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굿구이를 하고파서

2020.02.21 12:06

윤근택 조회 수:3

  ‘삼굿구이’를 하고파서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시절은 2월 하순. 나는 지금 ‘하지감자(夏至甘蔗)’‘씨눈따기’를 하고 있다. 하지감자란, 말 그대로 하지인 6월 22일 전후가 수확적기인 감자를 일컫는 말. 씨눈따기란, 겨우내 저장해뒀던 씨감자를 새로 난 눈[芽] 곧 촉을 기준으로, 몇 조각씩 칼로 쪼개는 작업을 이르는 말. 사실 ‘하지감자 심기’의 적기(適期)는 3월초이지만, 조바심으로 인하여 며칠이라도 더 당겨 심을 요량으로 이렇게 수선을 떨고 있다. 감자는 거름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임을 아는 터라, 이미 부숙퇴비(腐熟堆肥)를 넉넉하게 넣고, 멀칭비닐도 까는 등 ‘밭 장만’은 끝낸 터. 내일이라도 당장 ‘강원도 씨감자’를 심으면 된다. 내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께, 내가 왜 예년에 비해 적잖은 감자를 재배하려는지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들려주기로 하고.

  사실 농부인 나의 서두름은 이뿐이 아니다. 이미 지난 주중(週中)에‘스파클 완두콩’을 밭에다 꽤나 심었다. 잘은 모르겠으나, 파종적기가 그 ‘스파클 완두콩’의 그것보다 이른 작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땅이 채 풀리기도 전에 그렇듯 심게 되니까. 여름날 그 파란‘스파클 완두콩’을 매끼마다 쌀과 섞어 밥을 지어 먹을 생각만 해도 들떴기에 그리하였다. 그런가 하면, 봄보리 파종도 잠시잠간 생각하기도 하였다. 봄보리 파종적기는 2월말이라는데, 그 생각은 접었다. 이미 지난 해 상강(霜降)날이었던 10월 23일에 정확히 맞춰, 닭사료용으로 가을보리를 300여 평씩이나 갈아, 지금 한창 파랗게 자라는 터라서.

  자, 잠시 미뤄뒀던, 내가 꽤 넓은 밭자리에다 하지감자를 심고자 하는 이유다. 나는 ‘삼굿구이’를 내내 해먹고 싶어 이처럼 예년보다 더 많이 감자재배를 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안타깝게끔, 인터넷 등을 통해 여러 곳을 헤맸지만, 그 옛날에 즐겨 먹었던 ‘자주감자’의 씨감자는 끝내 구할 수 없어, 부득이 ‘흰 감자’의 씨앗으로 만족해한다.

  참말로, 나는 ‘삼굿구이’를 꿈꾸며 30kg 정도의 씨감자를 이렇게 저렇게 장만하여 이 밤 내내 씨눈따기를 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대체, 내가, 혹은 내 가족과 함께, 혹은 더 나아가서 내 신실한 애독자들과 ‘감자삼굿구이’를 해먹고 싶다니 이 무슨 말?

  우선, ‘삼굿’과 ‘삼굿구이’에 관한 사항부터 설명함이 옳겠다. 참으로,‘삼굿’은 아련한 추억의 행사다. 그야말로 온 마을이 함께‘굿’을 하듯 하였다. 해서,‘-굿’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내 유년시절, 온 마을에는 삼[大麻]을 재배하였다. 삼의 껍질로 ‘삼베’를 얻고, 그것들로 삼베옷을 지어 입고 지냈다. 집집이 대나무처럼 곧고 빽빽하며 사람 키 몇 길은 될 듯한 삼을 베었다. 집집이 그것들을 다발지어 허리를 묶었다. 그런 다음, 냇가로 지고 나갔다. 이를테면, 공동작업 내지 두레. 집집이 장정들은 힘을 합쳐 지름 5미터 남짓한 웅덩이를, 사람 키보다 깊이 팠다. 그런 다음 한 팀이 그 구덩이 한 켠에다 자갈과 돌멩이를 잔뜩 져다 날라 수북하게 쌓을 동안, 또 다른 한 팀은 자기네 집에서 장작을 수차례씩 져다 날랐다. 서까래를 지고 온 팀은 그 웅덩이 위에다 얼기설기 걸치고, 그 위에다 자기네 집 표식을 한 삼단들을 눕혔다. 그 위에다가는 짚멍석 등을 덮고, 다시 봉분(封墳)을 짓듯 자갈과 모래로 밀봉(密封)을 하였다. 장차 불가마의 아궁이를 막듯 하기 위해, 가급적 좁은 공간에다 불무더기를 하고, 진종일 불을 피워 자갈과 주먹돌을 벌겋게 달구었다.

  다음 순간은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행하였다. 해질녘 마을 사람들은 부랴부랴 불무더기 위를, 마치 숯가마의 아궁이를 틀어막듯, 밀봉하였다. 그 다음의 작업이 그야말로 ‘굿’이었다. 굿이라도 아주 ‘생굿’이었다. 장정들은 물지게를 지고 물을 퍼 담아 지고 와서 그 봉분(?) 위에다 물을 끼얹어댔다.

  “불이야! 불이야!”

  “물이야! 물이야!”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수증기로 그 많은 삼단을 쪘다. 그렇게 삼단을 쪄야 비로소 삼베의 원료가 되었던 거. 바로 그게 ‘삼굿’이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삼을 찌는 데 온 마을이 굿을 하듯 하였기에, ‘삼굿’이라고 불렀을 듯.

  그러한 어른들의‘삼굿’을 보며 자라났던 어린 우리들. 조무래기들이었던 우리도 마을 어른들의 삼굿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삼굿구이’다. 삼굿구이는 여름방학 때가 딱 어울리는 계절. 그 때는 집집이 자주색 하지감자를 캐던 시기. 우리는 다래끼에다 ‘이녁’ 감자를 담아 메고, 더러는 남의 집 감자를 서리하여 담아 메고, 소를 몰고 산골짜기로 ‘소 풀 뜯기러(먹이러)’ 가곤 하였다. ‘소 이까리(고삐)’를 사려, 소의 목에다 칭칭 감아준 다음, “이랴!이랴!”하며 풀이 많은 산골짜기로 몰아넣었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운 우리들만의 시간. 가급적 납작하고 넓은 돌멩이를 구해 왔다. 그걸로 솥을 걸 듯, 구들장을 놓듯 하고서, 그 위에다 향내 나는 떡갈나무잎 등을 얇게 펴고, 다시 그 위에다 집에서 가져온 감자를, 더러는 서리해 온 감자를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사실 우리끼리만 이야기인데, 주인 몰래 서리해 온 게 더 맛 있었다. 다시 그 위에다 떡갈나무 잎 따위로 덮었다. 그 위에다는 찰흙을 찰지게 이겨 바르고 불을 때기 시작했다. 아궁이와 굴뚝이 따로 있는, 마치 온돌 같은 가마. 우리는 어느 정도 불을 때었다 싶었을 때 마을 어른들이 삼굿을 할 적에 그랬듯, 숯가마 사람들이 그랬듯, 아궁이와 굴뚝을 찰흙으로 밀봉한 후 한 동안 잠자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물론, 그 가마를 헤쳐‘뜨거운 감자’를 가장 빨리 먹는 이는 항상 따로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게 바로 ‘삼굿구이’다.

  삼굿구이, 내가 지금 서둘러 씨감자의 씨눈따기를 하는 이유다. 사실 최근에야 동료 아파트 경비원을 통해, 어느 세대에서 분리수거장에 내다버린 ‘전자레인지’의 사용요령과 그 효율적인 쓰임을 알게 되었다. 가령, 컵라면을 맛있게,제법 면발이 풀린 상태로 먹는 법은 이렇다. 은박지로 된 뚜껑을 완전히 제거하고 거기다가 묵은 김치를 가위로 총총 썰어 넣는 게 좋다. 청양고추도 한 두 개쯤 총총 썰어 넣는 게 좋다. 그리고 파도 조금 썰어 넣는 게 좋다. 그런 다음 나의 경우, 전자레인지에 넣어 ‘4분 30초’ 입력하여 ‘뺑뺑이’를 돌리면, 나한테는 최적의 맛이 나오더라는 거. 거기서 착안하여, 나는 아파트 경비실에서, 앞으로 내가 하지 무렵에 캘 감자도 자주자주 구워먹겠지만... . 보다는, 내 가족과 함께 혹은 내 신실한 애독자들과 함께 내 ‘만돌이농장’에서 ‘삼굿구이’를 두고두고 해먹었으면 하고서, 이렇듯 들뜬 맘으로 감자씨눈따기를 하고 있다면?


 작가의 말)

 이젠 더 이상 애써 문장을 꾸밀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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