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2020.02.18 12:54

홍성조 조회 수:6

징검다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홍성조

 

 

 

  어제 내린 눈 탓으로 곳곳에 눈덩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햇빛은 봄 햇살처럼 따사로운데, 약간 바람이 차다. 미세먼지가 없어 맑은 하늘을 보니 웬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그 동안 우렁이 같이 콕 박혀 사는 방콕신세로 지내다가 모처럼 걷고 싶은 충동을 느껴 단단히 차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이런 때는 산책이 최고의 운동이라 생각하면서 전주천변으로 갔다. 천변 길은 인도와 자전거 길로 구분되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몇몇 안 되었다. 역시 코로나 영향이 여기에도 미치고 있었다. 서신동 다리 밑을 통해 내려가니 한일고 옆 근처에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야 전주백화점으로 간다. 징검다리를 보니 어제 눈이 와서 돌 위에 아직도 유리알이 깔린 듯 듬성듬성 물기가 얼어 있다. 내 눈으로 쳐다보니 미끄러워서 건너갈 자신이 없었다. 겨울철인데도 천변에서는 풋풋한 풀내음이 내 코를 자극한다. 흐르는 물 표면을 보니, 맑은 물길이 돌다리 사이로 작은 포말을 일으키면서 삶에 지친 찌꺼기가 씻겨 가듯이, 흐르는 시냇물소리가 무척 정겨웠다. 그리고 양쪽 옆 가로수의 그리메가 물속에 잠겨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였다. 그 전에는 이곳에서 작은 물길 따라 피라미 떼가 꼬리를 치며 노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는데.

 

  징검다리는 채석장의 화강암으로 놓여졌다. 물론 다니기 편리하도록 표면은 매끄럽게 깎여졌다. 돌 모양은 대부분 네모난 돌이지만, 정제되지 않는 것도 있다. 옛적에는 돌다리 대신 가다귀나 녹죽으로 엮어서 다리를 놓았다. 홍수가 오면 그냥 떠내려갔다. 허나 요즈음 징검다리는 홍수가 나도 돌무게 때문에 떠내려가지 않는다.

 

  나는 돌 사이로 빠지지 않도록 온 신경을 써서 건너야했다. 옛날에는 간잔지런하게 그 위를 걸으면, 틀림없이 중심을 잃어 물에 빠지곤 했다. 또 술에 취해 갱충맞게 건너면 역시 물에 빠졌다. 건널 때는 발자국의 박자를 맞추면서 폴짝 폴짝 건너야 빠지지 않는다. 발 박자가 어긋나면 별 수 없이 빠져야 한다. 만약에 그때 빠지면 날카로운 돌 모서리에 부딪쳐서 골절상을 당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날렵하게 움직여서 징검다리를 잘도 건너간다. 징검다리는 낭만적이지만 노약자와 유모차를 모는 할머니들, 그리고 자전거로 건너야하는 남성들에게는 고민의 다리가 되기도 한다.

 

  어릴 적 실개천이 흐르는 시골의 징검다리는  농촌 총각이 동네처녀를 업어서 건네는 것으로, 냇물에 빠트려서  인연을 만들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운동화 신는 부잣집 아이만 제외하고, 대부분 아이들은 검정 고무신을 신었기에 물에 빠져도 나와서 뒤집어 탈탈 털면 되었다.

 

  '징검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아는 길도 물어가라.' 또는 '무른 감도 쉬어가면서 먹어라.'라는 뜻과도 같다. 비록 단단한 돌로 놓인 징검다리라도 조심성 있게 건너라는 옛사람들의 지혜는,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뜻으로, 오늘날까지도 일맥상통한다.

 

  징검다리는 이쪽 장소에서 저쪽 장소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만약 징검다리가 물에 잠기면 이쪽과 저쪽의 세상이 나뉜 세상이 된다. 소통이 막히면 두절의 미학이 작동한다. 따라서 징검다리는 사람들의 생존의 수단이며, 소통의 추억이 되고, 문화의 추억도 되기도 한다.

 

  가난한 이들과 부자들이 징검다리로 맺어져, 마음의 징검다리 또는 사랑의 징검다리를 만들면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 징검다리로 인해 함께하는 기쁨, 함께 나누는 행복을 누릴 것이다. 나눔은 실천할 때 가장 행복하다. 여기에 징검다리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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