회만큼은 항상 1등이었다. 남다른 재주가 보였는지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불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말씀하시는데 촌뜨기가 알기나 했던가?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가난했다. 대학은커녕 꿈조차 꿀 수 없어 일찍 포기했는데, 선생님께서 데생을 가르쳐주셨다. 몇 번이나 미술대학은 학비가 많다는 바람에 겁이 덜컥 났다. 미술실에서 2,3개월의 데생학습을 정리한 이유다. 가난 탓이야, 참을성 부재 탓이야? 마냥 아쉽다.

  총신대학교에서 7년의 신학수업을 마치고, 익산지역의 한 농촌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했다. 붓글씨를 배울 요량으로 학원을 노크했다. 글씨를 스스로 익혀서 쓰는 재미가 쏠쏠하던 참이었다. 글씨를 좀 쓰니까 원장이 인정하고, 체를 잡아주며, 어느 선에서부터 가르쳐주기를 기대했는데, 하루 종일 신문지에 종과 횡을 긋는 연습만 시켰다. 적어도 열흘이상 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난 그만 지질증 덫에 걸려서 그 날로 돌아섰다. 문제는, 좀 ‘안다. 쓴다. 본다. 한다. 있다. 배웠다’는 따위로 ‘엉덩이 뿔난 송아지’ 근성이었다. 자칫 이런 게  사람을 건방지게 하고, 오랜 세월 속에서 좀 ‘쓴다.’고 한 것이 ‘나를 망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붓글씨를 배우려던 때가 1985년이었으니, 그때부터 끊임없이 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

 

  인생이란, 지난날을 아쉬워하며 내일을 향하는 존재라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냉큼 시작하라’고 다그치겠지만, 솔직히 ‘수필보다 더 나은 게 없다’는 생각에 미련을 버렸다. 수필은, 내 인생끝머리에서 만난 가장 좋은 친구다. 모든 면에서 글이 친구 되어 내 곁에 있지 않은가? 글을 시작한지 5년차에서 느껴보는 수필의 매력이지만, 이제 겨우 버들강아지 눈 뜬 정도에 불과하다. 눈이 흐려지고, 컴퓨터 자판기에서 멀어질 때까지 글을 쓰고자 한다. 오랜 수필 속에서 참는 것을 배웠다. 나도 이제야 겨우 철이 드나 보다.

                                         (2020. 2.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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