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별과 별라의 차이

2020.02.20 17:18

최상섭 조회 수:6

이별()과 별리(別離)의 차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이별()은 그리움에 대한 추억을 확인하는 절차이다. 특히 별리(別離)는 슬픔을 강물처럼 쏟아내야 하는 아픔이 동반된다. 그래도 인연 따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이별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부음(訃音)의 소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별리(別離)로 통곡(慟哭)을 해도 소용없고 그저 애통함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름 떼일 것이다.

 

  작년은 별리(別離)의 아픔을 두 번이나 겪었던 시련과 고뇌의 슬픈 한 해였다눈 덮인 산야에서 고목이 쓰러지듯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한마디 작별인사도 없이 절친한 친구가 두 명이나 저세상으로 떠났으니 그 안타까운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라….

  떠나간 그 자리에는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만 동그랗게 남아 그 날의 생생한 기억이 나를 속박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이별의 연속이 아닌가?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이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정해져 있다 했던가? 누가 이 삶의 계율 앞에서 초연하게 대처하며 당당함을 내세울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러한 사고는 감꼭지 덜 떨어진 모양새가 아닐까? 깊은 밤 불면으로 지새우며 얻어낸 결론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사가 은은한 달빛처럼 내 안위의 계절에 더욱 또렷해진다. 떠나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삶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향을 그리워하며 떠나간 계절을 생각해 보면 풀피리 꺾어 불던 소년 시절이나 술래잡기하던 동구밖 해송밭의 키 큰 소나무 가지에는 액막이로 날려 보낸 방패연이 걸려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  순옥이, 금자, 영숙이, 점순이 하던 그 여자아이들의 이름은 생각나지만, 지금은 어디 사는지, 몇 남매의 자녀들이 또 몇 명의 손자를 두었는지 궁금하다. 가물가물한 그 모습이 구름에 가린 달처럼 떠오르는 심사는 무엇 때문일까? 그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면 달려가 순식간에 고무줄을 끊어 바람처럼 달려오던 그 죽마고우가 세상을 버린 것이다. 아니 세상이 친구를 버렸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선한 삶을 살았던 착한 청지기였기 때문에 원통하고 먼저 간 친구가 한없이 미운 것이다.

 

   몇 명의 친구들과 철야를 한답시고 12시까지 빈소를 지키다 돌아오려니 그 친구의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 같아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허망하게 친구는 떠나가고 그 자리에는 애절한 기억만 남아 아쉬움이 달밤의 구름처럼 밀려 왔다. 살아생전 한 번 더 병원에 찾아가 볼 것을,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보고 먹고 싶다는 음식 한 번 더 대접할 것을, 못내 섭섭한 마음이 강물처럼 밀려 온다.

 

  나이 들어서는 자녀들 잘되는 모습이 기쁨이고 희망이다복이 있어 제대로 잘 살면 그만이지만 출가한 자식이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기 힘들면 부모의 가슴에도 주름이 생기는 법이다. 고등학교 시절 일심으로 학업에 정진하더니 졸업생 187명 중 2명이 대학교수가 되었고, 국내 생물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어 근무하다 퇴직한 친구 K가 점심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전주에 있는 친구들을 초청했다. 그런데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아들이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대학 정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로 아들의 장도를 축하했다.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고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친구들은 내 자식이 출세한 양 몇 순배의 술잔을 돌리며 술을 마셨다.

 

  이미 항구를 떠나가는 배에 간발의 차로 승선하지 못하고 멀어져가는 임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별()처럼 때늦은 후회를 한다.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고 다 잘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자 교양인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생활의 철칙을 왜 소홀히 하는지 모르겠다.

 

  아직 박수 소리가 귓전에 맴돌고 있을 때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S가 긴박하게 고함을 지른다.

 “빨리 나와봐. 큰일 났어. K가 쓰러졌어.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캘리포니아 발음이 뱅뱅거리고 아직 술잔을 다 비우지 않았는데 K는 의식없이 쓰러져 있다. 평소 잘난 체를 많이 해서 빈축을 사던 친구가 웃옷을 벗기고 심폐소생 압박을 시작했고 나는 몇 친구의 의중을 모아 119 응급차를 불렀다. 시내라서 그런지 구급차는 금방 달려왔고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가까운 예수병원으로 이송했다. 우리가 따로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심장의 박동은 유지되고 있었는데 신장의 기능이 정지되었다고 했다. 한 친구가 부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평소 약간의 심장병이 있었다고 했다. 금방 완치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친구 한 사람이 세 파트로 나누어 병실을 지키자는 제안에 동의하고 나는 저녁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한 뒤 일단 귀가했다. 박수 소리로 얼버무린 점심 식사가 채 꺼지지도 않았는데 K는 우리를 버리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나갔다는 문자를 보는 순간,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도 아끼던 처자와 마음을 나누던 친구들을 남겨두고 이렇게 허망하게 홀연히 떠나갈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어이가 없고 나는 할 말을 잊고 한동안 괴로워했다. 이것이 별리(別離)가 아니고 무엇이라 말인가?

 

  살아생전 1980년대 광주의 봄을 진두지휘하다 신군부를 피해 미국에서 몇 년간 도피생활을 한 뒤 귀국해서 복직되어 대학교수로 안착했기에 망월동 국립묘지에 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고요의 바다는 별리(別離)이다. 영원히 떠나간 친구 영혼 앞에서 우리는 12일을 지키며 별리(別離)를 실감했다. 나무 잎이 다 지면 앙상한 가지가 처량하듯, 겨울 산사의 외로운 감나무처럼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을 하지 못했고 서로가 만나기를 두려워 했었다. 눈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친구의 기억은 암울한 한 페이지의 지워야 할 미로가 되어 있었다.

 

  저렇게 찬란한 광채를 띄고 다가오는 황혼의 노을을 누가 아름답다고 했던가? 아직은 할 일이 태산처럼 남아 누구를 사랑하고 설렘이 있는 인생이 아닌가? 정녕 떠나보내기 아쉬운 친구들을 생각하노라니 나도 모르게 내 눈가엔 이슬이 맺힌다.  

                                                                           (2010.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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