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

2020.02.24 01:56

전용창 조회 수:0

묵언 黙言

꽃밭정이 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어느 분이 옛 성현의 말씀이라며 '사소십다(四少十多)'카톡으로 보내왔다. ‘사소란 소식, 소언, 소노, 소욕이고, 십다는 다동, 다욕, 다설, 다접, 다소, 다망, 다정, 다용, 다인, 다용이라며 이를 잘 지키면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했다. 한두 번 접해본 글귀가 아지만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내게 힘든 게 소언이다.

 나는 사람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대화가 서로 통하고 맞장구라도 쳐준다면 하루 종일도 좋다. 언젠가 교직에 있던 친구 누나가 동생 일로 상의할 게 있다며 오전 10시쯤 직장으로 찾아왔다. 그분은 중등학교 국어선생님이셨는데 이미 유수한 중앙 문예지에 등단도 하셨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말씀도 구수하게 잘하셨다. 친구의 사업이 어려운데 좋은 대책이 있느냐며 묻기도 하고 문학 이야기, 세상 이야기도 하셨다. 오전에 시작한 이야기는 점심도 건너뛴 채 퇴근 무렵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껏 하루에 그렇게 많이 대화를 나눈 것은 그분 한 분뿐 인 듯싶다. 최근에 친구에게 누나의 안부를 물으니 지금도 집안 애경사가 있을 때면 분위기를 다 이끌어간다고 했다.

 

 누구와도 말하기를 좋아했던 내가 점점 소언少言을 하더니만 지금은 묵언黙言상태다. 식사 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건강이야기, 자식 손주 자랑 이야기뿐이니 재미가 없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이미 방송에서 여러 차례 나온 이야기 재탕이거나 정치인 한 사람의 잘못을 정권 전체로 몰아 부치니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일암’의 묵언을 생각하며 “그렁개.”라며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순천 송광사 뒷산에 가면 ‘불일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그곳 암자는 ‘법정’ 스님이 오랫동안 수행하신 곳이다. 암자에는 ‘黙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많은 사람이 무소유를 배우려고 와서 스님에게 어떻게 살아야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느냐고 수없이 물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스님은 손가락으로 ‘黙言’이라는 편액을 가리키지 않았을까? 할 말이 많아도 참는 게 ‘黙言’이라 하니, 비록 두 글자이지만 이를 통하여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고, 스스로는 낮아지는 ‘무소유’의 깨달음을 얻고 갔을 것이다. ‘불일암’ 툇마루에 앉아서 멀리 조계산 봉우리만 멍하니 바라다보고만 와도 가슴속이 고요 속에 충만함을 느끼곤 했었다.

 

  지난해 말부터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조금만 말을 해도 성대가 피로하니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참는다. 아들과도, ‘똘랭이’와도 눈빛으로 서로 소통한다. 똘랭이는 등을 쓰다듬어 주면 좋아서 옆으로 눕는다. 다음에는 배를 만져달라는 몸짓이다. 배를 만져주며 베란다를 보았다. 키가 큰 ‘벤자민’이 봄맞이 단장 중이다. 지난해 입었던 옷은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벤자민’은 어떻게 배웠을까? 헌 옷에 영양분을 보내주지 않으면 누렇게 되어 스스로 떨어진다는 것을. 곁에는 엄마 아빠도 없다. 창문 너머로 서있는 느티나무 잎들의 몸짓을 보고 배웠을까? 이 많은 꽃나무들이 서로 잘 났다고 조잘댄다면 얼마나 시끄러울까? 묵언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으로 온 세계인이 공포 속에 빠졌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중국과 가까워서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종교지도자라면 이런 난국을 헤쳐나기 위한 구국 기도회를 해야 마땅한데도 어떤 목사는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수많은 국민에게 피로감을 주고 지지자들에게는 비뚤어진 사상을 전수하고 있다. 목사라는 성직자로서 부끄러운 일인데 권력욕에 눈이 멀어 저리하니 참으로 눈뜨고 그냥 볼 수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양산한 모 종교집단은 또 어떠한가? 반성과 사죄는 없이 사탄마귀 짓이라며 헛소리를 하고 있다. 강대국 지도자라며 연일 큰소리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콜로라도 집회 연설에서 한국의 ‘기생충’ 영화가 오스카상을 받은 것을 비판했다.

  "이번 오스카 시상식이 얼마나 구렸는지 아니, 시상식 봤나? 수상자는…. 한국 영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타락하면 저리 될까? 부익부 빈익빈 세상, 권력과 부를 가진 자가 세상을 독점하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며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창의성’, 서로 돕지 않으면 나만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하려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함을 저들은 왜 모를까? 배우지 않고 ‘黙言’으로 깨달은 ‘벤자민’의 봄맞이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낀 하루였다.

                                                          (202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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