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여인

2020.02.25 12:45

전용창 조회 수:3

빗속의 여인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시조 한 편을 보내주었다.

 

「혼자 앉아서」  최남선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 오마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 열린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짧은 시조인데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와서 좋아했던 시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은 빗줄기가 ‘사닥다리’가 되어 하늘에서는 천기가 내려오고, 땅에서는 지기가 올라가서 나의 머리 위에서 만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비 오는 날 밖에 나가는 것이 기쁘다. 가랑비가 내리면 우산을 안 받고, 빗줄기가 굵으면 천으로 된 우산을 받는다. 비닐로 된 우산은 행여 하늘의 기운이 못 들어올까 봐 그리한다.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나무들의 자양분이 되겠지. 잠에서 깨어난 꽃나무가 노~란 봄꽃을 피우면 나도, 잠자던 ‘고흐’도 벌떡 일어나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병상에 있는 친구 아내의 메시지다. ‘드뎌 낼, 퇴원하라네요. 주님의 풍성한 은총에 감사, 감사드려요.’ 나도 답신을 보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봄비와 함께 친구의 퇴원 소식을 접하니 너무도 기뻐요.’ ‘너무 감사해요.’ 회신이 왔다. 친구는 지난해 말부터 심장질환으로 오래 고생을 했다.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도 있었다. 나는 기도문을 작성하여 보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가 될 만한 수필을 찾아 전하기도 했다. 나의 글은 멀리 제주도 병실에도, 익산의 원광대학병원에도 나대신 문안을 했다. 친구가 병상에 있는 동안 나도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한다는 「동병상련」, 아내의 소중함을 느낀 「외로움과 그리움」, 평범한 삶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어느 염색방 여주인의 「인생이 별것이여」, 장애아들 ‘정기’를 사랑하는 「수호천사」, 봄을 알리는 「노란색 봄꽃의 신비」 등을 보내주었다. 그럴 때마다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감사의 메시지가 왔다. 메시지는 나에게 한 아름 꽃다발이 되어 기쁨을 주었다. 그동안의 수필 공부가 이때를 위함이었던가?

 

  가랑비는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친구 ‘미카엘’은 노래를 썩 잘 불렀다. 목소리 톤도 테너이기에 나는 따라 부를 수 없었다. 아내 ‘미카엘라’도 언젠가 친구의 노래에 반했다고 했다. 「보리밭」, 「최진사댁 셋째 딸」, 「향수」 등 여러 장르의 노래를 불렀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노래는 조영남의 「빗속의 여인」이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 노오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 다정하게 미소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주네 / 나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없이 걸었네(중략)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

 

 지금쯤 친구도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수고한 아내를 위하여 하루빨리 완쾌되어 ‘빗속의 여인’을 불러주는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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