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있어 행복해요

2020.02.19 12:22

한성덕 조회 수:3

그대가 있어 행복해요

                                                                            한성덕

 

 

 

  관포지교(管鮑之交)란 말이 있다. 옛날 중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관중과 포석은 아주 친한 사이였다. 전쟁터에 나간 관중이 세 번씩이나 도망쳤다. 동료들은 그에게 비겁한 자라고 욕을 했다. 허나 포석은, 그의 늙으신 어머니 때문이라고 끝까지 신뢰하며 아꼈다. 관중은 자기를 믿어준 포석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관중과 포석처럼 다정한 친구사이를 ‘관포지교’라 한다.

  1978년 총신대학교에 진학했다. 신학대학원까지 7년의 신학수업이 시작되었다. 영적지도자의 꿈을 안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자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의 목표가 성직자여서 잘 어울리고 금방 친구로 다가왔다. 서로를 신뢰하는 인격수양, 학문으로 인한 실력배양, 모난 것을 다듬는 품성까지 세심한 주의가 요하는 신학교가 아닌가?

  신학생들 상당수는 가정형편이 변변치 않았다. 그저 믿음만으로 들어온 자들이 태반이었다. 지난(至難)한 세월이 벗들마저 내쳤는지, 부지깽이라도 친구이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보였다. 아무나 붙들고 얘기를 나누어도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공감이나 동질성을 절감하던 시절이었다. 그 흐르는 눈물에서 진솔함이 반짝거렸나? 애잔함이 강물 되어 내 마음을 적셨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목회전선에 뛰어들었다. 학생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참신하고 기개가 당당해 보였다. 올바른 목회자상을 단단히 다짐했었다. 명예나 사리사욕을 초월한 목회자, 기독교계에서 새바람을 불러올 기대주, 그 어떤 불의의 세력 앞에서도 꿋꿋한 지도자, 세상을 호령할 영적지도자로서의 품위를 고이 간직했던 게 아닌가? 살아있는 개혁자들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토리 키 재기에 열을 냈다. 교회가 크면 뭐하고 작으면 어떤가? 큰 교회를 가지면 양복을 두 벌 입고, 구두를 두 켤레씩 신으며,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는가? 편리하고 좋은 점이야 많겠지. 자리다툼에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겠지. 그토록 친했던 사이라도 저절로 멀어지겠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인 것을 어찌하랴?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혹에 휘둘리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19781학년 때부터 사귀었으니 42년 지기다. 1985, 7년의 신학수업을 마치면서 시골목회에 뛰어들었다. 큰 교회의 손짓도 마다하고 여태 그 자리에 있다. 양을 생각하는 목자의 심정이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세월도 어느 덧 35,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친구가 부럽고 존경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씀씀이가 녹슬지 않은 진국이다. 그 친구 때문에 김포가 좋고 대명교회에 마음이 간다. 그는 우쭐대거나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우겨넣지도 않는다. 진정한 대화, 아름다운 시간,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엮어나간다. 내 말을 정성스럽게 들은 뒤에야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대화를 풀어갈 줄 아는 영리한 벗이다. 언제 전화해도 정다운 목소리로 무척 반긴다. 자주 갈 수도 없지만, 간다면 무조건 오란다. 재고, 따지고, 살펴보고, 계산하는 수준을 이미 초월한 멋쟁이다. 친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가 좋아야 진정한 친구로 남는 게 아닌가? 그의 아내는 이에서 한 술 더 뜬다.

  동등한 탁구실력은 우리를 배나 더 돈독케 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구사이로 발전했다. 열정적으로 치다보면 땀에서는 정감이 묻어나고, 헉헉대는 숨결에서는 세월을 본다. 그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내일은 안 그러랴? 그야말로 관포지교다. 그대가 내 곁에 있어 내가 행복한 이유다.  

                                         (2020. 2.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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