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자식농사

2020.03.21 13:57

양희선 조회 수:2

부모님의 자식농사

    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양희선

 

 

 

 우리 부모님은 농부이셨다. 농업을 천직으로 여긴 부모님은 사시사철 일손을 놓지 않고 근면성실하셨다. 철따라 심고, 거둬들이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셨다. 풍작을 이룰 때는 하늘에 감사하셨고, 흉년이 들면 내년을 기약하며 근검절약으로 사셨다. 5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아버님은 일찍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셨다. 어머니와 혼인하여 549남매를 낳고 자수성가하셨다.

 

 ‘농사 중에 자식농사가 제일이다.’ 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은 힘든 농사일도 오로지 자식 키우고 교육시키는 재미에 고된 내색 하지 않고, 언제나 ‘허허’ 하고 웃으셨다. 지금이야 의무교육으로 중학교까지 학비 없이 배울 수 있지만, 예전엔 초등학교도 월사금을 내야 했다. 자녀가 한 둘도 아니고 9명의 회비를 다달이 마련하자니 벅찰 수밖에…. 뼈아프게 지은 곡식을 내다팔아야 돈을 만질 수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농산물 값이 노동력에 비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지 않던가?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쌀을 헐값에 넘기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부모님이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수척해진 부모님을 보면서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부모님 세대는 타고난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박한 시대였다. 자식은 삼신할미가 점지해준 대로 낳는 게 순리로 여겼다. 새끼가 많든, 적든 저 먹을 건 다 각자 타고난다고 믿었다. 언니는 동생을 업어 키우고, 가사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5~60년 전만해도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 라는 구호를 외쳤던 시대였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 는 속담처럼 요즘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개인주의적인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이들 구경하기조차 어려워 나라의 앞날이 염려된다.

 

 부모님은 많지 않은 논밭을 짓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자식들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온종일 모내기를 하면서 허리가 끊어질듯한 아픔을 달래며 참으셨다. 아무리 바빠도 아들에게 ‘논에 나가 물꼬 한 번 대봐라’ 한 적이 없고, 딸들은 호미자루 한 번 잡아본 일이 없다. 미련한 자식들은 부모는 당연히 일만하는 것으로 알았다. 좀처럼 속마음을 들춰내지 않는 과묵하신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선 큰소리 한 번 친 적이 없다.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수가 된 큰아들을 아버지께서는 믿고 의지하는 동반자로 여겼다.

 

  9남매 모두가 고등교육을 받고 졸업했다. 이젠 할 일 다 했으니 편히 쉬고 싶으셨을 게다. 전례(前例)에 따라 큰아들을 혼인시켜 며느리와 오순도순 살리라 여겼던 모양이다. 시대변화로 핵가족이란 새 바람이 불어 큰아들내외가 분가하게 되었다.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분가한 서운한 마음이 어머니를 아프게 했나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 는 속담처럼 자식 많이 둔 엄마의 마음에 갈등이 일었나 싶다. 품안의 자식 이라고, 다 떠나간 텅 빈 집안이 횡하고 허전했을까? 부모는 자식 뒤치다꺼리를 즐거움으로 여기며 살다가, 우렁이 껍데기가 되어 돌아가시는 게 부모가 아니던가?

 

  9남매 중 막내가 금년에 고희를 맞았다. 625전쟁을 겪고 태어난 여동생이다. 임신된 것을 알아챈 엄마는 노산이 남부끄러워 유산을 하려고 어스름에  뒷동산에 올라가 눈 딱 감고, 대굴대굴 굴렀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우습던지 눈물을 찔끔 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그 아이가 칠순 할머니가 되었다. 제랑은 사랑하는 아내의 고희를 어떻게 뜻있고 멋지게 해줄까, 곰곰 생각했단다. 가족모임 때마다 느껴왔던 조카들과 손자들 모두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4,5,6촌이면 가까운 친척인데 얼굴도 모르고 사는 게 늘 안타깝게 여겼다. 너나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인정이 메마른 매정한 세상이 되었다. 동생부부는 9남매의 자녀와 손자들 3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가족들에게 가족모임 초청장을 보냈다.

 

 2019년 10월 03일 정오12시, 전주더존뷔페에서 모두 모였다. 서울과 광주에서 궂은 날씨인데도 서둘러 참석했다. 동생자녀들이 일찍 나와 꽃을 달아주고 반가운 인사를 했다. 훤칠한 청년들이 인사를 하는데 누가 누구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어렸을 때에 보고 이제 보니 몰라보게 커 청년이 되었다. 영특한 아우는 몰라볼 것을 대비하여 미리서 누구의 아들딸이란 이름표를 만들어 윗옷에 달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재치를 보였다. 마치 이름표를 달고 이산가족을 찾는 것 같아 웃었다. 9남매와 아들딸 손자손녀들 모두 68명이 모여 식당 별실이 가득 찼다. 미국, 독일, 싱가포르, 터키 등 외국에 거주하는 가족들도 많으나 먼 나라로 불참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각자 식탁위에 인쇄용지가 놓여있었다. 아우가 작성한 부모님 3대 자손들의 이력이었다.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 등이 적혀있었다. 9남매부부와 자녀가 48, 손자손녀가 53명으로 대가족이었다. 직업도 다양하여 사업가5, 교직9, 의사13, 판사2, 검사1, 경찰1, 회계사1 공무원, 일반회사원 등 다양했다. 국가의 중추적인 자리에서 성심껏 일하면서,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위해 소임을 다한 우리 자손들이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으로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근면성실과 근검절약을 산 교육으로 모범을 보이신 부모님이시다. 부모님의 자식농사는 풍작을 이뤘다. 고생만 하시다가 효도할 틈도 없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짠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부모님을 반만이라도 본받았으면 참 좋으련만. 아이들은 나라의 보배요, 희망이요, 국력이 아니던가?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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