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2020.02.13 18:26

곽창선 조회 수:14

미륵사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미륵산은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의 중심 테마가 흐르는 산이다. 백제 30대 무왕이 사자암으로 행차하던 중 용화산 밑 큰 연못 한 가운데서 나타난 삼존미륵을 발견하고 감복한 왕비의 간청으로 현현하신 미륵불 신앙의 도량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백제의 멸망으로 소실된 뒤 미륵산 밑 옛터에 미륵사지만이 남아 있다.

 

 미륵산은 익산지방에서 유일하게 등산을 즐길 수 있는 휴식처다. 마치 어머니 젖무덤처럼 봉곳하게 솟아 정감이 흐르는 산이다. 430m 높이에 경사도가 완만하고 알맞게 솟아 남녀노소 3시간이면 넉넉히 다녀올 수 있다. 동편 용화산에 들러 서동공원을 둘러보고, 사자암 방향으로 따라 오르다 보면 두 곳의 저수지며, 군부대, 과학고, 금마 시가지가 한눈에 다가 온다. 정상 남쪽 기슭에 미륵사의 슬픈 역사를 묵묵히 지켜오던 절터가 수줍게 단장을 마치고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화작가 J여사의 작품 전시회 축하 겸 일행들과 국립익산박물관에 다녀왔다. 이곳은 나에게는 남다른 추억이 깃든 곳이다. 초등학교를 왕궁과 미륵사지 인근에서 다녔고, 미륵산 넘어 부대에서 군대생활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미륵사에 대한 설화나 일화는 알지 못했고, 그저 오르고 내리던 대나무밭과 과수원만 기억될 뿐이다. 민가 옆에 연못과 돌무덤이 쌓여 흉하던 모습이 별천지로 변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니 새삼 놀랄 뿐이다.

 

 박물관은 미륵사지내 입구 지하에 자리하고 있었다. 최초 미륵사지 유물 전시를 위해 문을 열었다가, 금동향로와 사리장엄구 등 주요 문화재가 발견되어, 이를 보존하고 전시하고자 국립박물관으로 승격하여, 20201월 현지에 증축 개관했다. 박물관은 황등석을 가공하여 실내외를 장식했다. 많은 관람객으로 혼잡을 이루고 이따금씩 외국인들도 눈에 띠었다. 전시된 물품 중, 단연 사리舍利 봉영기, 금제사리 내호, 금제사리외호, 유리병 3종의 사리기와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 함 등 총 9, 모두 석탑에서 발견된 고완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보물 모두 백제 왕실에서 발원하여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 안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견되었다니 보고 또 보아도 의심이 들 정도다. 1500여 년 땅 속에 묻혔던 보물들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모두 사리장엄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리봉영기에는 193(앞면99자 뒷면94)각자로 새겨졌으며 석탑 건축 연도(639) 사리의 신묘한 힘,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발원문과, 성불을 기원하는 바람이 적혔다. 모두 금속재료를 이용하여 섬세하고 우아하게 만든 백제인들의 수준 높은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전시품은 곳곳에서 발견된 백제유물을 중심으로 전국의 사리장엄이 함께 전시되어 사리舍利의 발자취를 탐구할 수 있는 산 교육장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넓은 절터를 둘러보았다. 원래 3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중앙에 있었다는 목탑은 보이지 않고, 동탑은 92년도에 현재의 모습으로, 서탑(국보11)2019년 말에 복원되었다. 특히 서탑은 우리나라 최대 석탑이자 돌탑의 시원으로 알려졌다. 왼쪽 날개가 부러진 모습의 탑은 고증을 바탕으로 남았던 탑신을 모아 없어진 부분은 다시 석조石彫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오랜 세월 탑의 형체복원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신 관계자들의 노고의 결과다. 당간지주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미륵사의 아픔을 전해주는 듯 전면 중앙에 외로이 서 있다. 여기저기 출토물들이 정리되어 있고 빈터마다 당시의 이름표만 달고 있는 잔디밭만이 황량하게 보일 뿐이다. 어딘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미륵사지 동탑 건너 쌍능은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곧 밝혀지리라 기대해 본다. 일설에 무왕 내외분의 능이라고도 하나 무왕 능은 공주에서 발견되어 보존되고 있다.

 

 역사는 지난날의 기록이요, 오늘은 훗날의 역사가 된다. 흔히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음은 가슴 아픈 일이다. 백제는 건국이후 이웃 나라들과 숱한 전쟁을 겪고서 31대 의자왕을 마지막으로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그 뒤로 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 일제의 만행까지 겪으며 찬란한 문화유산이 지워지고 파괴되었다. 찾아도 기록이 없어 명맥을 알 수 없었으나 여러 곳에서 발견된 유물에서 다소나마 그 기쁨을 찾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오늘의 복원에 만족하지 않고 옛 미륵사의 모습으로 거듭 날 때까지 정진하면 좋겠다. 없어진 중앙의 목탑도 복원하고 미륵사 사찰과 왕궁유적지도 고증을 토대로 복원해서 명실상부한 미륵불 도량의 옛 모습으로 명성을 되찾길 기대한다. 어렵겠지만 사찰의 형태나 왕궁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2020. 2. 12.)

 

◆사리 장엄구 ; 사리를 불탑에 봉안할 때 함께 봉안되는 물품

  맛 동 ; 산에서 나는 마를 직업으로 캐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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