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풍경

2020.02.27 22:40

이진숙 조회 수:2

우리 동네 풍경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요즘에는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주로 걷기를 많이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조금 더 걷고 싶으면 월드컵 경기장 부근을 크게 한 바퀴 돌기도 한다. 그러나 볼 일이 생기면 그보다 더 먼 여의동주민센터 근처까지 걸어갔다 돌아오곤 한다. 동네 한 바퀴는 주로 남편과 같이 걷는다.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은 남편과 걷기에는 그 정도 거리가 적당한 것 같아서이다. 그러다가 조금 괜찮은 것 같으면 신호등을 건너 월드컵 경기장 입구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우리 동네는 작은 단지의 아파트를 빼면 가구 수가 20여 호가 될까 말까하는 아주 작은 동네이다. 그리고 마을에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살기에 농사철이라 해도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집 밖에 나오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걸을 때 동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남편과 같이 느릿느릿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힘들 것 같으면 잠시 쉬는 틈에 나는 왔던 길을 다시 한 번 더 걷다가 같이 걸어가곤 한다. 그래도 같이 걸으면 든든하고 좋다. 한적한 마을이라서 가끔은 너무 호젓하기도 하고 또 자동차 매매단지가 있는 길은 괜히 혼자 걷기가 껄끄러울 때가 있다.

 같이 걷는 날보단 혼자 걷는 날이 더 많다. 그럴 땐 걷는 속도도 다르고 걸어가는 거리도 더 멀리 간다. 집에서 나와 한참 걷다가 큰 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속 걷다 보면 월드컵 경기장 북문을 지나 호남 고속도로 나들목이 나온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자동차들만 쌩쌩 달릴 뿐 걷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어쩌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게 되면 길 한쪽으로 바짝 붙어 고개를 푹 숙이고 걷게 되었다. 아마도 요즈음 전 세계적으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코로나 19’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되다니, 이 무슨 일인지 참으로 걱정된다.

 한참을 걷다 보면 널찍한 길을 가로로 ‘호남제일문’이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과거 전라도에서 가장 큰 고장이었던 전주를 지키는 문이었다. 수문장이 턱 버티고 있어 감히 범접하기 어렵다. 특히 현판은 전주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신 ‘강암 송성용’ 선생의 글씨로 건축의 품격을 높여 주기도 한다.

 그곳을 막 통과해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월드컵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기구가 있다. 넓은 곳에 여러 종류의 운동 기구가  있어 여러 가지 기구를 돌아가면서 온동을 할 수 있어 좋다。운동기구를 한 바퀴 다 돌면서 운동을 끝내고 의자에 앉아 있으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온 몸이 땀에 젖어 있는 나를 상쾌하게 어루만저 준다. 의자에 앉아서 경기장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면 고즈넉한 전주의 모습을 닮은 경기장 지붕의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특히 2002년 월드컵과 2017 U-20 월드컵개막경기를 치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운전면허 시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식구 4명 중 내가 맨 처음 면허시험을 봐서 면허증을 갖게 되었다. 그 뒤로 남편과 두 아이가 차례로 면허증을 가지게 되고 세 명 모두 거리운전 연수를 내가 도와 준 일이 떠오른다. 면허시험장을 맞은편에 두고 오른 쪽으로 꺾으면 월드컵골프장이 보인다. ‘딱’ 소리와 함께 ‘굳 샷’하는 목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현직에 있을 때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김밥 두 줄을 사서 먹으며 남편과 같이 골프 연습장에서 공을 치곤했었다. 그러다 가끔 일요일이면 김제 부근에 있는 18홀짜리 골프장에 가서 공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도심 속 농촌이 나타난다. 넓은 들판에 가을이면 누런 벼가 바람에 일렁이곤 했는데, 지금은 빈 들판만 보일 뿐이다. 군데군데 부지런한 농부들이 쟁기질을 한 듯 논을 갈아 놓았다. 지금의 위중한 사태가 무사히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푸른 물결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겠지, 넓은 들판을 지니고 나면 다시 자동차들이 경주하듯 달리는 도로가 나온다. 조용했던 내 마음도 부산해 진다.  

 길을 건너 이번에는 동네 뒷길로 들어선다. 뒷길이란 이름은 우리 내외만 아는 이름이다. 약간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왼쪽으로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서너 동이 있다. 그 안에는 거봉포도밭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 지금쯤 부지런한 농부 같으면 가지치기를 얼추 끝냈을 것이다.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왕 대추나무가 줄을 맞추고 서있는 과수원이 보인다. 이 과수원 주인은 참으로 깔끔한 사람인 듯 풀도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도 얼마나 반듯하게 키웠는가?

 어느 곳은 시금치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가지치기를 잘 해 놓은 감나무도 보이고 포도밭도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걸어 가다보면 길 양쪽에 온통 쓰레기가 널려 있는 모습에 지금까지 밝고 맑았던 기분이 한 순간 흐려져 버린다. 냉장고, 장식장, 심지어 화장실 변기까지 나뒹구는 모습에 과연 이것을 버린 사람들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너무나 많은 쓰레기에 놀란다. 돈이 아까워서일까, 아니면 생각이 없어서일까? 결국은 우리가 쓰고 후손들이 대대로 써야 되는 땅 덩어리가 아닌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집으로 방향을 트는 곳까지 그런 쓰레기가 넘친다. 하긴 빈 땅은 어디나 어김없이 쓰레기가 다 차지하고 있다.

 집이 가까워 오지 벌써 알아보고 우리 집 ‘돌돌이’가 반갑게 짖어 댄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휴대폰을 열어 보니 ‘오늘도 목표를 달성했어요’ 한다. 들여다보니 만보를 훌쩍 넘겼다. 다음날은 조금 더 멀리 걸어야겠다. 하루 빨리 ‘코로나 19’를 퇴치하고 모든 사람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오가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 반갑게 눈인사를 나누는 날을 기대한다.

                                                                                  (2020.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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