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잊어야지

2020.04.02 15:34

한성덕 조회 수:2

 그래도 잊어야지

                                        한성덕

 

 

 

 

  세상을 살다보면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성인군자도, 도통한 철인도, 천리안을 가진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완벽하기보다 오히려 미흡한데 있다면 좀 어색한 말인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다.

  “영국이나 독일 사람이 없어도 인류는 생존한다. 러시아 사람이 없어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과학이나 먹을 것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아무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비밀이 여기에 있다. 모든 역사도 이 안에 있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미를 추구하는 내 성향으로 볼 때도 그렇다. 아름다움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대문호가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일까? 외모에서 찾지는 않아 보인다. 성경의 ‘아가서’를 보면 이해가 된다. ‘아가’란, ‘노래들 중의 노래’란 뜻이다.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을 그리워하는 연가(戀歌)를 담고 있다. 술람미는 자신을 ‘검다’고만 했는데, 솔로몬은 한술 더 떠서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왕은 술람미 여인을 흠모하며 찬양했다.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같구나.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아가서 4:3~5) 그랬다.

  왕이 여인의 외모에 홀린 점도 없지는 않으나, 실은 내면의 아름다움에 반한 심경을 토로한 노래다. 겉모습의 미모도 미모지만, 내면의 예쁜 모습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말이다. 목회를 하면서도 속사람이 아름다운 자들을 많이 보았다.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다그친다면, 가장 싫어할 자는 못났다고 느끼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자들이 오래토록 남는 이유는 뭘까?

  어느 교회에서의 일이다. 지적으로 조금 모자란 젊은 여성 집사가 있었다. 자녀들은 제법 똘똘하고 영리했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할 때마다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고마움에 삶은 나물 한 움큼, 알밤 한 주먹, 도토리묵 반쪽, 그리고 반찬을 종종 해가지고 왔다. 한 끼 먹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어도, 심성고운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아있다.

  많은 미담들 중, 이것은 다른 교회의 이야기다. 정서적으로 좀 미약해서 부인이 퍽 신경 쓰는 집사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도 온전하지 못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전주시내 개척교회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부가 두 자녀와 함께 자기트럭으로 오던 중 미미한 접촉사고가 났다. 담임목사님이 그 현장을 지나다가 차를 세웠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나한테 간다고 했다는 게 아닌가? 둘러칠 줄도 모르는 순진한 천사부부였다. 40kg짜리 쌀과 딸기와 식사비까지 챙겨왔다. 다른 교회로 부임할 때마다, ‘날 깡그리 잊고 담임목사님을 잘 섬기라’며 신신당부하고 떠나는데도 이렇게 찾아오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이들 부부 같은 천사가 어디 한둘인가? 아름다음은 결코 외모에서만 오지 않는다. 그 뒤로 섭섭한 말을 들었던 게 영영 잊어지지 않는다.  

 

  나 같으면, 교인들에게 ‘우리교회 전임목사님이 개척교회로 부임한 사실을 미처 몰랐다. 시간 나는 대로 한 번씩 찾아뵈라’고 할 판이다. 아니, 내 성격상 교인들과 함께 찾아간다. 사람의 마음이 다 같지 않음을 왜 모를까마는, 그 일을 생각하면 서운한 기운이 감돈다. 그래도 잊어야 하는데 그게 언제쯤일까?

                                       (2020. 4. 2. )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87 코로나19 정보 두루미 2020.04.05 5
1386 코로나19와 헤밍웨이 두루미 2020.04.04 12
1385 풀꽃 천자 최상섭 2020.04.04 2
1384 위기를 기회로 최기춘 2020.04.04 1
1383 있을 때 잘 할 걸 한일신 2020.04.03 2
1382 무언의 약속 박제철 2020.04.03 6
» 그래도 잊어야지 한성덕 2020.04.02 2
1380 나와 음악 백남인 2020.04.01 12
1379 바람직한 노후 생활 두루미 2020.04.01 12
1378 정조대왕의 시심 유응교 2020.03.31 5
1377 청노루귀 백승훈 2020.03.31 13
1376 열풍 한성덕 2020.03.31 9
1375 코로나19보다 더 두려운 경제위기 양희선 2020.03.31 9
1374 신안의 위용, 천사다리를 넘어 신팔복 2020.03.30 3
1373 버림을 준비하며 송병운 2020.03.30 17
1372 백 명의 친구보다 한 명의 적이 없어야 한다 두루미 2020.03.29 8
1371 사람들은 마음먹는 만큼 행복하다 두루미 2020.03.29 6
1370 '카뮈'에게 배우는 지혜 전용창 2020.03.29 12
1369 오지민이가 말을 해요 김창임 2020.03.29 1
1368 그때 그 시절 한일신 2020.03.29 21