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는 날

2020.02.24 22:35

정석곤 조회 수:0

엘리베이터를 타는 날

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사람인 줄 알고 손사래를 치며 환영을 한다. 그 때는 기분이 좋다가 장사하는 분들 가운데 한국말에 능통한 것처럼 큰 소리로 ‘빨리! 빨리!’를 외치면 씁쓸했다. 가는 나라마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 국내 여행을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고, 우리 국력이 강해진 것 같아 어깨도 으쓱해졌다. 그런데 ‘한국, 빨리! 빨리!’ 소리를 들을 만큼 그들은 한국 관광객의 활동에서 기다림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일 게다. 짧은 여행 날짜에다 꽉 짜여진 여정이라 새벽부터 서두를 수밖에 없는 탓도 있다.

     

  5년째 탁구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탁구를 하면 회원들이 날더러 왜 그렇게 성질이 급하냐고 비아냥거리곤 한다. 특히 서브(serve)를 넣을 때 더 그렇단다. 상대방 공을 받는데 1박자 정도를 기다렸다 쳐야 할 텐데 그걸 참지 못한다. 탁구기능 부족 탓도 있다. 서브를 넣을 때 속으로 ‘천천히’를 되뇌지만 빨라져 실망하곤 한다.

 

  운전할 때다. 신호등은 빨간불에 앞서 노란불이 켜졌는데도 망설이다 정지선 안으로 들어가 달리고 있다. 단속카메라는 왕방울 같은 눈으로 날 쳐다 볼 때가 많다. 노란불 신호위반 범칙금을 낸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안전운전을 하다 노란불 신호를 보면 무조건 멈춘다는 결심은 온데간데없고 후회만 되풀이 한다. 올해도 두 달째인데 노란불 신호위반으로 범칙금통지서가 오려나, 한 주간 넘게 가슴앓이를 한 게 세 번이나 된다.

 

  단독주택에 살기에 엘리베이터를 덜 이용한다. 외출하여 엘리베이터를 타면 너나없이 ‘닫힘’과 ‘열림’ 버튼을 누르기 일쑤다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잠깐잠깐 쉬어야 하는데 그걸 못 봐준 게다. 조급한 인간의 맘을 얼마나 비웃을까? 엘리베이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책임에 최선을 다 한다. 그러다가도 정원을 넘으면 못 참는다. 아예 문을 닫지 않고 떼를 쓰기도 한다.

   

  한 주에 대엿새는 아침이면 4층 건물을 오르내린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고 내려올 땐 거의 계단을 이용한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는 날 반갑게 맞이하느라 바쁘다. 4, 3, 2, 지하 1층에 있다가도 금방 달려온다. 올라가고 있으면 얼른 다녀온다. 곧바로 예쁜 아가씨가 상냥한 목소리로 안내를 한다.

  “문이 열립니다.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른다.  

  4. 문이 닫힙니다.

 

   눈은 숫자를 따라 오른다.

  4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내리는 내 뒤를 보고 ‘문이 닫힙니다.’로 안내를 마친다.

 

  문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힐 때까지의 짧은 시간이다. 미처 못 기다리고 ‘닫힘’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는가? 난 그걸 꾹 참고 팔 체조를 한다. 양쪽 손을 가볍게 쥔 채 팔을 가슴 쪽으로 올려 굽힌다. 1호간, 팔과 가슴을 좌우로 젖혔다 오므린다. 8호 간을 반복하면 문이 닫힌다. 이어 4호 간을 하면 숫자 1이 움직인다. 2, 3, 4 숫자가 바뀌는 데는 각각 8호간이면 된다. 그러니까 ‘닫힘’은 10, ‘열림’은 5초나 기다리면 될까? 엘리베이터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의 비슷할 게다.

 

  엘리베이터 안은 혼자만의 ‘기다림 훈련장’이다. 내 급한 성질을 누그러뜨리고 팔·가슴 근육운동도 한다. 게다가 버튼을 한 번 누른 전력이 절약되어 전기세도 줄어들게다.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가 아닌가? 내려 올 때 계단은 모두 80개가 넘으니 물건 살 때 ‘하나 더하기 하나’처럼 다리근육 운동은 덤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엄마의 태중에서 열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 때부터 기다림은 시작된다. 그러니까 산다는 것은 기다림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기다림도 길고 긴 건 그래도 괜찮은데 짧은 건 안달이 나 서두르지 않는가. 나는 일흔 고개를 넘어오며 숱한 기다림의 연결고리를 이어왔다. 앞으로도 여러 길고 짧은 기다림의 연결고리들을 쉬지 않고 이어가야 할 것이다.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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